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단 동편 정벌에 하나님이 없다! [삿 8:1-21]
 – 2021년 11월 17일
– 2021년 11월 17일 –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온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과 크게 다툰다. 전쟁의 막바지에 동차한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인 자신들이 전쟁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거센 항의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끄신 승리의 현장에서 논공행상하는 꼴이다. 전쟁 초기에서부터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칫 승리하자 마자 분열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기드온은 지혜로운 말로 이 상황을 잘 극복한다(1-3절). 그런데 정말 지혜로워서 일까?

또 기드온에게 대패하여 패주한 미디안 군대의 세바와 살문나를 쫓아 요단 강을 건넌 피곤한 기드온과 300군사들은 숙곳에서 갓 지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얍복강의 브누엘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다. 이에 기드온은 미디안의 세바와 살문나를 붙잡아 그들 앞에 세워 죽이고 기드온과 300군사를 조롱했던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죽인다(4-21절). 에브라임에게 보이는 모습과 왜 이리 다를까?


1.에브라임의 어깃장, 기드온의 소심함(1-3절)
참 이런 지파라니.. 한심하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작할 때 먼저 부르지 않았다고 “크게 다툰 것”이다. 에브라임은 왜 어깃장을 놓고 있을까?

본문에서는 직접 그 원인을 밝히지 않지만, 드보라는 에브라임에 대하여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5:14)”이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비유인데, 출애굽 직후 시내산으로 행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미에 처진 이들을 비겁하게 공격한 그들의 치졸함을 에브라임이 닮았다는 의미다. 전쟁 끝 무렵에 참전하여 오렙과 스엡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300 군사의 활약에 비하면 미미하기에 전리품을 더 얻을 목적으로 이리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그 속이 훤히 보인다. 문제는 이런 비겁한 모습을 보인 것이 이번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후 사사 ‘입다’도 에브라임에 대하여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12:1)”라고 말한다. 훗날 다윗의 찬양대장이자 출중한 용사 ‘아삽’은 그가 지은 시편에서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여호와께서 향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시 78:9-11)” 이라고 노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브라임 지파는 이런 이미지였다.

이런 이미지는 가나안 땅 정복 전쟁과 사사시대의 혼란한 전쟁들을 거치면서 형성된 듯하다. 드보라가 시스라와 철병거 900승을 대항하여 소집한 나팔 소리에 에브라임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장자 지파의 위치에 있었지만 장자로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돕지도 않고 도리어 결정적인 전쟁에서 비겁하게 소집 나팔에 응하지도 않고 있다가 기드온이 패주하는 미디안이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요단 나루터를 장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여 손 쉽게 나루터를 장악하고 미디안의 군사들을 죽였다. 그리고 두 장수를 쫓아 요단강을 건너 죽이고 생색을 낸 것이다.

*민족의 전투에 장자의 자리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장자 지파로서 의무를 감당하지 않으면서 장자 지파의 영광만 얻으려는 것이다. 이런 비겁한 에브라임 같으니라고…

*하지만 기드온의 반응이 정말 놀랍다. “자신과 자기 지파는 한 없이 낮추고, 에브라임의 존재감을 더욱 인정한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기드온의 가문)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2절)”,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3절)” 이 두 문장으로 에브라임의 어깃장을 잠재운다.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다. 그야말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았다” 파렴치한 에브라임의 어깃장을 기드온의 겸손한 말로(?) 잠재웠다. 심하게 다투려고 강한 압박을 해 왔지만,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와 다투지 않고 그들을 치하하고 높여 준 것이다. 에브라임의 노여움이 풀렸다.

*언뜻 보면 참 너그러운 지도자로구나 생각되지만, 아니다. 요단 동편에서 보인 그의 모습은 강한 지파 에브라임 앞에서 약하고 약한 동족들 앞에서 강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드온은 소인배다.


2.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저주를 자초한 말, 기드온의 찜찜한 말(4-21절)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는 요단강을 건너 도망하는 미디안 왕들을 추격한다. 이 와중에 숙곳과 브누엘 두 마을에 음식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 당했다. 이유인즉 “미디안 왕들의 주검을 보기 전에는 기드온에게 협조 할 수 없다는 것”이다(5-9절).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정감을 헤치는 일을 협조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진리와 정의와 평화보다 언제나 자기 안전과 이익이 우선하는 세상이 되었다.

결국 숙곳과 브누엘은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여 돌아와 이에 따른 저주를 받는다. 숙곳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고(16절),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17절).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를 다볼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행한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살려 주기만 하였더라도 내가 너희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새번역_19절)” “그들을 살려주기만 하였어도” 세바와 살문나를 살려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매우 우려스러운 장면이다. 요단 동편으로 건너와 세바와 살문나의 15,000명의 패잔병을 들을 평정하고 이 과정에서 도와주지 않은 동족인 숙곳의 장로들과 브누엘의 주님들을 죽인 이유가 “개인의 원한을 갚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구원자로서의 책임을 자신의 복수에 사용했다. 개인의 복수를 위해 300명의 군사를 이용했고, 그 와중에 여호와를 앞세워 보복의 명분을 세웠다(19절). 또, 자신의 복수를 위해 숙곳과 브누엘에 거주하던 므낫세 지파 한 동족인 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처단한다(7, 13-17절).

*이스라엘 공동체가 무너진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동족의 전쟁에 참여하여 돕지 않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 제대로 응하지도 않고 공로만 차지하려는 에브라임… 하나님의 승리를 믿지 않았던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여호와의 전쟁을 개인의 원한을 갚는 복수 전쟁으로” 전락 시킨 기드온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시려는 전쟁이 개인의 원한을 갚는 일로 마무리된다.


나는?
-8장에서 요단 동편 정벌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기드온은 가장 은혜로운 기적으 ㅣ승리 직후에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 개인의 원수 갚는 일에 매진했다. 가장 은혜로운 시간들 속에서 자기 공로, 자기 원한을 갚는 일에 사사의 직분을 사용한다.

*나도 언제든지 이 유혹에 노출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절정에서 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얹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그 분위기에서 더욱 박차를 가해 진행할 수 도 있다. 기드온처럼 말이다.

*개인의 원한을 갚는 과정에서 결국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한 소심하고 비겁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미디안의 눈을 피해 포도즙 짜는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그 소심함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한 그 절정의 순간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런 기드온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에 감춰져 있던 나의 나약한 모습이 언제든 표면에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어떻게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계속 드러나도록 유지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도무지 불가능하다.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 본 직후, 나선 요단 정벌에 하나님이 없다! 기드온의 혈기와 교만이 드러났다!


**주님, 기드온의 소심함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소심함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지 않기를 구합니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겸손히 누리면 될 것을 쓸데없이 나의 이름을 내려고 교만해 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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