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이야기를 들음, 기억함, 전함 [시편 78:1-11]
 – 2022년 02월 25일
– 2022년 02월 25일 –
“마스길”은 ‘교훈의 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시 라는 의미다. 현재와 미래세대가 과거에서 교훈을 배우도록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회고”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다음세대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1-4절), 다음세대에서는 조상들의 패역함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5-11절) 이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아삽은 후손들이 자손대대로 잘 되기를 바라면서 반드시 기억해서 알려야 할 것을 알려 준다. 그것이 무엇일까?



1.들음, 기억함, 전함(1-3절)
시인은 가장 먼저 “교훈(율법), 말에 귀를 기울여라(1절)”라고 당부한다.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할 말은 “숨겨진 옛 비밀(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_2절)”인데,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으로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3절)”이다.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 준것처럼 이제 우리도 후손들에게 들려 준다는 것이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 즉 예수님의 복음을 우리가 후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귀를 기울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선조들에게 전해 들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수 하게 하기 위해 “들음, 기억, 전함”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은 이들이 가지는 중요한 영적인 의무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새번역_14절)”

*누군가의 전함으로 들었고,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알아서, 성령의 은혜로 감동받아 기억했다. 그리고 기억 속의 하나님께서 실제가 되는 삶의 길목들을 지나고서야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비로소 전했다. 어쩌면 우리가 구원받은 은혜로 산다는 것은 “들을 수 있었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시 전해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나만 예수 믿고 구원 얻는 복음이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구원 받도록 “먼저 들은 이가…더 많이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이가… 더 한발짝 다가서며 전하는 복음”이다. 그래소 누구라도 “들어서 아는 바”된 복음이다.



2.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기이한 사적(4절)
“우리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하여 줄 것이니,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새번역_4절).”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영광스러운’으로 번역된 “트힐라(영예)”는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행동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과 예배를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을 행하신 분이시다.

또한 “능력(에주즈)”은 하나님의 힘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원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대개 “하나님의 능력”을 성경에서는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땅 정복등을 가리킨다. 힘들고 낙망되는 시기일 수록 “능력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위로와 소망의 시작이다.

“기이한 사적(팔라)” 역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 사건을 가리킨다. 인간의 힘을 넘어선 절대적인 기적의 사건들인데, 예를 들어 홍해를 가르시거나, 요단강을 멈추게 하신 일 등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예, 능력, 기이한 사적은 결국 출애굽, 홍해도하, 광야 40년의 기적, 가나안 땅 정복의 놀라운 역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일하심을 통해 나라를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을까?



3.일러주고(가르치고), 전하여, 지키게 하여(6-8절)
이러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시인은 미래에 때어날 자손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일러주고, 전하여(6절),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새번역_7절). 이를 통해 “조상처럼 반역 하며 고집만 부리는 세대가 되지 말며 마음이 견고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새번역_8절).”

*이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대대로 일러주어, 대대손손 전하게”하여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신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일러주고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들이 나의 삶의 흔적들로 남겨질 때, 이것을 “일러주고, 전하는” 것은 대대손손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겠다는 분명한 동기부여가 된다.



4.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은 것이 죄였다(9-11절)
영예로움과 능력과 기이한 사적의 하나님이셨지만 그 말씀(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상관없는 인생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시인은 에브라임 자손을 지칭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전하여 듣게 하는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거부하고 외면하며 떠난” 겉모습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들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으며, 그 교훈을 따르기를 거절하였다(10절). 하나님의 영예로움과 능력과 기이한 사적들을 잊어버렸다(11절). 그런 삶을 살았던 에브라임 자손들(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출중하게 무장을 하고 전장에 나설 지라도 패배하였다(물러났도다). 그들의 패배는 능력의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떠난 결과였다.

