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주제가 이어지는 잠언이다. “가난(1,4,6절)”, “미련한 자의 삶(2-3, 10, 13절)”, “거짓말(1,5,9절)”, “관계(6,7절)”, “지혜(8,11,12절)”, “아내(14절)” 등의 주제가 나열 되었다.
1.거짓말(1,5,9절)
1절에서 “…입술이 패역하고…”를 새번역에서는 “거짓말을 하며..”로 번역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거짓 증인과 거짓말 하는 자들은 벌을 피할 수 없으며 9절에서는 이들이 “망하고 만다(표준새번역)”고 기술한다. 5절과 9절은 ‘피하지 못하리라’가 ‘망할 것이니라’로 대치 되었을 뿐이다.
특히 새번역은 1절에서 ‘입술이 패역하다’를 ‘거짓말’로 번역하여 거짓말 하는 삶이 미련한 삶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가난해도 성실하게(흠 없이_표준새번역) 사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말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신뢰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망가뜨린다. 특히나 거짓 증언에 대한 분별과 단호한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 나가려면 “진실함”이 중요하다.
*거짓말은 많은 경우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 하려고 시도한다. 소소한 거짓말부터 관계와 공동체를 망치는 것까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내뱉는 것이다.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흠 없이(성실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다. 이를 깨닫고 물질의 부유함을 위해 거짓말, 거짓증언을 일삼는 짓을 멈춰야 한다. 거짓 위에 세워진 삶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들의 삶의 결국은 “사람은 미련하여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표준 새번역_3절)” 자신의 유익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거짓의 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원망한다.
*거짓말이 가져다 주는 부요함은 ‘반드시 그 벌을 피할 수 없고, 망한다.”
2.가난(1,4,6,7절)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비참하다. 무엇보다 친구가 떠나간다니… 그것 참 쓰디 쓰다. 성경에서 찾아 볼 수 큰 부자는 누구일까? 단연코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영광이 넘쳐났다. 그가 가진 재물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그가 “…가난하여도 성실하게(흠 없이) 행하는 자(1절)”가 낫다고 했다. 그런데 흠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거짓말하며 패역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지만, 가난한 삶에는 댓가가 있다.
친구가 떠나간다(4절). 또 형제들(친척)도 싫어한다(7절). 심지어 “….뒤따라가며 말을 붙이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새번역_7절)”고 했다. 아.. 가난은 철저히 소외 당하게 되는 비참함이 댓가로 남는다.
사람들은 재물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하고(4절), 너그럽고 선물을 잘 주는 사람의 친구이고 싶어 한다(6절). 이게 세상의 속성이다. 그래서 재물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가난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시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의 되물림, 부지런히 일했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에 의해 가난하게 되는 경우 등이다. 솔로몬은 가난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에 대해 세상이 대하는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한다. 폄하한다. 자신이 부담이 될까 행여 가까이도 하지도 않는다.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들처럼 혐오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다. 가난은 하나님께서 내린 천벌로 여겼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각인가?
“가난 때문에 친구 관계를 끊고, 형제, 친척들의 미움을 받는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이 가난이 어떻게 취급을 받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죄인 취급한다. 세상은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실까?
“가난해도 성실한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세상이 범죄자 취급하는 그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보시는 초점은 “가난해도”가 아니다. “성실한 자”이다. 새번역은 “흠 없는 자”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가난한가 부한가로 바라보지 않으신다. “성실한가?, 흠 없는가?”로 바라보신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3,가족, 아내(13-14절)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고,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는 새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새번역_13-14절)”
자녀의 미련함은 부모의 근심과 고통이다. ‘재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는 천장에서 새는 물과 같다. 언제나 근심이 된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고대의 가부장적인 토대에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새번역_14절)”는 솔로몬의 고백이 새삼스럽다. 그는 1천명의 아내가 있었다. “슬기로운 아내”라는 명제에 많은 의미가 함의 되었다 고도 할 수 있다. 특히 “13절의 다투는 아내(다투기를 잘 하는 아내)”와 분명한 비교가 된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임을 잠 18:22에서도 언급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다.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아내’라고 했지만, ‘남편’, ‘자녀’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복이다.
나는?
-거짓말은 공동체를 와해 시킨다. 거짓이 가져온 부함은 반드시 망한다.
-하나님은 성실한 것을 기뻐하신다. 가난한 자를 죄인 취급하는 세상과 다르다. 상황과 여건이 가난하더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가족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다.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한다.
