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마땅히 행할 일에 대하여 [잠 22:1-16]
 – 2021년 06월 11일
– 2021년 06월 11일 –
“택하다”라는 단어가 2회 반복되면서 시작한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조언한다. 선택과 결정은 문제에 대한 시각에서 출발한다. 인생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 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먼저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가 있다. 본문의 예는 ‘재물보다는 명예, 은 금 보다 은총(1절)’으로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 되심을 인정 한다면, 나를 위한 선택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다. 왜냐하면 부와 가난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2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그가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한 지혜로운 이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다(4절). 하지만 이런 선택을 거절하는 ‘패역’한 이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만 있을 뿐이다(5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친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늙어도 이 길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6절). 어릴 때부터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 지혜로운 이가 가르쳐야 할 그 길은 무엇인가?


1.가르쳐야 할 마땅히 행할 일_어떤 삶을 살 것인가?(4절)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새번역_4절)”

겸손과 경외함으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겸손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재물보다 명예를”, “은 금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택하는 사람이다(1절). 견물생심이라고 물질의 유혹을 이겨 낼 장사 없다. 그런데 이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다 함께 얽혀서 살지만, 이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님이시다.(새번역_2절)”는 사실을 믿으며 살면 된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내가 잠시 소유하고 누릴 수 있지만 결국 죽으면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 눈 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평생 후회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가 마땅히 행할 일의 바탕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경외함”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이다. 이 질문 의 대답으로 채워지는 인생은 어떤 삶으로 나타날까?


2.마땅히 행할 인생의 모습(9절)
“남을 잘 보살펴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자기의 먹거리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새번역_9절)”

나눔의 삶을 산다. ‘자기의 먹거리’를 나누는 삶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보여주어야 따라 산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나, 실제로 타인을 돕기 위해 발 벗고 행동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면 그런 모습이 삶 속에서 언젠가 싹 튼다.

“거만한(남을 경멸하는) 사람을 쫓아내는(10절)” 정의로운 행동이나, “깨끗한 마음을 간절히 바라며 덕을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새번역_11절)”이 마땅히 행할 인생의 모습이다.


3.왜 가르쳐야 할까?(15절)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나, 훈계의 매가 그것을 멀리 쫓아낸다.(새번역_15절)”

여기에서 “미련(이월레트)”은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어리석음이 가진 의미에는 “무례함”, “분을 잘 냄” 등이 포함된다. 아이들은 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기질과 성질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것을 “훈계(무사르_징계, 교훈)”의 매로 가르쳐야 함을 가리킨다.

오늘날은 이런 훈육 보다는 그저 사랑하는 것이 더 선호한다. 하지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는 “훈육”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공동 번역은 6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마땅히 따를 길을 어려서 가르쳐라.(공동번역)”

세 살… 버릇이 형성 되는 중요한 시기에는 “마땅히 행할”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부모의 아이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저 예쁘다고 모든 것을 눈 감으면 안 된다. 가르치되 부모가 보여 주며 바라보게 해야 한다.

공동번역은 15절을 좀 더 직설적으로 번역했다. “아이들 마음에는 어리석음이 뭉쳐 있다. 채찍을 들어 혼내 주어야 떨어져 나간다.(공동번역)”. 아이들의 마음에 담긴 어리석음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기에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주는 훈육을 채찍을 들어서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부모의 참 사랑이라는 의미다.

모든 것을 그저 어린 아이이니까… 라며 사랑으로 받아주면, 아이는 악한 행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언젠가 악한 행동을 자연스레 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가르쳐야 할 시기에(세 살 언저리) 사랑의 매를 기꺼이 들어야 한다.


나는?
-마땅히 행할 일을 얼마나 아이들에게 가르쳤는지 돌아보게 된다.

-영적 아이일 수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과 경외하는 것을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도 되돌아 보게 된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이처럼 부모에게서, 혹은 스승에게서 얼만 제대로 가르침을 받았는가에 달린 것임을 생각할 때 무거운 책임감이 든다.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제대로 살아야 하리라. 내가 살아내지 못한 삶을 어찌 가르칠 수 있을까?


*주님, 마땅히 행할 일을 먼저 살아내게 도와 주십시오.
*주님, 마땅히 행할 일을 가르치는 직임을 주셨는데, 게으르지 않게 감당하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서 삶의 마땅한 자세를 말과 글이 아닌 삶으로 영향력이 끼쳐지도록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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