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곳으로 주님의 발걸음을 옮겨놓아 주십시오[시편 74:1-11]
 – 2022년 02월 20일
– 2022년 02월 20일 –

부제는 아삽의 마스길이다. ‘마스길’은 시편 전체에서 13회 나오는데 “지혜롭다, 명철하다”라는 의미의 ‘솨칼’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지혜시, 교훈시”로 이해되었다. 아삽은 다윗 왕 시대의 찬양대장중 한 명이다. 그는 언약궤 앞에서 제금을 켜는 자로 시편을 열 두편이나 지었다. 역대하에서는 그를 ‘선견자’라고도 불렀다(대하 29:30).

시편 74편의 역사적인 배경은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 멸망 당한 이후이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고 성전도 처절하게 파괴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떠나 버리셨고, 백성들은 포로로 붙잡혔을 뿐 아니라 절망에도 사로잡혔다.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어찌하여…(1절)
아삽의 비탄이 처절하다.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절망스런 마음과 바벨론 군대의 무력이 하나님의 진노임을 고백하는 고백하는 그의 마음이 고통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1절은 “어찌하여”를 2번이나 반복하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당혹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애써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간혹 삶 속에서 “하나님… 어찌하여…”라고 비탄에 빠지는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감나게 일어난다. 차마 현실 인식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반사처럼 “주여…”만 되뇌이든지… “어찌하여, 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라는 말들만 쏟아내는 상황들 말이다.

*대게 그런 상황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한 것들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쓰러질 때 충격파는 이런 반응을 일으킨다. 또, 어떤 하나님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하나님이 무시당하고 감춰진 기막힌 일들 앞에서도 이런 반응이 자연스레 나온다.

*원수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모든 집기들을 빼앗아 가는 것이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처럼(5절)’,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것을 쳐부수고(6절)’, ‘불사르며(7절)’, ‘비방하고 능욕하여도(10절)’ 하나님은 반응이 없으신 것에 도리어 속상한 것을 그대로 표출한다.

*나의 삶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듯 하고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들을 마음 껏 유린하고 깔보며 파괴 하여도 도무지 반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더 속상한 적이 있었다. 아삽의 심정은 고통을 당하고 삶의 기반이 다 무너져서 속상하고 잘망하기 보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세상으로 부터 속절없이 무시당하고 깔보임을 당하여도 도무지 반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더 속상한 것이다.

*”아!… 하나님… 어찌하여….”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성전이 파괴당하고 무너지며, 무시를 당하여도 반응하지 않으셨을까?


**언제까지…(10절)
아마도 상당기간 이 고통과 모욕이 지속된 듯 하다.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역사적인 사건은 단회적인 침공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B.C. 605년과 B.C. 597년 두 차례에 걸쳐 유다를 침공했었다. 이때 상당량의 전리품들과 많은 포로들을 끌고 갔었다. 그리고 B.C.588년에는 세 번째 침공을 감행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1년 6개월 동안 항오를 벌인 끝에 B.C.586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다. 바로 이때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많은 유다 사람들이 학살 당하고 일부가 바벨론으로 3번째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첫 번째 포로가 끌려간 이후 70여년 동안 포로로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억류되었다.

본문은 첫 번째 침공부터 멸망까지 약 20여년을 바벨론에게 유린 당한 상태에서 완전히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참담한 상황에서 울부짖는 외침이었다. 지금 우리의 관점으로 보자면 앞으로 50여년을 포로로 생활해야 한다. 참담하고 암울하며 절망적인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찌하여… 언제까지”만 겨우 겨우 울부짖으며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고백할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 절망 속에 있어야 하는지, 언제까지 저들의 억압 속에서 고통당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하나님을 무시하는 저들의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지… 그저 “어찌하여…. 언제까지”를 처절하게 울부짖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다.



나는?
-그런데 묵상하다 놀라운 점을 깨달았다. 이렇게 철저히 망하고 외면당하고 묵묵부답이어도 시인은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는다. 원망과 한탄으로만 부르짖지 않는다. 그 와중에 “원수들이 주님의 성소를 이렇게 훼손하였으니, 영원히 폐허가 된 이곳으로 주님의 발걸음을 옮겨놓아 주십시오(새번역_3절)”이라고 외친다.

-놀랍고 놀랍다. 원망하고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절망의 현장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주시라고 탄원한다. 주님의 발걸음을 다시 돌려 달라고 소망한다. 나라가 망했지만 하나님은 망하지 않았음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외칠 수 없는 고백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듯한 고난과 고통이 와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듯 하여 절망하여도, 이내 다시 돌아와 주시라고, 발걸음을 돌려 주시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 아삽의 그 믿음이 대단하다.

-망한 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철저히 망했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음도 알았다. 그래서 망해서 고통스러운 한탄보다,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나의 믿음도 이런 믿음이기를 바란다. 지금 당하는 고난만 보지 말고 고난에서 이끌어 내어 주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더욱 더 힘차게 부르짖자! 그래야 산다!

*아삽의 믿음의 자세가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나라와 민족이 더욱 견고히 세워 져야 할 중요한 시기인 만큼…. 더온누리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소신껏 드러내기 위해…. 나의 목양의 현장과 주님께서 붙여주신 모든 이들과의 관계 속에… 나의 가정, 코로나를 지나며 더욱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 시점에….

*주님 “…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아 주십시오!” 외치고 또 외치리라!



*주님, “어찌하여… 언제까지” 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곳으로 주님의 발걸음을 옮겨놓아 주십시오.
*주님, 이번 대통령 선거가 마친 후 이런 탄식보다,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을 감격하고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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