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나 vs 니느웨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 [요나 3:1-10]
 – 2022년 04월 23일
– 2022년 04월 23일 –

다시 선지자로서 사명을 부여 받았다. 큰 물고기가 토해낸 뭍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했다. 요나는 곧바로 순종하여 니느웨로 갔다. 그의 순종은 어땠을까? 니느웨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1.요나는 적당하게, 마음대로(3-4절)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다(3절).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향하여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하셨다. 하지만 요나는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4절).

요나는 바다 가운데서, 큰 물고기 가운데서 건져 주시고 다시 주신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하지 않는다. 사흘 동안 걸어다니며 되도록 모두가 듣도록 전해야 하건만, ‘설렁 설렁, 적당하게’ 선포한다. 왜 그랬을까?

두 번째 주신 소명, 기회였지만, 요나의 순종이 실망 스럽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쳤던 그에게 바다 한 가운데서, 큰 물고기 뱃 속에서 3일의 기회를 통해 주신 두 번째 기회였으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가 아니라 “순종의 흉내”만 냈다.

*3일 동안 스올과 다름 없는 어둠에서 건져냄을 받아 다시 기회를 부여 받았음에도 그가 니느웨에서 보여준 순종은 실망스럽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의 회개 없는 “설렁설렁 기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요나를 살리셨고, 니느웨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을 적당하게 마음대로 믿음에도 무수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 요나는 그 한없는 자비로 주신 기회도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가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설렁 설렁이었다. 아…. 이스라엘아…..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지만…. 정작 사흘 길의 큰 도시 니느웨에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칠 뿐이었다. 더구나 “40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새번역_4절)” 이라고 무작정 재앙만 외칠 뿐이었다.



2.니느웨 백성들은 철저하게,하루 만에(5-9절)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옷을 입었다(새번역_5절).” ‘믿고(아만)”는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다, 믿다”라는 의미가 있다. 하루동안, 니느웨의 일부지역에서 요나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확실하게 믿었다”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더구나 이런 소문이 왕에게 까지 이르고 왕도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6절). 더 나아가 왕은 왕의 명령으로 니느웨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새번역_8절)”

그들은 절실했다. 왕부터 더욱 간절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새번역_9절).”

*설렁 설렁, 마음대로 믿고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경고하고 지키시려고 했으나 “형식적인 순종”, “마음없는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던 이스라엘과 확연한 비교가 된다.

*니느웨 백성들과 왕은 저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왕 부터가 왕복 대신 베옷을 입고 왕좌 대신 잿더미에 앉아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진정한 이 세상의 왕은 하나님이심을 온 몸으로 표현하였다. 짐승들까지도 굵은 베옷을 입게하여 창조세계의 모든 만물들이 회개의 자리에 동참하도록, 예외없이 선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청스럽고 적당한 순종 보다 얼마나 확실히 다른가!


3.하나님의 돌이키심_기다리고 바라봄(10절)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새번역_10절).”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는 형식적이지 않았다. 요나처럼 대충, 설렁 설렁, 자기 마음대로의 회개도 아니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보셨다.” “보았다(라아)”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보다, 바라보다, 조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께서 마치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를 기다리셨다는 듯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다림의 바라봄은 재앙을 내리겠다는 뜻을 회개의 진정성을 보시고 즉각 돌이키시는 결정으로 나타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응답하여 주시듯 이방 민족, 이스라엘의 원수 국가 큰 도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새번역_대하 7:14).”

이방 민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이었다. 그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을 “바라보신” 하나님께서는 즉각 재앙의 뜻을 돌이키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늘 이렇게 “기다리고 바라보심”의 사랑이다.

*원수국가, 이방민족도 이렇게 돌보시는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겸손”하기보다 “스스로 교만”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기 보다, 우상들을 찾아 기도하며,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악한 길을 찾고 찾는 죄를 반복하였다. 선지자들을 보내 무수한 재앙을 선언하셨으나 무감각해질 대로 해진 그들의 마음에서 “기민한 회개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완악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나 니느웨는 한 하루동안, 그저 하나님의 명령에 형식적으로(?) 반응하는 적국 이스라엘 사람의 미친 소리같은 외침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신분이 높고 낮음이 상관 없었다. 재앙에서 구원 받으려는 간절한 회개의 행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심지어 왕 조차 백성들의 이런 행동을 더욱 독려하며 사람 뿐 아니라 짐승까지(온 피조세계의 모든 생명체들) 회개의 시간, 돌이킴의 잿더미에 오르라고 명령했다. 놀라운 “돌이킴”의 역사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에서 일어났다!



나는?
-요나의 능청스럽고(?) 형식적인 순종을 통해 니느웨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흘길 면적의 큰 도시 니느웨에 하루 동안 거닐면서 40일이 지나면 멸망할 것이라는 외침 만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은 기민하게 반응하였다.

-신분이 높고 낮음에 상관 없이, 심지어 왕은 요나로부터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성 안에서 일어나는 백성들의 일을 보고받고 더욱 더 회개를 선포하고 모든 니느웨 백성들이 함께 동참할 것을 공포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요나는 사흘 거리의 니느웨에 “하루 동안만” 선포했지만, 니느웨의 백성들과 왕은 “하루 만에” 회개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무딘 마음과 너무도 비교된다.


*오늘날 나, 우리들의 교회 공동체는 어떨까? 니느웨로 대변되는 세상은 어떨까? 정작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에 무감각하여 형식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떨까? 요나와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요나보다 더 ‘여호와의 낯’을 피하는 것에 습관이 되고, 참아주시고 다시 불러 주신 사명의 자리를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는 순종 보다, 순종의 형식만 보이려는 모습은 없을까? 왜 없겠나… 그래서 마음이 무겁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을 영혼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심을 깨닫는다. 기다리셨다는 듯이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향해 결정된 재앙을 돌이키는 하나님 이시다. 재앙을 내리시는 것 보다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회개의 기회를 주어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재앙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바라 보시고” 즉각 돌이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기다림의 바라봄”의 긍휼이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나에게도 구원의 사랑을 기다리셨다는 듯 즉각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랍다!

*무디어진 마음 되지 않도록… 설렁 설렁, 내 마음대로 형식만 갖추려는 순종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니느웨 백성들이 “기민하고 간절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모두 함께” 회개 하였듯이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이처럼 반응하고 순종하며 함께 믿음의 길 걸어가여지…. 암… 그래야지…


*주님, 저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무게를 주님의 마음과 같이 받아들이며 순종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기민하고 간절하며, 진실하게 하나되어 주님의 뜻이 우리 공동체의 삶에 이루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형식적인 순종 흉내도 내지 않도록 분별하게 도와 주십시오.
*주님, 기다리며 바라 보시다가 재앙은 돌이키시고 구원은 속히 베푸시는 사랑의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저도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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