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시편 73:17-28]
 – 2022년 02월 19일
– 2022년 02월 19일 –
세상에는 너무도 불합리한 일들이 많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듯 하여 실망은 쌓여만 간다. 하지만 마침내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깨닫게 되었다(17절). 하나님은 악인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멸망 시키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한 심판은 “갑자기(19절)”이루어질 일이기에 지금 형통한 것은 형통한 것이 아니다. 특히 이렇게 갑자기 이루어 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황폐(샴마)”와 “전멸(싸푸 타무)”이라는 표현으로 극대화 시킨다. 황폐 하였다의 뜻은 ‘저주를 받았다’, ‘공포스럽다’의 의미인데, 그만큼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 공포스럽고 끔찍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전멸 하였다는 의미는 ‘형통함이 끝났다’는 뜻으로 악인이 형통한 시간이 끝났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만이 남았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아삽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서 자신의 “무지함(22절)”을 회개한다. 그는 악인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도 무지하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무시거나 무관심 하시다고 한탄한 자신도 무지함을 고백한다. 이는 짐승과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제 이것을 깨달았으니 다시 하나님만을 가까이 하겠다고 결단하고 있다.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시므로(23절),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시기에(24절), 내가 주님과 함께 하여 다 바랄 것 없이(25절),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의 든든한 반석, 받을 몫의 전부(26절)”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선명하게 고백한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 떠난 사람은 멸망 당한다(27절).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 하렵니다(새번역_28절).” 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1.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17절)…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시인은 세상 속에서 악인의 형통을 볼 때에는 마음의 근심과 신앙의 시험이 가득했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세상과 악인의 종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세상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을 놓게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고 세상의 형통만 보게 된다. 그러면 신앙의 시험이 반드시 찾아온다. 세상 속에 있지만 늘 하나님의 성소 앞에 있는 것처럼 믿음의 결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성소 앞에_17절),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23절),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28절)…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주님과늘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고백하고 고백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의지적으로라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기개를 다질 수 있는 효과적인 행동임이 틀림없다.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신다.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 지면 온갖 모습으로 유혹하는 악인들과 구별하는 것에 담대해 진다.

*하나님 앞에 서면, 마침내(새번역) 세상이 주는 일장춘몽과 같은 형통, 성공, 명예의 달콤함이 얼마나 쓰디 쓴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 앞에 서면 몽상에서 깨어난다. 나도 저들처럼 살아야지 혹하는 마음에 금새 금이 간다.

*하나님 앞에 서면 악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17-18절) 보인다. 악인의 형통은 반드시 끝이 있다. 그곳에 공의와 정의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나님 앞에 서면… 일장춘몽은 사라진다.

*천당아래 분당… 조물주 위에 건물주… 이런 물질지상주의가 섬뜩하다. 하나님 앞에 서면 이런 것들이 “갑자기” 황폐하게 되고 멸망 당하게 될 것인데… 그럴 것인데 여전히 사라질 것에 마음이 빼앗겨 믿음이 흔들린다….

*아… 빼앗긴 마음에 하나님 앞에 설 용기가 다시 회복 될 런가?….



2.주를 멀리하는 자 vs 가까이 있는 것(27-28절)
주님에게서 멀리 있을 수록 악인의 형통에 마음이 질투로 가득찬다. 세상의 성공에 취한다. 하지만 동시에 잊지 말하야 할 것은 그렇게 멀리 멀리 떨어질 수록, “망한다!”, “멸함을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왜 복일까?
먼저 “하나님의 마음, 일하심, 계획 등을 “깨닫게” 된다(17절). 주님께서 악인과 악한 세상을 향해 행하실 일을 깨달아 세상과 악인을 향한 마음이 깨우쳐 진다.

또, 주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주께서 참으로(18절) 악인들을 향해 행하실 일들을 확신케 하여 그들의 악행으로 인한 형통을 질투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신다. 악으로 얻는 형통은 “미끄러지고, 파멸되며(18절), 황폐하고 전멸된다(19절)” 이것을 깨닫는데 어떻게 악으로 이루는 형통을 질투할 수 있을까? 오히려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어 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무지함을 깨닫게 하는 마음의 산란함(쓰림) 양심의 가책등이(21절) 일어도 세상과 함께 하면 이를 깨닫지 못하다가 주님과 함께 하면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악인들의 형통함에 마음이 빼앗겨 있을 때는 “우매 무지”하여 주 앞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다고(22절)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께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상태는 심각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세상과 악인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우둔함과 무지가 깨뜨려 진다. 어떻게 가능할까?

*아삽은 자신의 우둔함과 무지는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23, 25절)”, “주님의 교훈으로(24절)” 깨뜨려지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인도와 보호하심 아래 있음을 확신한다(25-26절).



나는?
-결국 악한 세상의 형통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다. 악한 형통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알게하고 주님의 함께 하여 주심과 말씀의 도우심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피난처, 반석이신 주님 안에 거하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주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복이다.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다. 그 복을 누리는 이는 여지껏 악한 형통에 취해 우둔하고 무지하여 갑자기 멸망할 길로 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복된 소식”을 전파한다.

-아삽이 질투하고 좌절했던 “악한 형통”은 주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주의 말씀으로 비로소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고서야 부질없는 악한 형통을 깨달았다. 온갖 부조리함과 함께 있을 때 보지 못했던 멸망의 길을 주님 앞에(성소에 들어와) 서고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누구나 이렇게 될까? 아니다. 부조리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질투하며 고통스러워서 아프고 아파본 사람이 주님 앞에 섰을 때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는 해답을 들을 수 있다.

-악한 형통에 좌절하고 아파 해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참된 위로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서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악한 형통을 부러워 하면 깨닫지 못한다. 그저 우둔하고 무지한 한 마리 짐승일 뿐이다.

-“주의 말씀”이 악한 형통을 살펴 볼 수 있게 한다. 내가 부러워 하는 세상에서의 형통이 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주의 말씀이 생각 속에 스며들고 마음에 분쟁을 일으켜서 그렇게 세상의 악한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도와주심을 갈망하게 한다. 주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야 할 분명한 이유다.



*주님, 주님 앞에 늘 서 있겠습니다. 쓸데없고 사라질 악의 형통을 마음에 두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의 말씀으로 주님을 가까이 함이 복 자체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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