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자비…질투의 하나님… [출 34:1-17]
 – 2021년 10월 19일
– 2021년 10월 19일 –
출 34:1-17 자비… 질투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야만 한다는 간절한 모세의 간청에 등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비로움 속에 보호하시고서 그가 깨뜨린 돌판 두개를 똑같이 만들어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하셨다.

시내산에 도착한 직후 시내산에 올라 오라 명하셨을 때처럼 경계를 정하고 그 안으로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오직 모세만” 올라 오라 하신다. 십계명과 다른 규정들을 처음 주셨을 때 여호수아와 함께 산을 올랐지만, 이번에는 오직 모세만 올라 오라 하시며 더욱 엄격하게 만남의 준비를 명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차근 차근 준비한다. 먼저 자신이 깨뜨린 하나님께서 주신 돌판을 기억하며 ‘처음것과 같이 깍아’ 만든다.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내일 양과 소도 산 앞에 풀어놓지 말라는 명령을 엄히 내렸다(3-4절).
그리고서 시내 산에 오르니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에(구름에 싸여) 강림하신다.  강링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1.자비로우신 하나님(6-7절)
모세의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신다.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며,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 까지 벌을 내린다(새번역_6-7절).”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6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자비, 은혜, 온유, 인자, 진실”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함에 대하여, 이 세상의 악함에 대하여 보이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당장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라는 모세의 간청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지금 진멸 하실 수 있으나 모세의 간절한 마음을 들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임을 알려 주신다. 그리고 다시 두 돌판에 기록할 말씀을 주신다.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 뿐인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모든 죄인들을 살리셨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심으로 살려 주셨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를 용서하신 원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는 기한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의 행동에 반응하지 않는 다면 아무 소용없다. 특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반면교사” 삼지 않고 그의 자손들이 또 다시 우상 숭배에 빠지면 이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주저하지 않으실 것이다.

*용서 받음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경고하신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며,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새번역_7절).”

*하나님의 이 자비로우심과 단호하심을 듣고 모세는 지체하지 않고 “급히 땅에 엎드려” 간청한다.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 사실이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백성인 것은 사실이나, 주님께서 우리의 악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새번역_9절).”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시라면, 우리가 고집 센 백성임을 알고 계셔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를 호소한다.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만 더욱 붙잡겠다는 절박함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자비의 하나님은 이 간청에 즉시로 응답하신다. “내가 이제 다시 너희와 언약을 맺겠다. 내가 명한 것을 삼가 지키도록 하여라. 너희는 삼가 들어가는 땅에 사는 사람들과 언약을 세우지 마라. 그들의 제단, 석상, 목상을 부수고 찍어내버리라(10-13절).”

*자비를 베푸시기를 결심 하시니 주저하지 않으신다. 머뭇거림 없는 용서를 약속하시고 “삼가(샤마르)” 하라고 요청하신다.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라는 뜻이며,  기본적으로 “큰 주의를 하여 행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자비를 덧입었으면, 그분의 자비로운 성품을 깨닫고 알았으면, 그의 명령과 요청에 “큰 주의를 하여 행하여야” 할 것이다. 본문은 “삼가”라는 단어를  3번이나(11, 12, 15절) 반복하여 강조한다.

*특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들어갈 땅에서의(삶의 현장에서) 삶의 자세에, 들어간 땅의 주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큰 주의를 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신다.

*자비라는 은혜를 받고 누리는 것에는 이것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말씀 준수(순종)이다.  자비의 대상이 실제가 되어 그것을 누린다면, 누림받는 하나님의 자비 하심이 무안해 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자비로움 앞에 내가 거하는 삶의 모든 현장과 관계들에게 어떤 자세로 살아갈까? 부디….”큰 주의를 하여 행하는” 지혜로움과 순전함으로 구비되는 구원받은 삶 이어라!



2.질투의 하나님(14절)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나 주는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새번역_14절).”

스스로를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다. “질투(칸나)”라는 말은 흔히 다른 사람들을 향해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질투(칸나)는 너무나도 진실하게 집중하는 사랑을 가리킨다. 인간의 질투는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 강력한 사랑, 특별한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베풀 수 없는 우상을 버리고 어떤 것이라도, 모든 것을 다 베푸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의미로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말씀 하신 것이다.



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백성에게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서 다시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 딜레마다.

-어쩌면 모세는 이런 연약한 모습의 백성들을 너무나 잘 이해 했기에, “목이 곧은 백성들일 지라도(고집이 센 백성인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를(9절) 간청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덧입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죄의 유혹을 그나마 분별하고 경계할 수 있음을 안 것이다. 나의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유혹은 감당해 낼 수 없다. 하나님 안에 거하여야 “분별하고, 간청하여” 그 멸망의 길로 빠져들지 않기를 각성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 그것이 질투다! 오죽하면 그 사랑을 표현 하시면서 나의 이름은 “질투”다 라고 까지 했을까!  그 사랑이 나를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라도 용서하는 은혜가 되었다. 그 사랑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을 맛보게 했다. 사랑하셔서 아낌없이 내어 주셨고, 사랑하시니 구원하시기 위하여 “집중하여, 놀랍고, 강력한, 특별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 사랑을 힘입어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한다.

*주님, 자비로우심이 무안해 지지 않도록 더 주의하며 순종 하겠습니다.
*주님, 질투하는 하나님이셔서 감사합니다. 그만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행복합니다. 저도 더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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