“조상처럼, 반역하며 고집만 부리는 세대, 마음이 견고하지 못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알려 주셨는데, 기억하라고 하셨는데, 전하라고 하셨는데”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린 죄를 범하고 말았다. 전쟁에서 물러서고 말았다…

*본문의 역사적인 사건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에브라임 자손들(가장 강력한 지파)이 가나안 족속들을 그들이 분배받은 땅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을 지칭한다. 사사기를 묵상할 때 입다를 돕지 않았던 지파도 에브라임이었다. 이로 인해 훗날 블레셋 족속이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서 활개치며 사무엘의 스승 엘리 제사장이 죽게 된 실로에서의 패배와 사울 왕이 비참하게 전사하게 되는 전투에서 패배했던 길보아 전투가 생각나게 한다.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지 않고 그 가르침들을 외면한 것의 댓가들이었다.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율법)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의 분명한 하나님의 댓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실패가 반복 되는 것은 “전해 들은 것을 알고, 기억하며 다시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것임을 시인은 통탄한다.

*오늘날은 다를까? 그렇지 않다.



나는?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과정 속에 있다. 지도자를 선출하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앞두고 본문 말씀은 분명하게 우리의 선택의 기준을 가르쳐 준다.

-전해 들은 말씀(율법)을 알고, 기억하여(살아내어), 다음세대에게도 동일한 말씀(율법)을 전수하는 것이 민족의 흥망성쇠의 키포인트라는 것이다. 세상이 저마다 자기 욕심을 따라 상황과 여건에 따라 기준이 변하여도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이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절대적 가치인 것을 알아서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치구현의 방식을 따라(사랑, 섬김, 희생, 나눔),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순종은 개인의 삶의 영역뿐 아니라 오고 오는 다음세대에게 동일하고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을 전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따라 산다. 하나님의 가치에 따라 결정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구현되는 방식(사랑, 섬김, 희생, 나눔)의 가치를 알고 국민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희생하려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믿음의 선조들에게 전해 받은 말씀의 순전한 가치를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전수할 때에도 변색되거나 퇴색되지 않고 “진리 그대로” 전수해 주어야 한다. 그 전수는 어설픈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산 지식으로 전수될 때 오롯이 지켜 낼 수 있다. 나의 부모가 그리 살아 가셨듯, 나도 그리 살아, 다음세대로 그리 살아갈 것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당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서 더욱 가치구현이 되는 모습을 다음세대에게 보여 줄 때 오롯이 전수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 하겠다.


*들음, 기억함, 전함… 단순하지만 강력한 단순한 믿음의 삶이 하나님의 영예와 능력, 기이한 사적을 다음세대에게 전수 하게 한다.

*듣는 것, 기억하는 것, 전하는 것에는 전해 받을 때의 “믿음의 수용”과 기억하기 위해 삶을 통해 증명되는 “역사의 흔적들”, 이런 나의 역사의 흔적(간증)이 하나님의 이름을 전할 때 “증거로 사용” 되는 것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힘을 발한다.

*믿음의 삶은 그렇기에 일상에서도 역동적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반응이 능동적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순종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듣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는 것은 죄다. 들었다면 전해야 한다. 기억했다면 전해야 한다. 전했다면 더욱 더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구원의 은혜안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에브라임 자손들(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들었으나 듣지 않았고, 기억했으나 외면했고, 전해야 했으나 전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 되었다. 지금 내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가 이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하게 하는 악성바이러스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길로 빠지게 하도록 유혹하는 이런 류의 지도자를 판단하는 분별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전하는 이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말이다. 에브라임 족속이 실패한 것은 “하나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들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을 바라보며 심히 두렵다. 그들은 하나님 이야기보다 권력 이야기를 마치 하나님 이야기처럼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복음 이야기가 아니라 이념 이야기를 마치 복음처럼 포장하여 들려준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더 희망을 잃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 이야기에 분명 하지 말라는 우상과 주술과 복술과도 타협하려 한다. 두렵고 두렵다. 교회 안에서 세상으로 들려 주어야 할 이야기가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만 줄기차게 해댄다… 일부 이겠지만, 그들이 교회를 대표한다고 자처한다. 그러니 속상하고 분노가 치민다. 그들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 처럼 국민들을 호도한다. 그러니 두렵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이여야지… 세상 이야기 어설프게 하나님 이야기인 것 처럼 호도하지 말아야지… 그런 이야기 분별하고 판단해 내어, 더욱더 하나님 이야기로 대치해야지… 그래야 교회가 산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그래야 산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주님, 듣고, 기억하고, 전하는 하나님 이야기의 삶을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에 빠져 있는 교회를 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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