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불안함이 밀려올 때… “믿으라” 질문이 생겨날 때 주저하지 말아라 [요 14:1-14]
 – 2022년 04월 01일
– 2022년 04월 01일 –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신다. 제자들을 떠나 하실 일을 설명해 주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참 평안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1.믿으라(1, 10, 11, 12절)
요한복음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모두 동사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모두 6회 사용 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믿는다”는 “신실하다, 진리, 변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들을 가진다.

주님께서는 13장에서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팔아 넘길 것을(13:21) 말씀하셨다. 또 베드로에게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13:38)”을 말씀하셨다. 이를 말씀하시는 과정에서 제자들과의 이별에 대해서도 말씀 하셨다(13:36). 주님의 이런 말씀은 제자들을 충분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님은 그것을 아셨기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새번역_1절).”고 하셨다.

*근심하고 불안하며 염려될 때 가장 좋은 대책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주님께서 실제로 이렇게 제자들에게 처방 하셨다. 이렇게 믿음을 처방 하시면서 자신은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예비 하러 가신다고(2절) 하신다. 주님이 떠나가시는 것은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신 것이다. 지금 떠나가심의 불안함 보다 영원히 함께 거할 소망을 붙잡아야 한다.

*근심은 믿음 없음, 혹은 믿음이 연약함으로 발생한다. 주님께서 떠나 가신다는 말에 근심하는 제자들은 주님이 늘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믿음이 약했다.


2.유일한 길 되신 주님을 믿으라(4-6절)
베드로는 주님께서 떠나가심을 불안해 하며 이렇게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13:36 상)” 이 질문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지금은 따라올 수 없지만, 후에는 따라 오리라(13:36 하)”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본문 4절에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하셨다. 그러나 도마는 분명하게 말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새번역_5절)”

이에 주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새번역_6절).”

*주님이라는 유일한 길을 통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 직접 자신이 아니면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6절 하)고 말씀 하심으로 확언하신다.

*실제로 “길, 진리, 생명”이라는 헬라어 원문은 모두 “그”라는 정관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은 유일한 그리스도 메시아 이시기에 주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영원히 함께 거할 거처를 예비 하러 가는 것을 믿으라고 하신 주님은 그 거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자신이심을 또한 강조하셨다. 도마처럼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 거처에 들어갈 수 있다.


3.주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으라(9-14절)
주님은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 하신다.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9절).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된 관계임을 믿으라고 말씀 하신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면 “…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새번역_11절 하).”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인 것을 여러 차례 강조 하신다(7, 9, 10, 11절).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주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새번역_12절).”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한다. 주님께서 하신 가장 큰 일은 “예수님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와 한 분 이심을 믿게 하는 일이 주님께서 하시는 가장 큰 일이다.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또 한 가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새번역_13-14절).” 이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주님을 믿는 자가 주님의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이름의 권세로 주님의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다.


나는?
-살다보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교회는 습관을 따라 왕래하지만, 주님이 믿어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때가 있다. 본문의 제자들도 이런 상황이다. 3년 간 동고동락하며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들도 그 일을 행하였지만, 여전히 주님이 누구이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떠나 가시겠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주님도 당황 하셨겠지만, 정작 제자들이 더 당황했다. 주님이 메시아 이심이 분명한데, 떠나 신다니? 스스로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하시다니? 자신이 가는 길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시는데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데? ….

*믿음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신다. 주님과 가장 가까이 지낸 제자라는 직분도 믿음을 보증하지 못한다. 주님과 가장 가까이 3년을 지낸 제자들의 모습은 평생 주님을 “믿어도 믿지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예외일까? 결코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도 빌립이 주님께 던진 답답한 질문이 나의 질문일 수 있다. 주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하고 말하느냐(새번역_9절).” 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에게 하시는 답답함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인 것이 흥미롭다. 많은 이들이 주님께 사소한 질문을 주저한다. 말씀을 읽으며, 들으며, 공부하며 도무지 묵묵부답이다. 분명 질문이 생길 법 한데, 도무지 질문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는 도마와 빌립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는 질문이라도 그때 그때 반응하고 던지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그들의 엉뚱한 질문에 오히려 주님은 더욱 자세하고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펼쳐주셨다.

*”무작정 믿으라가 아니라 잘 듣고 믿으라”는 듯이 일일히 설명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도 감동이다. 오늘날 신앙의 문제는 질문과 대답의 대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삶과 신앙의 영역에서 주님과 주고 받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토로하고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것은 익숙할지 몰라도, 인격적으로 주님께 조곤 조곤 여쭙지 않는다.

*신앙의 고민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민이 들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거나, 주님을 신뢰하기 보다 자기 주관을 따라 말씀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내가 알아서 믿을 테니… 라는 식이다. 고민도 질문도 당연히 거부한다.


**도마와 빌립은 주님께서 진지하게 떠나 가신다는 말씀을 하실 때 줒저하지 않고 불안한 마음으로 반응하고 지체없이 질문했다. 그만큼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주님께 질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께 질문하지 않는 것의 어색함이 주님과의 관계의 어색함일 수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자신은 예수님 잘 믿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내밀하지 못한 것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묵상을 통해 주님께 물어본다. 기도를 통해 대답을 듣는다. 때로 든든한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사들의 가르침들을 통해, 성도들의 삶의 연륜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한다. 신앙은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신앙의 질문을 들어 주시고 대답해 주시기 위해 주님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질문에 반응하고 대답해 주신다. 말씀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시고, 일상의 삶에서 지혜롭게 깨닫게 하신다.

**질문할 수 있게 생각나게 하시고, 대답을 들려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질문을 통해 신앙의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주님, 늘 도마나 빌립 같이 질문하는 제게 자상히 대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질문하는 이들에게 주님처럼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 “믿으라”고 처방하신 말씀따라, 근심과 불안함이 밀려올 때 “믿음”의 방벽을 굳게 붙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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