*주님, 진실한 입술과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 가난함 때문에 주눅들지 않고 늘 성실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은혜로 주신 가족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1.거짓말(1,5,9절)
1절에서 “…입술이 패역하고…”를 새번역에서는 “거짓말을 하며..”로 번역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거짓 증인과 거짓말 하는 자들은 벌을 피할 수 없으며 9절에서는 이들이 “망하고 만다(표준새번역)”고 기술한다. 5절과 9절은 ‘피하지 못하리라’가 ‘망할 것이니라’로 대치 되었을 뿐이다.
특히 새번역은 1절에서 ‘입술이 패역하다’를 ‘거짓말’로 번역하여 거짓말 하는 삶이 미련한 삶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가난해도 성실하게(흠 없이_표준새번역) 사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말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신뢰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망가뜨린다. 특히나 거짓 증언에 대한 분별과 단호한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 나가려면 “진실함”이 중요하다.
*거짓말은 많은 경우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 하려고 시도한다. 소소한 거짓말부터 관계와 공동체를 망치는 것까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내뱉는 것이다.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흠 없이(성실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다. 이를 깨닫고 물질의 부유함을 위해 거짓말, 거짓증언을 일삼는 짓을 멈춰야 한다. 거짓 위에 세워진 삶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들의 삶의 결국은 “사람은 미련하여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표준 새번역_3절)” 자신의 유익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거짓의 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원망한다.
*거짓말이 가져다 주는 부요함은 ‘반드시 그 벌을 피할 수 없고, 망한다.”
2.가난(1,4,6,7절)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비참하다. 무엇보다 친구가 떠나간다니… 그것 참 쓰디 쓰다. 성경에서 찾아 볼 수 큰 부자는 누구일까? 단연코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영광이 넘쳐났다. 그가 가진 재물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그가 “…가난하여도 성실하게(흠 없이) 행하는 자(1절)”가 낫다고 했다. 그런데 흠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거짓말하며 패역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지만, 가난한 삶에는 댓가가 있다.
친구가 떠나간다(4절). 또 형제들(친척)도 싫어한다(7절). 심지어 “….뒤따라가며 말을 붙이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새번역_7절)”고 했다. 아.. 가난은 철저히 소외 당하게 되는 비참함이 댓가로 남는다.
사람들은 재물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하고(4절), 너그럽고 선물을 잘 주는 사람의 친구이고 싶어 한다(6절). 이게 세상의 속성이다. 그래서 재물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가난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시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의 되물림, 부지런히 일했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에 의해 가난하게 되는 경우 등이다. 솔로몬은 가난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에 대해 세상이 대하는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한다. 폄하한다. 자신이 부담이 될까 행여 가까이도 하지도 않는다.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들처럼 혐오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다. 가난은 하나님께서 내린 천벌로 여겼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각인가?
“가난 때문에 친구 관계를 끊고, 형제, 친척들의 미움을 받는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이 가난이 어떻게 취급을 받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죄인 취급한다. 세상은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실까?
“가난해도 성실한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세상이 범죄자 취급하는 그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보시는 초점은 “가난해도”가 아니다. “성실한 자”이다. 새번역은 “흠 없는 자”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가난한가 부한가로 바라보지 않으신다. “성실한가?, 흠 없는가?”로 바라보신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3,가족, 아내(13-14절)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고,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는 새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새번역_13-14절)”
자녀의 미련함은 부모의 근심과 고통이다. ‘재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는 천장에서 새는 물과 같다. 언제나 근심이 된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고대의 가부장적인 토대에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새번역_14절)”는 솔로몬의 고백이 새삼스럽다. 그는 1천명의 아내가 있었다. “슬기로운 아내”라는 명제에 많은 의미가 함의 되었다 고도 할 수 있다. 특히 “13절의 다투는 아내(다투기를 잘 하는 아내)”와 분명한 비교가 된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임을 잠 18:22에서도 언급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다.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아내’라고 했지만, ‘남편’, ‘자녀’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복이다.
나는?
-거짓말은 공동체를 와해 시킨다. 거짓이 가져온 부함은 반드시 망한다.
-하나님은 성실한 것을 기뻐하신다. 가난한 자를 죄인 취급하는 세상과 다르다. 상황과 여건이 가난하더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가족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다.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한다.
*주님, 진실한 입술과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 가난함 때문에 주눅들지 않고 늘 성실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은혜로 주신 가족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