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그는 악에서 떠나(17절) 거만한 마음을 버리며(18-19절) 말씀 따라(20절) 산다. 또한 입이 선하고(21절), 슬기롭다(23절). 노하기를 더디하고 마음을 다스린다(32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와 같은 삶을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33절). 그리고 대조와 비교를 통해 지혜로운 삶을 부각한다. 금보다 지혜, 은보다 명철(16절), 악보다 정직한 길, 교만한 자의 탈취물보다 겸손하여 낮은 마음(19절), 성을 빼앗는 자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더 낫다(32절)
또, 지혜롭게 사는 이의 삶의 결과도 중간 중간 알려준다. 악을 떠나 정직한 길로 가면 자기 영혼을 보전한다(17절), 말씀에 주의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는다(20절), 지혜로운 자의 삶에 나타나는 명철함은 생명의 샘, 슬기로운 입술이 주는 지식의 부요함을 얻는다(21-23절). 여기에 “길” 이라는 단어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정직한 사람의 대로, 자기의 길(17절)”, “어떤 길, 사망의 길(25절)”, “공의로운 길(31절)”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길은 당연히 “정직한 사람의 대로, 자기의 길, 공의로운 길”이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 바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인 어떤 길”은 악인이 걸어가는 길이다.
다양하게 지혜자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1.악에서 떠나(17절)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큰 길이니, 그 길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지킨다.(새번역_17절)” 하나님께서 세상속에 심겨 놓으신 원리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은데서 팥이 난다. 잠언에서도 이런 인과율의 법칙을 늘상 언급한다. “정직을 심은 사람은 정직을 거두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것을 거두며 먹을 것을 정하셨다. 악을 심은 자는 악의 열매를 거두어 먹기 마련이다. 정직한 사람은 정직의 열매를 먹는다. 악에서 떠나 정직한 길을 가는 이는 “자기의 생명”을 지킨다.
정직한 사람이 가는 길을 “큰 길”로 표현 했다. “격찬하다, 높이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 “특별하게 잘 포장된 넓은 길”을 의미한다. 악을 떠난 길을 걷는 정직한 사람은 그 삶이 극히 형통하다는 의미이다. 또 악인이 걷는 멸망의 길과 비교되는 “생명의 길”인 이 길은 확연하게 구별되는 길이다. “높인 길(raised way)”의 의미로 이해할 때 사망의 길에 있는 죄의 유혹들에게서 확연하게 구별 되도록 높인 길이라는 의미다.
2.겸손으로(18-19절)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새번역_18-19절)” 현대는 자기 높임의 시대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가르친다. 할 수만 있다면 높은 자리에서 자신을 보여주기 원한다. 성공에 목말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겸손을 요청한다. 그것도 “마음을 낮추는 것”이라는 구체적인 자세도 곁들였다. 솔로몬이 바라보는 겸손은 “마음을 낮추는 것”이다. “마음(루아흐)”는 정신, 천성, 기질 등의 의미가 함의된 단어이다. ‘기질, 천성적으로 거만한(높아지려는) 마음(정신, 자세)’를 경고한 것이다.
“겸손한 자들”은 직역하면 “비참한 자들, 가난한 자들, 괴로움을 겪는 자들”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낮아진 마음은 곧 “긍휼, 자비,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란, 하나님이 세상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마음이다(요 3:16). 그 사랑의 마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지혜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산다.
*세상에서 외면 받고 멸시 당하는 “비참하고 가난하며 괴로움을 겪는 자들”과 함께 하는 마음은 곧 예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 세리와 창기, 가난한 자들의 친구셨다.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로운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긍휼, 이런 사랑, 이런 자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 나라이다. 이것이 곧 겸손이다.
3.말씀에 따라, 믿음으로(20절)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새번역_20절)” 개역 개정에서 “주의한다(사칼)”는 말은 “신중하게 살피고 행한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의 구체적인 행동을 “삼가 말씀에 주의”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세상 속에서 세상의 가르침,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비록 세상 속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그 길은 매우 단순 명쾌하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것이다.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정복을 위임 받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그의 사명을 말씀해 주셨다. 수단과 벙법을 가리지 않고 가서 정복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가장 당부하고 또 당부한 것은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⑤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 ⑤또는 ‘묵상하다’, ‘사색하다’, ‘낮은 소리로 읊조리다'(새번역_수 1:7-8)” 이었다.
*진정 세상 속에서 형통하려면 세상의 방법에 능통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에 능통해야 한다. 그러면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나의 방법, 나의 지식, 나의 처세로 이 세상을 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주님을 믿는” 지혜로움이 형통을 누리게 한다.
4.본능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림으로(25-33절)
필경 사망의 길은 본능에 얽매인다. “본능적인 식탐의 입”(26절), 맹렬한 불과 같은 입술(27절), 다툼을 가져오고 이간질 하는 말쟁이(28절), 폭력적인 언행(29절), 패역하고 음흉한 눈빛과 입술(30절)과 같은 것이다. 이런 삶의 길을 가는 이들은 “필경 사망”에 이른다. 본능을 따라 살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공의로운 길을 걸은 백발(노년)은 영광스럽다(31절). 의로운 길을 걸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화로운 면류관이 백발(연륜, 노년)이다. 이런 길은 심호흡하며 자신의 성질과 기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32절)의 길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성급함과 조급함, 분노 등은 모든 삶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새번역_33절)”는 하나님 절대 주권의 믿음을 가진 지혜자는 분노를 절제 할 수 있다. 이 믿음과 인정이 있을 때 마음은 다스려 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여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사람은 아무리 연륜이 찬 노년이라도 영광스럽기 보다는 초라할 수 밖에 없다.
노년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부하는 이의 노년은 지극히 본능만 남는다. 본능적인 행동이 나이가 들수록 절제 되고 인생의 향방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평온한 노년을 소망한다.
나는?
-나의 인생이 “악에서 떠나, 겸손하게,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침이다.
-무엇보다 흰머리가 늘어갈 수록 본능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가 늘어가기를 소망한다.
-나 이 세상에서 이런 지혜로움으로 살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주님, 정직한 이가 걷는 큰 길을 저도 걷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의 낮아지신 마음,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게 하소서
*주님, 말씀을 신중하게 살피고 이를 따라 살게 하소서
*주님, 무엇보다 본능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로 흰머리가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