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부요한 자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세상의 현실이다(20절). 하지만 가난한 이웃을 업신 여기는 것은 죄이다(21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26-27절).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31절). 그러므로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가난(20, 21, 23, 31절)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미워한다(20절). 하지만 부자는 많은 이가 따른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복이 있다(21절). 수고하는 부지런함보다 말만 많으면 가난(궁핍)해 진다(23절). 가난한 이를 억압하는 자는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고 궁핍한 이를 돕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31절).
옛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끝이 없어서 나라의 힘으로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기댈 것은 그저 양심을 따라 도덕적인 긍휼의 마음을 가진 이웃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하신다(31절). 내 배부른 것만이 복이 아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형편과 마음이 풍성한 것이 진정한 복이다.
경외함(26-27절)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긴다. 자식들에게 피난처다(26절). 또,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한다(27절).
조급함과 평안(29-30절)
조급함은 어리석은 것이다(29절). 평온(평안)은 생기이다(30절). “조급하다(카쩨르)”는 “짧다”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없어 기다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지 못해 쉽게 화를 내고 쉽게 포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어리석다고 한 것이다. “평안(마르페)”은 히브리어 “라파”에서 파생된 말로 “치료하는 것, 치료하는 방법”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평안”이며, 이것이 조급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본문에서 주는 힌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이다. “견고한 의뢰(26절)”가 경외함에서 온다고 했는데, “의뢰(미브타흐)”는 ‘신뢰, 확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는 신뢰함에서 오는 상태인 ‘안전함’을 나타낸다.
직접적인 평안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갈릴리 호수의 광풍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한 제자들의 두려움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고 말씀하시며 평안을 주셨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생명의 샘이며, 여기에서 평안한 마음이 나오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나는 어릴 적 무척이나 가난하게 자랐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의 느낌이 뭔지 안다. 하나님을 만나 은혜 안에 거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가끔 그런 시선을 느낄 때면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런 마음을 너무나 잘 공감하기에 어려운 이들을 도울 때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돕는 물량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하는 태도임을 잘 안다. 물질이 많고 적음으로 사람이 판단 받는 것은 삼가해야 할 태도다.
-우리 공동체가 물량으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영혼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좋겠다. 가지고 있는 물질이 힘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힘이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참 성격이 급하다. 특히나 내 마음에 꽂히는 일에는 더욱 빨라진다. 그래서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해 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꼭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조급”함의 노예가 되어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평안”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삶이 되기를 다시 한번 결심해 본다.
-아내가 늘 이런 말을 해준다. ‘당신은 덩치도 크고, 인상도 날카로우니 늘 웃어야 한다’, ‘여기에 급한 마음에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짜증까지 폭발하면, 목사 그만둬야 한다고….’ 딱 맞는 말이다. 조급함이 내 자신과 공동체를 혼돈의 파도 속에서 이끄는 것을 알고 늘 경계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평안을 구한다. 나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여 나의 생각과 마음의 평안이 오늘 하루도 지속되기를 구한다….
-“마음이 평안하면 몸에 생기가 도나…(새번역_30절)” 오늘 나의 몸에 생기가 돌게 할 주님의 평안을 확신한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서 평안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주님, 조급함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평안으로 생기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
*주님,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며 살게 하소서.
가난(20, 21, 23, 31절)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미워한다(20절). 하지만 부자는 많은 이가 따른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복이 있다(21절). 수고하는 부지런함보다 말만 많으면 가난(궁핍)해 진다(23절). 가난한 이를 억압하는 자는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고 궁핍한 이를 돕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31절).
옛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끝이 없어서 나라의 힘으로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기댈 것은 그저 양심을 따라 도덕적인 긍휼의 마음을 가진 이웃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하신다(31절). 내 배부른 것만이 복이 아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형편과 마음이 풍성한 것이 진정한 복이다.
경외함(26-27절)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긴다. 자식들에게 피난처다(26절). 또,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한다(27절).
조급함과 평안(29-30절)
조급함은 어리석은 것이다(29절). 평온(평안)은 생기이다(30절). “조급하다(카쩨르)”는 “짧다”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없어 기다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지 못해 쉽게 화를 내고 쉽게 포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어리석다고 한 것이다. “평안(마르페)”은 히브리어 “라파”에서 파생된 말로 “치료하는 것, 치료하는 방법”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평안”이며, 이것이 조급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본문에서 주는 힌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이다. “견고한 의뢰(26절)”가 경외함에서 온다고 했는데, “의뢰(미브타흐)”는 ‘신뢰, 확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는 신뢰함에서 오는 상태인 ‘안전함’을 나타낸다.
직접적인 평안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갈릴리 호수의 광풍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한 제자들의 두려움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고 말씀하시며 평안을 주셨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생명의 샘이며, 여기에서 평안한 마음이 나오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나는 어릴 적 무척이나 가난하게 자랐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의 느낌이 뭔지 안다. 하나님을 만나 은혜 안에 거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가끔 그런 시선을 느낄 때면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런 마음을 너무나 잘 공감하기에 어려운 이들을 도울 때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돕는 물량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하는 태도임을 잘 안다. 물질이 많고 적음으로 사람이 판단 받는 것은 삼가해야 할 태도다.
-우리 공동체가 물량으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영혼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좋겠다. 가지고 있는 물질이 힘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힘이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참 성격이 급하다. 특히나 내 마음에 꽂히는 일에는 더욱 빨라진다. 그래서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해 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꼭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조급”함의 노예가 되어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평안”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삶이 되기를 다시 한번 결심해 본다.
-아내가 늘 이런 말을 해준다. ‘당신은 덩치도 크고, 인상도 날카로우니 늘 웃어야 한다’, ‘여기에 급한 마음에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짜증까지 폭발하면, 목사 그만둬야 한다고….’ 딱 맞는 말이다. 조급함이 내 자신과 공동체를 혼돈의 파도 속에서 이끄는 것을 알고 늘 경계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평안을 구한다. 나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여 나의 생각과 마음의 평안이 오늘 하루도 지속되기를 구한다….
-“마음이 평안하면 몸에 생기가 도나…(새번역_30절)” 오늘 나의 몸에 생기가 돌게 할 주님의 평안을 확신한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서 평안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주님, 조급함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평안으로 생기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
*주님,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