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파괴하는 자 앞에 철옹성이 웬말인가! [나훔 2:1-13]
 – 2022년 04월 26일
– 2022년 04월 26일 –
니느웨의 멸망의 순간을 현장감 있게 중계한다.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남유다를 유린하고 있던 초강대국 앗수르의 미래를 전해듣는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치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처절하게 점령 당할때와 같은 “데자뷰”를 보는 듯한 니느웨의 처절한 멸망의 소식은 그 백성들에게 “복음 중의 복음”이었다. 안간힘을 쓰며 멸망을 막아보고자 분투하지만,하나님을 대적으로 삼은 이들의 끝은 멸망 뿐이다. 강하고 부유하였으나 철저하게 파괴되고 사라질 것이다.



1.아무리 강력해도…(1-4절)
니느웨는 자신의 힘을 과신했다. 하나님을 대적 했고 그 뜻에 철저하게 불순종했다. 힘이 강성하여 지며 주변 나라들을 정복해 나갈 때 약탈을 일삼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힘으로 약소국 위에 군림했다. 이런 앗수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나훔을 통해 강대국 앗수르가 또 다른 강대국의 침공으로 멸망하게 될 것을 확고하게 선포 하신다. 아무리 강력한 힘으로 방어한 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앗수르의 힘은 아무것도 아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길을 지키고 허리를 끈에 조이며’ 있는 힘을 다해 막아 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멸망은 정해졌다.

하지만 지금 앗수르는 최강대국이다. 앗수르가 보기에 아주 보잘 것 없는 변방의 작은 나라 유다의 초라한 한사람이 외치는 멸망 예언은 일고의 가치가 없이 들렸을 것이다. 누구도 나훔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라, 천하를 호령하는 포악한 앗수르의 멸망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나훔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멸망이 시작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아무리 강력해도 하나님보다 강력할 수 없다. 앗수르보다 더 강력한 제국이 봇물 터지듯 몰려와 니느웨를 멸망 시킬 것을 예언하신다.

*추풍낙엽….아무리 강력한 국가 였어도, 강력한 군대가 있어도, 모든 풍요함이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면 힘을 쓸 수 없다. 한 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120여년전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지만,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앗수르에게 자비를 거두셨다. 상상할 수 없었던 앗수르의 멸망은 자기 백성을 유린하는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셨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 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2절).”

*아무리 강력해도 하나님의 진노앞에서는 추풍낙엽….. 그렇기에 악한 자들의 강성함과 부요함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곧 떨어진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면 그 평안 안에서 걷는다.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강력함보다 더 강력한 힘을 드러내신다.

*세상의 강력함을 “파괴하는 자”가 곧 하나님이시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이것이 진노를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다. 악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파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자기 백성을 악한 나라에서 반드시 회복 시키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참된 축복 안에 거하고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2.파괴하는 자 앞에서는 안전한 곳이 없다(5-14절)
니느웨 백성들은 자신들이 거하는 곳을 난공불낙으로 여겼다. “해로” 역할을 하는 천연의 주변 강들에 둘러 싸여 있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침략하지 못하는 성이었다. 하지만 “파괴하는” 하나님의 의지 앞에서는 소용 없다.

자신들보다 강력한 군대가 없다고 자부했지만, 더 강력한 군대가 봇물터지듯 밀려들것이다(3-4절). 하지만 이것으로 멸망 당하기 보다 자신들이 그토록 의지했던 천연의 방어 조건(주변의 강들)에 의해 니느웨를 순식간에 휩쓸려 무너진다. “마침내 강의 수문이 터지고, 왕궁이 휩쓸려서 떠내려간다(새번역_6절).”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여겼던 강의 방벽이 자신들을 덮치는 또 하나의 군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파괴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피할 자, 피할 곳은 없다. 아무리 철옹성이라고 자부 하여도 그것을 깨뜨리시며 심판하신다.

자신들이 주변국들을 점령하며 자행했던 폭력과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그대로 되갚음을 당한다. 가장 존귀한 자리에서 가장 천한 자리로 내팽개쳐지는 왕후를 바라보며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며 가슴을 칠 것(7절)”이며, 그 많던 백성들은 항전을 포기하고 제 살길을 찾아 도망 갈 것이다(8절). 자신들이 점령했던 나라들에게서 빼앗은 금과 은들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될 것이며(9절), 자신들이 의기양양하게 바라보았던 겁먹은 사람들의 표정을 자신들이 짓게 된다(10절).

*하나님의 대적이 되면 이처럼 철저하게 파괴 당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을 파괴하는 자로 만나지 않았다. “임마누엘”로 만나게 하셨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며, 하나님 안에 거하라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나는?
-하나님이 대적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본문은 “철옹성을 쌓고 자기 힘을 의지하여 폭력을 행하던 앗수르”를 통해 자기 힘으로 자기가 만든 난공불낙의 성을 의지하여 자기 힘을 과시하며 교만히 행한 자들임을 알게 한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철옹성, 난공불낙의 성”을 안전지대로 삼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악함으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대적임을 깨닫게 하신다.

-자신의 강성한 힘으로 이웃을 억압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파괴하시는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대적들이 아무리 스스로 강성하다고 외쳐대도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 그 교만과 악을 무너뜨리신다.

*우리는 파괴하시는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에 설 것인지, “임마누엘의 하나님” 안에 거할 지 늘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난공불낙의 성은 어디에도 없다. 스스로 안전하다 여기는 그곳이 가장 허무하게 무너질 곳이다.

*하나님의 품, 하나님의 편이 가장 안전하다. 나를 그 품 안에 거하게 하신 것이 그래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인 것이다. 세상의 잘됨과 부함과 강함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악함과 함께 하기에 언제든 무너질 때가 있다. 하나님은 악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파괴하는 자 앞에 철옹성은 쓸데없다! 난공불낙은 허무하다!



*주님,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주님, 파괴하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겠습니다. 피할 곳 없는 심판이 악이 가득한 그 곳을 언제든 파괴하실 것을 알기에 세상의 악과 동행하지 않겠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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