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큰 물고기 뱃속에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요나 2:1-10]
 – 2022년 04월 22일
– 2022년 04월 22일 –

미리 준비하신 큰 물고기의 뱃속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쉴 새없이 들어오는 물고기, 해초, 바닷물 등이 뒤섞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요나에게 큰 물고기 뱃속은 “스올”이었다(2절). 그 상태를 요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물이 나를 두르기를 영혼까지 하였으며, 깊음이 나를 에워쌌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휘감았습니다(새번역_5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요나의 목소리는 간절하고 간절 했을 것이다.

*꽤나 진지한 질문(?) ….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 수 있을까? 혹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성인 남자가 3일 동안 거할 큰 공간이 있는 물고기는 도대체 얼마나 커야 할까? 등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요나에게 일어났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3일 이었다.


아무리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는 여정 이었지만, 하나님의 마음, 뜻에 대한 기민한 감각은 여전했다. 요나는 바다의 풍랑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선원들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힘을 쓸수록 더욱 선명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여호와의 얼굴(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그였지만 자신의 행동이 선지자로서 매우 적절하지 못하기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너희가 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줄을 아노라(12절).”이라고 했다.

*요나는 악이 가득찬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지중해의 항구 욥바로 내달려, 마치 다시스로 가는 배편에 승선 했었다. 당시 다시스는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지던 곳이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세상 끝이라도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 던지는 무모함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며 바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감동을 거부하기 위해 온갖 핑계거리를 너무도 당연하게 만들어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는 것도 인간이다.

*하지만 주님은 인간이 그런 무모함에 빠져 하나님의 뜻에서 떠나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방관 하기를 손쉽게(?) 결행 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뜻에 대하여 방관하고 거절하는 선지자를 절대 가만 놓아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당장 거절하고 거부하여 세상 끝까지 도망하여도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돌아오도록 포기하지 않고 일깨우시는 것이다. 요나에게는 “말씀, 큰 폭풍, 사람, 큰 물고기”를 동원하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동원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주님은 큰 물고기 뱃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스올과 같은 어둠 속에 요나를 집어 넣으셨다. 망망대해의 바다 더구나 큰 폭풍이 일렁이는 그 속으로 던져 졌으니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 가운데서 요나를 건지시되 3일 동안의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요나를 밀어 넣으셨다.

*요나는 도망하기에 급급해서 주위의 모든 방법들을 다 의지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림, 다시스로 가는 배를 발견함), 물질(다시스로 가는 배삯)으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바다 한 가운데로, 큰 물고기 뱃속에 던져지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할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야 자신의 힘과 지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항복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세상을 향한 구원의 경륜을 받아 들인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새번역_9절).”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하나님의 구원만 바래야 할 상황에 직면하자, 그토록 고집했던 민족주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토록 고수 했던 자기 생각, 자기 방법, 자기 열정이 얼마나 덧 없는 것인지를 처절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아래 자신의 삶이 속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죽음에 직면하니 내가 고집하던 것이 부질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무기력하기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뿐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대적하고 거부하게 하는 자기 생각, 고집, 성향, 경험, 민족주의, 가치관, 세계관 등이 “헛된 우상”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b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버립니다. (b 또는 ‘주님께 바쳐야 할 충성을 저버립니다’)_(새번역_8절)”

*헛된 우상에 집착하니, 삶이 헛된 큰 풍랑 속에 던져 진 것이다. 도무지 힘쓸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큰 물고기 뱃속에 던져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 생각, 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열망”만이 간절해 질 뿐이다.


그런데 요나의 기도 속에서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도망친 불순종을 회개하는 직접적인 기도가 없다. 하나님 죽을 것 같습니다.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서원을 갚겠습니다. 희생제물 바치겠습니다. 서원 지키겠습니다… 구원이 오직 주님에게서만 나옵니다….이런 내용 뿐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3일 만에 요나를 물고기를 명하여 육지에 토해 내게 하셨다. 이유는 분명하다. “빨리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해라!” 이다. 하나님은 분명하고 처절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형식적인 매달림 같은 고백으로 3일을 보낸 요나를 살려 주셨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희한하다. 요나가 거부하면 다른 선지자를 세우면 그만인데… 하나님은 끝까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형식적인(?) 기도에도 그 기도를 기다리셨다는 듯 응답하여 뱃속에서 육지로 던지셨다.

*아! 마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듯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랬다. 적당히 회개하고, 적당히 부르짖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은 다시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요나의 행동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새우셔서 이방 나라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약속 하셨기 때문이며, 지금은 요나를 통해 니느웨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 이시다.

*요나가 비록 온전한 회개로 주님 앞에 서지 않았지만, 회개하려고 기다리는 니느웨 백성들을 위해 그저 보내신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자비하심이 요나를 살리고, 니느웨 백성들을 살리신다. 이 사랑을 요나의 탐탁치 않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도의 행간에 심겨 놓으셨다. 아….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나는?
-고집 부리지 않고, 어둠의 큰 풍랑 속, 큰 물고기 뱃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환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마음 생각”을 놓치지 않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신학과 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욥바로, 다시스로 내달리지는 않을 것인데….

-처절한 인간의 한계에 직면한 바다 한 가운데, 큰 물고기 뱃속은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큰 사랑을 직접 직면하는 놀라운 지점이기도 하다.

-구원은 알량한 나의 신학지식, 나의 경험, 나의 고집과 소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만(오직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_9절)” 오는 것임을 깊은 바다 속, 큰 물고기 뱃속에서 바다풀이 자기 머리를 휘감은 3일을 보내면서 진실하게 고백하였다.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져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렀으며, 주님계신 성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새번역_7절)” 죽음의 순간에(죽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로 붙잡을 때 하나님은 “기억”해 주신다.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도망했지만, 도망친 그라도 주님은 기억해 주신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선지자로서의 부름을 거절했던 요나가 선지자로의 부름에 순순히 순종의 응답을 드린다. 그 때 주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셔서 요나를 뭍에다가 뱉어 낸다(10절). 사명에 순종하여 붙잡으니 어둠에서 빛으로 내뱉어(던져) 졌다.


*주님, 큰 물고기 뱃속에 던져지기 싫습니다. 늘 순종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 역시 사명따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즐겁게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안에 늘 거하고 싶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