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기록이 살아났고 이야기가 실제가 되었다 [시편 76:1-12]
 – 2022년 02월 23일
– 2022년 02월 23일 –
이스라엘 백성들중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에 ‘알려지셨고 알려지셨다(1절)’고 고백하며 본 시편을 시작한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 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어떤 힘인지… 하나님의 승리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들이 직접 보고 전하며 알려지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출애굽의 기적들과 정복 전쟁에서의 놀라운 승전보들의 기록에서 읽고 알던 역사적 지식이 더 많았다. 그런데 역사적인 기록으로 여겼던 하나님의 역사, 그 놀라운 능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내신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기록이 살아났고, 이야기가 실제가 되었다.” 그 감격의 고백과 찬양이 본문이다. 위대한 승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 이셨는가?



1.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셨다(2절)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으셨다. ‘그의 장막이 살렘에 있고, 그의 거처는 시온에 있다(새번역_2절)’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중심에서 늘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를 지식적으로 모르는 백성들이 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이것을 당연히 여겼다. 문제는 그럼에도 큰 위기와 위협이 닥쳤을 때 원수들의 병력과 규모에 겁을 먹었다. 그리고 불안해 하고 좌절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당연한 지식이 실제와 실존으로 증명된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불화살을 꺽으시고, 방패와 칼과 전쟁 무기를 꺽으셨다. (셀라) (새번역_3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그저 지식에 멈춰 있으면 삶의 위기에서 어떤 능력도 경험하지 못한다. 지식을 넘어 실제가 되어야 막다른 상황에서도 담대한 믿음이 발현 되는 것이다. 나의 믿음이 성경의 지식을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의지와 행동의 동력이 되는 실제임을 의심치 않는다.

*이 시대는 말씀의 홍수의 시대라고들 한다. 넘치는 말씀들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그 말씀들이 도리어 말씀을 질리게 만드는 역린으로 나타난다. 왜 그럴까? 아무리 말씀이 넘쳐나도 그것이 지식에 멈추기 때문이다. 지식에 멈춘 신앙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셔도 늘 불안하고 염려하며 근심을 하나님으로 삼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불화살을 꺽으시고 방패와 칼과 전쟁 무기를 꺽으시는 실제를 경험하게 되면 그 지식은 하나님을 더욱 더 깊게 신뢰하게 되는 선한 자양분이 된다. 실제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 지식은 굳건한 믿음의 재료가 된다.



2.능력의 하나님 이셨다(3-6절)
하나님은 당시 인간의 최첨단 무기를 간단히 꺽으시고, 꺽으신다(3절). 꾸짖으시니 병거와 말이 기절하였다(6절). 이와같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 아무리 막강한 군대라도 힘을 쓰지 못한다. “마음이 담대한 자들도 그들이 가졌던 것 다 빼앗기고 영원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용감한 군인들도 무덤에서 아무 힘도 못 씁니다(새번역_5절)”

출애굽 이야기에서 애굽의 막강한 군대를 홍해에 수장 시키셨던 하나님이 실제 이셨던 것이다. 시내산 꼭대기에 위엄과 영광을 임재하셨다는 그 하나님의 권위가 실제 였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세상의 막강한 용사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는 것이 실제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막강한 군대의 위용 보다 더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그들이 가진 힘으로 약탈한 모든 산들보다 더 찬란하신 분이시다(4절). 영광스럽고 존귀 하시다. 이와 같은 고백이 실제 승리의 전장에서 경험 되었다면, 그 하나님의 능력을 어찌 폄훼 할 수 있겠는가?

*아쉽게도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스스로 너무 폄훼 한다. 내가 인식하고 이해하는 범주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범위를 단정하는 오류를 늘 범한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이것은 어렵겠다…” 우리 스스로의 믿음의 한계를 먼저 규정하며 하나님의 능력도 나의 믿음의 범주 안에 국한 시키는 어리석음을 너무도 빈번하게 범한다.

*이런 상태에서 “능력의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한 것이다. 가늠되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어찌… 그 능력의 권위 앞에 기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경외 받으실 하나님 이셨다(7-12절)
경외, 두려움의 이미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법정”이다. 판사의 권위는 법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은 도대체 어떻게 드러날까?

평상시에는 잘 드러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위급한 순간에, 위기의 찰나에, 이 세상의 왕으로 통치를 드러내시는 자리에서 선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곳은 바로 하늘 법정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땅을 판결하신다(8-9절). 그런데 이 판결은 심판과 구원이 함께 일어나는 판결이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내리셨을 때에 온 땅은 두려워하며 숨을 죽였습니다(새번역_8절)” 땅을 심판하셔서 땅에 억눌렸던 사람들을 구원하셨다(9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심판하시는 “땅”은 이 세상의 군왕들, 세력들, 악한 제국들… 등과 같은 “땅의 권세들”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악한 나라들에게 억눌렸던 이들을 구원 하셨기에 구원받은 이들이나 “땅의 권세들”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권위에 경외함으로 서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는 “하나님께 서원(약속)한 것을 마땅히 지킨다. 서원을 지키는 이들에게 하나님도 마땅히 인도와 보호의 약속을 지키신다. 구원의 약속(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구원 얻은 이들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11절). 하지만, “(땅의) 군왕들은 호흡을 끊으신다. 세상의 왕들은 두려워 한다(새번역_12절)”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하는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지식에 묶어 두지 않겠다. 살아 생동하는 하나님을 늘 사모하겠다.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 벅찬 능력의 실제 앞에 두려워 하지 않을 이 누구이겠는가!

-그런데 세상도, 교회도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억압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으로 여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도리어 “우리 주 목소리 한 번만 발하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색한 시대를 살고 있어 두렵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섬긴다는 교회 지도자들이 무속과 주술을 의지하여 지도자가 되려는 이를 옹호한다. 기막힐 노릇 아닌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전염병과 전쟁과 기근 등으로 다루셨는데, 여기에 도무지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가혹한 심판을 결정하실 때에는 “악한 왕”의 통치에 방치(유기) 시키셨다는 사실이다.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나 멸망 당할 때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떠나 대적하는(불순종하는) 악한 왕”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도가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의 가치를 따라 자기정략과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지도자, 국민들이 먼저인 지도자를 세워 주시기를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을 인식하여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개 하늘과 땅을 섬길 수 있는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또한, 이 시기를 통해 교회 안에 하나님을 모욕하며 경멸하는 주술과 무속에는 눈감고 성경의 가치가 아니라 정치이념을 따라 성도들을 선동하는 지도자들을 분별하여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나의 신앙, 기록이 살아나고 이야기가 실제가 되는 역동적인 삶 이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주님, 지식에 머물다 저무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실제인 하나님의 임재, 능력, 경외함이 오늘 나를 그리스도인 답게 생각하고 말하게 할 것을 믿습니다.
*주님,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따라 분별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대통령 선거 기간에 더욱 주님의 가르침에 합하는 후보를 찾아 선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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