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지 말아야 할 것 [잠 24:1-22]
 – 2021년 06월 15일
– 2021년 06월 15일 –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1, 19절). “하지 말아야 할 것”, “피해야 할 것”에 대한 교훈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하고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악인을 부러워 하지 말라(1-2, 19-20절)
“악한 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그들과 어울릴 생각도 마라.(공동번역_1절)”

세상은 악한 자들이 오히려 잘 산다. 더 잘 된다. 속이고, 감추고, 비리란 비리는 다 저질러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처럼 비춰 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런 악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려 한다. 심지어 이를 세상을 살아내는 지혜라고 까지 여긴다.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허탈하기 그지 없다. 성리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자신은 잘 되지 못하는데, 온갖 악한 방법을 다 사용하는 그들은 잘 되기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절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혜자는 분명하게 일깨운다. “악인을 부러워 하지 말라”. “그들과 어울릴 생각도 하지 말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지적하며 ‘남 못살게 할 궁리, 남 해칠 말밖에'(공동번역_2절) 모르는 이들이기에 결국 ‘앞날이 없고…등불은 꺼진다'(공동번역_20절) 고 단언한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_시 1:6)” 하나님께 대한 이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안된다. 공의의 하나님은 “행한 대로 심판 하시는(겔 18:30, 33:20, 요 5:29)” 분이심을 의심하면 안된다.

*세상에서 조금 덜 성공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내야 한다. 부끄럽지만 이런 부러움을 느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악한 방법으로 성공(?)한 이들의 외모만 보고 너무도 부러운 적이 많았다. 심지어 사역의 현장에서도 이런 모습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으로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잘됨을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이 들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내 자신을 바라보았기에 열등감, 패배감, 자괴감이 슬며시 찾아올 때 극심한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었다. 세상 가치와 다를 바 없는 낯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온갖 악한 방식으로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할까? 라고 부러워 하면 반드시 지는 것이다. 그들의 성공이 아무리 멋있어도 그것은 “무너질 장래, 꺼질 등불”이다.

*”없는 장래, 꺼질 등불”이 속이며 보여주는 성공에 속으면 안된다. “악인을 부러워도, 그들과 어울릴 생각조차 하지 말라”


2. 외면하지 말라(11-12, 17-18절)
살다 보면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내 코가 석 자’ 라며 고통하고 힘들어 하는 이들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참 많다.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괜히 나섰다가 당하게 될 오해나 봉변을 먼저 계산(?)하여 당연한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는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혜자는 이런 경우를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심지어 가장 긴장감 있는 예를 들어 확실하게 일깨운다. ”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내고, 죽음에 말려드는 사람을 구하여라.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하지 마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이가 어찌 모르시랴? 네 목숨을 지켜보시는 이가 모르시랴? 그는 행실대로 사람에게 갚으신다.(공동번역_11-12절)”

하다못해 외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원수”라고 까지 말한다. “원수가 넘어졌다고 좋아하지 말고 그가 망했다고 기뻐하지 마라. 야훼께서 그것을 못마땅하게 보시고 네 원수에게서 노여움을 돌이키신다.(공동번역_17-18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버거울 상황이라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거다. “최선, 마음을 다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우라”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 빠진 이들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선명하다. “마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 행실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긍휼에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내 코가 석 자”인 시대를 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이러스의 두려움에 노출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함으로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생계가 막막해 지는 이들이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잘 통제 되고 있지만, 통제 능력을 벗어난 3세계 국가의 코로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선교사님들의 정보에 따르면 최근 확진자가 폭발하고 있는 인도에서 1천명이 넘는 목회자가 이 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들려 온다. 그들의 가족들이 처한 황망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당하는 와중에 얼마든지 “내 코가 석 자”라며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현장을 외면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주님은 ‘마음을 헤아리시며,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고통의 현장에 필요한 것은 주님의 한 없는 사랑과 자비, 인애와 긍휼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사망의 이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소망이 되게 한다. “오늘 여기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긍휼이 현장에서 일어난다. 이 믿음의 자세가 주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닮아가려는 것을 외면하지 않게 한다.


3.절망하지 말라(16절)
“나쁜 사람은 재난을 만나 망하지만 착한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공동번역_16절)”

삶을 살다 보면 자꾸 넘어진다. 연속되는 실패가 멈추지 않을 때 자연스레 “절망”이 찾아와 인사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이 찾아와 인사할 때 그와 손을 잡으면 안 된다. 오히려 “절망”의 순간에 함께 계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그 손은 “다시 일어나게 하는 손”이다.

“다시 일어나게 하는 구원의 손”이 하나님의 손이다. 지혜자는 “나쁜 사람은 재난을 만나 “망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누군가 일으켜 주려고 맞잡아 주는 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다르다. 다시 잡아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늘 함께 있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 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새번역_요 14:1)” 근심,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을(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믿으면 된다.


나는?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백성은 “악인을 부러워 하지 않아야 한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기에 근심,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과연 시도조차 할 수 있을까? 늘 근심과 걱정에, 시샘과 부러움에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혼을 좀 먹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어떻게 평안할 수 있을까?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은혜가 없다면, “피해야 할 것”들에게 얽매여 살아가게 된다. 아… 믿음이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주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악인의 잘됨을 부러워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마음을 따르는 긍휼과 자비의 삶을 외면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넘어질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의 손을 믿기에 절망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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