매일성경 묵상
자비의 율법, 힘에 미치는 대로, 여덟 째 날의 은혜 [레 14:21-32]
 – 2022년 03월 24일
– 2022년 03월 24일 –

악성 피부병에 걸렸다가 나은 이들 중 가난한 자에 대한 특별 규정이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속죄제와 번제를 비둘기로, 소제는 1/10에바의 고운가루로 드릴 수 있었지만, 회복 절차의 핵심인 속건제의 어린 숫양은 정하신 대로 드려야 했다. 가난한 자들의 정결 제사 특별 규례는 어떤 내용일까?



1.만일 그가 가난하여…(21-22, 32절)
가난한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 규례는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만들었다. 14장의 정결하게 되는 절차로 드리는 제사는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어린 암양 한 마리, 고운 가루 6.6리터와 기름(유향)”을 준비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매우 버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특별 규정을 주셨다.

제사법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언제나 완화된 규정을 특별하게 마련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하여도 첫 번째 정결 제사로 드리는 속건제의 제물은 “어린 숫양”이어야 했다. 그러나 속죄제와 번제 제물인 양은 비둘기로, 고운가루, 기름, 특히 비싼 유향은 생략하여 배려해 준다.

*역시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제사와 제물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오랫동안 진 밖에 격리되어 생활하였으니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길이 막히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경제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경건 이고, 은혜를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버거운 제사 제물로 인해 가로 막힐 수는 없었다.



2.그러나 가난하더라도…(22-31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더라도 제사 자체의 형식은 철저하게 지키게 하신다. 제물을 준비하는 것에 있어 배려는 있었지만, 제사 자체를 감해 주시지는 않으셨다. 또 속건제 제물인 어린 숫양은 결코 다른 제물로 대치할 수 없었다. 속죄제와 번제의 제물인 어린 숫양과 암양은 비둘기로 대체되고, 소제의 제물은 고운 가루 6.6리터와 기름(유향)은 양을 조절하여 1/10 에바로 반드시 드리게 하였다.

*가난하더라도 번제, 소제, 속죄제와 속건제를 다 드리게 하신다. 번제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와 헌신을 회복하고, 속죄제를 통해 성소를 정결케 하며, 소제를 통해 충성을 다짐하였다. *무엇보다 부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 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없음을 공정하게 요구하신다.

*주님께 드릴 것이 아예 없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만큼 가난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 해서든 마련하여 드릴 수 있다. 마음과 정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 마음과 정성을 드리지 않고, 내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도 소용없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무수한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하나님 밖에 은혜 베푸실 이 없음을 고백하며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가난이 주님 앞에 나오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스스로 핑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또, 속건제 만큼은 가난한 이라도 똑같이 요구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정하여 정결하게 되는 절차에서 정결하게 하는 속건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위임할 때처럼 피와 기름을 오른쪽 귀부리와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에 발랐다.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든지 정결하기를 원하신다. 무슨 일에든지 정결하기를 원하신다. 전 인격이 정결하기를 원하시고 모든 삶이 정결하기를 원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은 거룩(정결)해야 한다. 정결하게 되기 위한 속건제는 그래서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하나님께서 드리라고 정한 대로 예외 없이 드려야 했던 것이다.



3.힘이 미치지 못한 자는 힘이 미치는 대로(21, 22, 30, 32절)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은 어떤 자세로 정결 예식을 감당해야 할까? 본문에서는 “힘에 미치는(야드 나사그)”이라는 표현이 무려 4회나 반복된다. “손이 도달하는, 손이 붙잡는, 손에 이르는, 손으로 따라잡다…”와 같은 의미가 있다. 직접적인 의미는 “할 수 있는 대로”라고 하면 적절 하겠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가진 것, 나의 소유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의미이기도 한다.

*정결 예물의 적고 많음에 상관치 않으시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서 정한 규례를 지킬 것을 요청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라고 하셨다. 또,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보시면서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막 12:42).” 고 하셨다.

*예외 없이 “힘이 미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드리는 정결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제물을 준비하는 마음에 담긴 최선의 모습을 보시기 원하신다.



나는?
-악성 피부병이 치유되어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드려야 할 정결 제사는 복잡하지만 꼼꼼하게 드려야 한다. 속건제를 먼저 드리고, 속죄제와 번제, 소제에 이르기까지 정한 제물을 준비하여 정한 방법을 따라 온전하게 드려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회복 되는 것이다. 거저 회복되지 않는다. 반드시 정한 규례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 반드시 준비해야 할 정결 제사의 제물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만큼 삶이 가난해 질 수 도 있다는 것에 있었다. 처음부터 가난한 이도 있었겠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진영 밖에 격리 되었을 때, “격리 바라지”에 삶의 패턴이 맞춰 지면 자연스레 빈곤해 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예를 들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랜 간병에 장사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그가 당시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악성 피부병”에서 몸이 회복되어 이제는 하나님 나라 거룩한 백성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만한 정결한 백성의 상태로 회복되게 하기 위한 절차를 준비하는 것은 과정 과정이 감격이었고 감동이었으리라.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육신의 질병은 낳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격을 회복하는 정결 제사의 제물을 마련하는 것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그의 회복된 마음이 어떻겠는가?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도 잘 공감하고 계셨다. 아무리 가난하여도 악성 피부병에서 치유된 기쁨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지는 감격이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막히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가난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왜곡된 마음이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정결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결 제사에 드려야 할 제물을 준비하지 못할 정도의 가난한 이들은 특별하게 따로 제물을 특정해 주신 것이다. 이 제물이라도 준비하여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준비할 수 있는 특별한 정결 제사 제물은 “힘이 미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 제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의 간절함, 최선을 다함을 요청하시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공평은 “힘이 미치는 대로”이다.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21절)…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30절), 곧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32절) 준비하여 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공평한 정결 제사를 마치면 이제껏 자기를 괴롭히고 억압하며 속박한 “짜라아트(악성 피부병)”에서 진정으로 해방 된다. 그 해방이 “여덟째 날”에 선포되었다. 여덟째 날은 절망과 고통에서 해방하는 날이다. 가정과 진영, 공동체에서 끊어졌던 것에서 다시 관계가 이어지는 감격 스러운 날이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는 날이고 공동체로 들어오는 날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는 날이다.

-이 기막힌 회복의 날은 “하나님의 공평함”으로 인해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아… 이 여덟째 날이 우리 민족에게 필요하다. 교회에도 필요하고, 가정에도 필요하다. 죄와 사망에 묶였던 나를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날 처럼, 우리에게 여덟째 날의 은혜가 필요하다.


**주님, 자비의 율법, 형편에 따른 공평의 은혜로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힘이 미치는 대로 주님의 공평함에 반응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의 시대, 나라와 민족의 여덟 번째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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