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민 22:36-23:12]
 – 2023년 05월 05일
– 2023년 05월 05일 –
모압 왕 발락과 발람의 만남이 이루어 졌다. 발락은 발람을 극진하게 대접하며 발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주의 선언을 해주길 원했다. 발락은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발람은 그에게 상당한 복채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축복하기로 계획하셨고 이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1.발락과 발람, 마침내 만나다(36-40절)
발락은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가에 있는 성읍까지 마중나가, 기럇후손까지 함께 이동하고 소와 양을 잡아 발람을 극진히 영접한다. 자신이 원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위해 발람에서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37절). 발락은 흥분해 있다. 이에 반해 발람은 자신을 막아섰던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기 때문인지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시는 것만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보십시오, 이렇게 제가 임금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저의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 그것이  무엇이든지, 저는 그것만을 말하겠습니다.”(새번역_38절)
 
-발람이 온다는 소식에 발락은 부산해 졌다. 모압의 영토 끝인 아르논까지 가서 맞이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발람을 높여 존귀하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소와 양을 잡아 대접한다. 이 모든 것은 자기가 원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의 예언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 복종하면 매우 간단할 일을 하나님을 거스르기 위해 너무 많은 댓가를 자초하고 있다. 나의 가진 모든 힘을 쏟아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2.발람에게 임하신 하나님(41절-23:5절)
본문부터 24장까지 세 번에 걸쳐 발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축족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첫 번째 신탁은 23:12절까지 이어진다. 발락과 발람은 함께 이스라엘 진영이 내려다 보이는(진의 끝부분만 보이는) 바알 산당으로 올라갔다. 발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해서 드린다. “일곱”은 지극히 의도된 숫자이다. 일곱 수소와 일곱 숫양을 각각 다른 일곱 제단에서 드리는 것은 성경적인 전통이 아니다. 발람은 이방의 신탁 방식을 따라 하나님을 만나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언덕길로 올라가는데 이것 역시 이방의 신탁 방식이다. 이와같은 행동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벌거벗은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이 자신을 찾기 좋은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발락은 신탁을 받기 위해 제단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이방의 방식과 상관없이 그에게 임하셨다.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말하지만(23:4절)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신탁의 말씀만 그에게 주셨다.
 
 
 
3.발람의 축복과 발락의 불평(23:6-12절)
발람이 신탁을 받고 발락에게 돌아왔다. 발락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번제물 곁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았지만 발람이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발람은 발락이 자신을 멀리서부터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서 바위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의 말씀을 전한다.
 
발람이 선포한 말씀은 이스라엘은 여럿 중의 하나가 아니라 홀로 살게 될 것(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숫자가 될 것이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10절)” 발람은 심지어 자신도 이스라엘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발락은 당황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재물을 들여서 발람을 초청했지만 정작 그는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고 말았다. 그의 왕으로서의 권위가 말이 아니다.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읍소하지만 발람은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12절)” 라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발람은 발락에게로 오면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기 때문에 발락이 원하는 대로 말을 해주고 복채를 챙길 수 없었다. 발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뿐이었다. 발락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와 같은 다이내믹한 발람과 발락의 일이 모압 땅에서 펼쳐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대적들을 이렇게 다루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모르는 모든 사람과 사건을 주장하셔서 나를 향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 주신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선언했다. 발람과 발락의 사건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시지어 자신도 이스라엘과 같이 도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된 삶을 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발람과 같은 소망을 품었으면 좋겠다. 나의 삶이 선명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는 삶이기를 바란다.
 
-발락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정성스럽게 들여 발람을 초청하고 맞이했으나 그의 바램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기름보다 오직 공의를 행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미 6:7-8).
 
-발락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발람을 원망한다. 발람은 발락의 호의에 부응하지 않았다. 나를 극진히 대접한 사람에게 그의 기대와 다른 말씀을 전해야 할 때 나는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좀 더 정직하게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을 수 있는가!
 
 
 
*주님, 저도 발람의 이 순간의 모습처럼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전하겠습니다.
*주님, 나에게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복 주심을 세상이 인정하는 믿음의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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