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갈팡질팡 빌라도… 굳건하신 주님…[요 18:39-19:16]
 – 2022년 04월 14일
– 2022년 04월 14일 –

빌라도에게 계속 심문을 받으신다. 빌라도는 관사 밖 종교 지도자들과 관사 내 법정의 주님을 오가며 대화한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 하에 있었기에 사형에 대한 권한은 총독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주님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범으로 내모는 것이다. 정치범은 십자가형으로 다스려졌다. 유대 사회에서 십자가형은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했다. 그 방법은 로마의 사형 언도 밖에 없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치밀하게 주님을 죽이기 위해 준비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큰 유월절 축제일에, 최근 3년 동안 백성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주님을 단번에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로 죽일 수 있는 계획이었다. 악은 이렇게 치밀하게 세상을 장악한다.

빌라도는 주님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유월절 특사로 풀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한사코 반대했다. 그들은 대신 명백한 흉악범인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빌라도가 이런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이해했을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선동했다.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새번역_15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비열한 짓에 빌라도를 이용할 뿐이었다. 빌라도는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의에 눈을 감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음모를 성취하기 위해 내뱉는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면서도 저렇게 외쳤을까?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저 외침을 들으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을 이루시고, 모세를 세워 출애굽의 역사를 이끄셨으며,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 백성과 나라의 정체성을 이어오게 하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는 말임을 알고서도 저렇게 외쳤을까?

눈앞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마저 서슴없이 넘나드는 비열함과 악함이 두렵다. 그 무지와 무식함에 기가 찬다. 그런데 그때의 종교지도자들 뿐일까?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가? 우상과 무당, 이단들과 기꺼이 손을 잡고, “진리 따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너무도 손쉽게 저버리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두렵다.


나는?
-빌라도에게 주님은 애초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밖에 되지 않았다. “진리가 무엇이냐?” 물으며 관심은 가졌지만, 그뿐 이었다. 그에게는 소동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위세가 더 신경 쓰였다.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바라바를 외치며 주님을 죽이라는 지도자들의 성화에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씌워 채찍질 하였다. 군사들은 주님을 유대인의 왕이여 라고 조롱하며 손으로 때렸다(9:1-3절). 지도자들의 마음을 달래볼 심산 이었던 것이다. 적당하게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명백하게 죄가 없는 이를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었다.

-그렇게 채찍질 당한 비참한 몰골을 지도자들에게 보이며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새번역_4절 하-5절).”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하고 말하였다(새번역_6절).”

-빌라도는 주님이 아무 죄 없음을 알았다.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대제사장들은 그때서야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새번역_7절).” 라고 말하여 자신들이 주님을 죽이려는 직접적인 이유를 말한다. 주님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저들의 미움을 받은 것이었다. 빌라도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웠다(8절).

-빌라도는 주님께 재차 묻는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아무 대답 없는 주님께 회유까지 한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새번역_10절)… 주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새번역_11절)… 주님의 말을 듣고 더욱 주님을 놓아 주려고 힘 썼다(12절). 하지만 비열한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다시 황제폐하를 반역하는 자 라고 매도하며, 빌라도를 협박했다.

-빌라도가 최종 판결을 앞 두고 다시 유대인의 왕 예수와 폭력배 바라바를 놓고 사면 선택을 하라 하자, 유대인들은 우리에게 왕은 황제 폐하 밖에 없다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13-16절).


*빌라도는 주님의 무죄를 알았다(4절). 하지만, 계속해서 종교 지도자들의 협박에(12절) 영향을 받으며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준다. 옳다고 여기는 것을 접고 비열한 협박에 비굴하게 소신을 접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나도 빌라도처럼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빌라도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나지만, 나도 상황과 여건이 되면 저럴 수 있겠다 싶어 쉽사리 비난만 하지 못하겠다. 특히 목사로서 말씀에서 옳다고 기록된 것을 소신있게 전하려 할 때, 다른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을 내 비치는, 소소하고 애교있는 협박에 너무도 쉽게(?) 소신을 접을 때가 종종 있지 않나…. 에휴…. 그러니 할 말 없다. 빌라도나 나나 다를 바 없다.

*빌라도는 총독 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나 그저 종교지도자들의 협박과 대중들의 시위에 법과 원칙을 저버리는 삶을 살아갔다. 목사에게 말씀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근간임을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이다. 때로 말씀의 정체성이 도전 받을 때 빌라도의 모습을 따라가면 곤란하다. 내가 빌라도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달랐다.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셨다. 충분히 변호하고, 검증해서 자신의 무죄를 밝힐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시기에 초월적인 방법으로 일거에 대제사장의 무리들을 심판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셨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시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꺼이 죽기 위해 침묵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내는 길에 어떤 영향도 선택과 결정을 왜곡받게 하지 않는 주님의 모습이 내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으셔야 했기에 담담하게 죽으러 가시는 주님의 순종을 닮아야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 안에 살아간다는 것의 모든 “권한(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과 행동으로 오롯이 살아내신 그 모습을 닮는 나의 삶 이기를 소망한다.

*요한의 증언에 따라 이 기록이 전해지고 존재하는 모든 시간, 장소에서 빌라도는 기득권에게 휘둘리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한 모습으로 남는다. 나는 주님 앞에 서기까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때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


**주님, 이리 저리 눈치보고 갈팡질팡하는 빌라도의 모습이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나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주님, 주님처럼, 더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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