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대속죄일을 맞이하는 마음과 태도 [레 16:23-34]
 – 2022년 03월 30일
– 2022년 03월 30일 –

아사셀에게 속죄의 염소를 보내고 난 후 속죄 제사를 마무리한다. 대속죄일 정결제사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대속죄일의 제의를 이끌었던 대제사장(23-25절), 아사셀 염소를 데리고 나갔던 사람(26절), 속죄제물 고기를 처리한 사람(27-28절) 등이 일을 마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또한 대속죄일의 의의와 신학, 이에 임하는 백성들의 태도를 다룬다(29-34절). 가장 중요한 대속죄일의 의의는 “영원히 지킬 규례(29, 31, 34절)”라는 반복되는 문구를 통해 대속죄일의 의의를 알려 준다.


1.스스로 괴롭게 하여라(29, 31절)
영원히 지켜야 할 대속죄일은 “7월 10일”이다(29절 상). 이 속죄일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자세와 태도는 먼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29, 31절)” 이 문장을 직역하면, “너희들의 영혼을 괴롭게 할지니”이다. 새번역은 “너희가 스스로 고행을 하는 날이다”라고 번역했다. “괴롭게”라는 히브리어는 “인니”인데, “억압하다, 괴롭히다, 겸비하다(humiliate_창피를 주다, 모욕하다, 굴욕감을 느끼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스스로 괴롭게 하여라”는 말은 “금식하라”는 뜻의 관용적 표현이다. 대속죄일에는 전날 7월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 하루를 금식 해야 했다.

이 날에는 스스로 괴롭게 하여(금식하여)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사람이든, 함께 사는 외국 사람이거나, 다 지켜야 했다(29절 하). 31절 에서는 대속죄일이 ‘안식일 중의 안식일(엄격히 지켜야 할 안식일)’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와 같은 명령은 속죄일이 대제사장 혼자만의 정결 제사가 아니라 모든 백성들의 거룩한 동참을 요구하는 날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휴가를 즐겨라”의 의미가 아니라 “대속죄일의 속죄 제사”에 함께 참여하여 집중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대속죄일의 의식을 통한 정결과 속죄는 외적인 의식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로 동참할 때 성취 되는 것임을 알려 준다. 대제사장의 속죄 제사의 모든 과정과 아사셀로 보내는 염소를 보내는 모든 과정을 마음으로 함께 따르라는 의미다.

*백성 각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있어 전문 사역자들에게 의지하고 자신은 그저 관람석의 청중으로 남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런 대리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로 드릴 때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 죄에 대한 자각이 일어날 때 “부끄럽고, 창피하며, 굴욕감”이 일어난다. 죄와 벗하는 삶에 대한 굴욕감이 없다면 죄에 대하여 경계할 수 없다. 일년에 한번 만이라도 죄에 대하여 창피하고, 굴욕감이 일어나며, 죄에 휘둘리는 내 자신이 모욕적으로 다가와 진심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는 예배여야 않겠는가!


2.영원히 지킬 규례라(29, 31, 34절)
일년에 한 번(34절) 7월 10일에(29절) 대속죄일을 영원히 지키라고 하신다. 아버지 제사장이 죽더라도 위임받은 아들 제사장을 통해 매년 중단 없이 지켜야 한다. 반복되는 속죄일 규례는 구약의 속죄 제사가 온전하고 최종적인 용서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전한 구속이 은혜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만이 자신과 세상을 화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동행이 가능하도록 유일한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뿌려진 피에 의해 열렸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새번역_히 10:20).”

*자기 죄를 위해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 했고 자기 죽음도 피할 수 없는 인간 대제사장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영원한 대속으로 자신을 드리셨다.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 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새번역_히 7:27).”

*이로 인해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새번역_히 7:24).”

*매년 영원히 드려야 할 대속죄일 속죄제사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가르쳐 주신 대로 영원 지킬 규례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대대로 지키면 그 은혜가 그치지 않고 지속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있고 생동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딱딱하게 굳어버린 화석화된 형식으로 만드는 탁월한 죄에 빠져드는 재주가 있다.

*오늘날 단번에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주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는 영원히 살아있는 생동감 있는 은혜임에도 이를 예배당에 걸린 성화보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딱딱한 형식으로 전락 시키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말씀의 약속과 성령의 은혜로 생동감 있게 드리고 누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형식으로 전락시키는 재주가 여전히 발휘 중이다.

*왜 그럴까?


나는?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일 년 마다 반복하여 지켜야 할 대속죄일을 단지 제정만 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지켜야 할지 세세하게 가르치셨다. 특히 백성들 각 자가 “스스로 괴롭게 하여(금식하며)” 동참하라 하신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속죄의 기회와 은혜를 허탄 하고 형식화 된 제도로 전락 시키지 말고 각각 개인의 마음에서 부터 나를 위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속죄의 은혜로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나를 위한 한량없는 속죄의 은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죄로 인해 부정해진 삶과 성전에 대한 “한 없는 책임 의식, 쌓인 죄의 부정함을 나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좌절감”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한다. 그런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이가 “스스로 괴롭게 하여” 속죄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목사인 나부터 아론이 자신을 위한 속죄제사를 먼저 드렸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거룩한 말과 모범적인 삶을 산다고 여김을 받지만, 실제로는 교만, 위선으로 똘똘 뭉쳐 있을 수도 있다. 늘 이럴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주님의 속죄의 은혜가 간절해 진다. 그래야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볼 수 있다.

*속죄가 필요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 “내로남불”은 나부터 먼저 적용해야 한다. 자신을 먼저 성찰 하며 사는 생이 되어야지… 직분이 가지는 도덕성으로 자신을 감추는 사악한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늘날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스스로 괴롭게 하는” 마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갈망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바라는 사모함이 큰 법이다.


*대속죄일에 드린 속죄제물의 부산물은 진 밖에 태워야 한다(27절). 교회 안에 밖으로 내어다가 불태워야 할 것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 그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 놓을 때 교회는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불태우지 못해 악취가 난다고 세상이 피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나는, 너희 때문에 너희 자손을 꾸짖겠다. 너희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 너희가 바친 희생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칠할 것이니. 너희가 똥 무더기 위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새번역_말 2:3).” 라고 토로했다!



*주님, 스스로 괴롭게 하며 주님의 긍휼을 사모합니다. 주님의 은혜만 바랍니다. 도와 주십시오.
*주님, 밖으로 버려 태워야 할 것, 태워서 악취를 제거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향기로운 내음 풍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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