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분명하게 알고 기억하며 굳건히 믿는 하나님이시기에…[시편 77:1-20]
 – 2022년 02월 24일
– 2022년 02월 24일 –
애타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는 시인의 모습이 안타깝다. ‘소리 높여(1절)’, ‘밤새도록 두 손 치켜 들고(2절)’, ‘주님 생각에 골몰 하면서(3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시니(4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 이셨다. 답답한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속으로 고뇌하며 불안해 하던(6-9절) 시인은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서 하신 일, 이루신 일, 해주신 일을 고백한다(10-12절).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해 자연 모든 만물 속에 주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노래한다(13-19절). 고난 당하는 지금…”주님의 백성을 양 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새번역_20절)” 하신 것처럼 구원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간구에 응답 하시지 않으셨다. 이로 인해 자신을 고통 속에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닌지 염려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염려에 머물지 않고 더욱 더 하나님을 붙잡는다. 그렇게 해야 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하나님 만이 주님의 백성을 양 떼처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 받은 느낌이 간혹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본문의 시인이 그 좋은 모델이다. 오히려 더욱 더 구원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완전히 끊겨 버린 것처럼, 낙망감이 깊게 스며 들어 오고, 불안함과 초조함이 더욱 절망을 향해 손짓 할 수록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말이다. 지금 비록 묵묵부답하시는 하나님이셔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는 앞서 행하시며 먼저 구원의 반석, 피난처로 이끌어 주셨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암담할 수록, 버림 받았다고 느낄 수록 더욱 더 “의지적으로, 믿음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되 단지 떼를 쓰듯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 “가장 높으신 분께서 그 오른손으로 일하시던 때, … 그 때를 사모합니다(새번역_10절)”,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나는 회상하렵니다(새번역_11절)…”, “주님께서 해주신 모든 일을 하나하나 되뇌고…. 주님께서 이루신 그 크신 일들을 깊이깊이 되새기겠습니다(새번역_12절).” 이라고 각각 고백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보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분명하게 알고 기억하며 또박 또박 고백하는 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역사를 속속들이, 지식과 삶으로 깊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분명하게 알고 기억하며 굳건히 믿는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의 일들이 증거가 되어 지금 시인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묵묵부답 하셔도 절망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 하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베짱이 아니면 절망 속에서 이렇게 고백하며 기다릴 수 없다.


-이는 곧 “주님의 백성을 양 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새번역_20절)”음을 알고 있기에 하나님의 선명한 인도하심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초조해 하지 않고 견딘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양 떼”처럼 인도 하시기에 “곧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굳이 음성을 들려 주실 때가 아니기에 묵묵부답인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고난 당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묵묵부답 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알고 기억하여 굳건하게 믿는 신뢰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의 역경이 여전하다. 오미크론이 대세종이 되면 엔더믹을 선언해도 된다고 예측을 내어 놓지만, 모를 일이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이 막막한 상황속에 시인의 태도를 눈여겨 봐야 한다. 절망적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1절)”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희망은 하나님께 있음을 놓지 않는다. 묵묵부답이신 하나님께 그럼에도 “의지적으로” 먼저 고백하고 부르짖는다. 이 부르짖음이 삶의 희망이 된다. 무력으로 짓밟힌 예루살렘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비통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었지만,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는다”

*팬더믹의 절정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의 암울함 속에서,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분열과 혼란함 속에서…그럼에도 믿고 또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오늘도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실 것이다. 묵묵부답이셔도 듣고 계실 것이다. 이 믿음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주님,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고 기억하며 굳건히 믿는 믿음을 더욱 생명력 있게 일으켜 주십시오.
*주님, 묵묵부답 하실 때에도 주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소리높여, 두 손 치켜 들며, 밤을 지새우겠습니다. 그 와중에 세미하게 라도 목자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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