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과 라이스 정복을 위한 출정이 이어진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힘으로 미가의 제단에 있던 우상들과 에봇을 레위 제사장과 함께 약탈(?)했다. 항의하는 미가와 마을 주민들에게는 협박을 일삼는다. 뻔뻔하기 그지 없다. 더 나아가 ‘평화롭게 살던 힘 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라이스를 점령한다. 그리고서 뻔뻔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법은 온 간데 없고 동물의 세계만 남았다.
단 지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 그들의 양심까지 쉽사리 져버린다. 자신의 드라빔과 에봇을 찾으러 온 미가와 마을 주민에게 협박한다.
우리가 가진 힘을 보고 덤비라는 식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능력에 더 기댄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로 변해 버렸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은 자신들의 힘으로 취하지 못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찾으려는 백성들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열정으로 아모리 족속과 블레셋 족속을 몰아내면 될 것인데 말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비겁함이 단 지파에게서 보인다. 미가에게 행한 협박이나, 평화롭게 살던 라이스 주민들을 학살하고 성을 불태웠다. 그리고는 그곳에 다시 성을 쌓고 산다. 그리고 미가에서 빼앗아 온 우상을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 그대로 섬겼다(31절)” 이렇게 해서 단 지파는 우상숭배의 대명사가 된다.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세상의 약육강식의 힘의 법을 그대로 따랐다. 문제는 그들이 차지한 땅은 스스로 고립되기 충분한 곳이어서 이렇게 데리고 간 제사장은 “그 땅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30절)” 계속 일을 맡을 정도 였다. 라이스 주민들을 학살할 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 것은 지리적으로 시돈과 거리가 멀어서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단 지파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여 “안정”을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안정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안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평화)가 아니라 육신적인 안주함을 택한 것이다. 그저 아무 일 없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분배 받은 그들의 땅은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동쪽으로 에브라임, 베냐민, 유다로 둘러쌓인 곳이었지만 그들이 스스로 찾아 빼앗은 땅은 지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땅이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40km정도 떨어진 헤르몬산 자락이다. 그곳은 물이 풍부했고 곡식이 잘 되는 땅이었다. 안주하기는 안성맞츰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치열하게 살아내는 싸움은 포기하지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지리적 환경과 여건이 안주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야곱이 단을 위한 기도의 내용이 기막히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 단 지파는 실로에 엄연히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모세의 손자 요나단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미가의 집에서 약탈한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상관없이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때(31절) 라는 말은 사사시대 350년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단 지파는 350년 동안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여 지파 사람들을 실로에 보내지 않았고 가지고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이스라엘이 갈라졌을 때,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웠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10지파 사람들이 가는 것을 막았다. 이런 여로보암의 정치적 결정의 배경에는 단 지파의 모습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단 지파는 없다(계 7:5-8).”
나는?
*주님, 약육강식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단 지파의 “자기 소견”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주님, 이 땅에서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위해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겠습니다.
*주님, 동물의 세계가 아닌 하나님의 공동체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 [시편 110:1-7]
본 시편은 150개의 시편 중에서 신약성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1절이 사용되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히브리서 5:6절은 4절을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