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잠 29:15-27]
 – 2021년 06월 26일
– 2021년 06월 26일 –

공의와 긍휼의 삶을 살아내도록 빚는 과정은 쉽지 않다. 스스로 이런 삶을 추구하며 훈련을 받아도 제대로 훈련 시키기 위한 강도높은 시도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즉 훈련을 받을 시기는 그저 마음의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원치 않아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해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시도해야 할 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준다(15절), 징계로 인해 평안케 된다(17절)”와 같은 잠언들은 이와 같은 지혜 훈련의 과정에서 단호하게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적절하게 인식하게 해 준다.  쉽게 말하면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듣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도 안겨주는” 적극성이 지혜를 교육할 때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만으로는 종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으니 다 알아 들으면서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표새_19절)… 어릴 때부터 종의 응석을 받아 주면, 나중에는 다루기 어렵게 된다(표새_21절)”

지혜를 학습하는 대상은(종이든, 자식이든, 학생이든) 역설적으로 온전히 지혜롭지 못하기에 자신의 판단만으로 지혜의 수용과 거부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만 있다면 지혜의 삶을 가르치기 위해 “채찍과 꾸지람을 망설이지 말아야 하고, 돌이키기 위한 징계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채찍과 꾸지람, 징계를 행하는 아비, 어미, 선생,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손에 들려진 채찍과 꾸지람, 징계의 도구들을 행사할 때 자신들의 삶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자신의 삶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혜로움의 삶을 살기 위해 삶의 선생된 부모들과 선생들이,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태도는 무엇일까?


*묵시가 없으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18절)” “묵시(하존)”는 직역하면 “이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전’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환상”으로 어린 사무엘이 실로의 성막에서 생활하기 시작할 때 사무엘이 보았던 그 “하존(이상)”이다. 그런데 그 시대는 이 “이상”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보여주시는) 말씀이 드물었다.”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조차도 ‘이상’을 언제 보았는지 가물 가물 했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성막도, 법궤도, 제사장들도 각기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율법도 있었고, 법궤, 성막, 제사장도 있었는데 “이상”이 없으니 백성이 방자히 행한단다. ‘방자(파라)’라는 의미는 ‘풀어 놓는다’라는 의미이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가리킨다. 질서가 없고 예의도 없는 헝클어진 삶을 의미하기도 하겠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상(환상, 비전)’이 없으면 백성들의 삶은 안하무인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삶을 산다. 어린 사무엘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그런 삶의 태도가 극치를 이루던 “사사시대”였다.

이상이 없으면 무엇이 죄 이며, 무엇이 의 인지 깨닫지 못한다. 율법을 베껴 놓은 두루마리가 있어도, 그 두루마리를 펼치며 가르치는 제사장, 레위인들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지 못했다.  왜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새번역_삼상 3:1)”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일과 환상이 드물고, 자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이 희귀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따라, 말씀을 의지하여, 말씀에 대한 감동의 은혜”가 드물었다는 의미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말씀을 찾지 않았던 시대 였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묵시(이상)”이 없기에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동한다고 했다. 또, “율법”,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보다, 그 율법을 사모(사랑)하는 마음이 없기에 함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묵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상(환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다. 그래서 가장 심각한 가뭄은 물이 메말라서 오는 가뭄이 아니다. 바로 말씀이 메말라서 오는 가뭄이다.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 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새번역_암 8:11).”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것이 바로 “묵시가 없음으로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하는 이유다.”  결국 그 방자함이 이스라엘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철저하게 채찍과 꾸지람을 맞았다. 징계가 그들을 덮쳤다. 그렇게 그들의 역사가 끝났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준비하셨다. 그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언 하신 주님께서 그가 자란 나사렛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외치셨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새번역_눅 4:18-19)”

여기에서 “눈 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말씀”이라는 이상과 비전을 다시 보게 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상(하존_비전)”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시 그 이상을 보게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상(환상)을 바라보도록 먼 눈을 고치셨다. 주님께서 그토록 공생애 기간 치유하신 소경들의 회복은 이미 이렇게 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제 증거 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상”을 회복 시켜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영혼들의 먼 눈을 뜨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이상(비전), 말씀을 보게 하시고 갈망하게 하실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을 뜨게 하려 주셔서 누구라도 바라보게 하셨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먼 눈”을 치유하셨다!

이 은혜로 오늘날 내가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성경책이 나를 두르고 있어도, 무수한 경건 서적들이 쌓여 있어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말씀의 이상(비전)을 보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종교적 방자함에 빠져 무너졌던 이스라엘의 길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채찍을 휘두르더라도, 꾸지람을 주저하지 않고, 징계를 신속하게 행하여, 오늘날 주님께서 다시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말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이상”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상인 “말씀”이 보이고 깨달아 질 수록,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을 경외 하며 섬길 수 밖에 없다. 그 말씀의 환상적인 은혜와 동시에 지켜야 하겠다는 거룩한 부담이 우리를 눈 멀어 보지 못하여 교만해진 것에서 살려 낸다. 

*자녀들에 대하여 부모가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멀어질 수 있는 자녀들의 눈을 다시 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채찍과 꾸지람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먼저 “눈을 떠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말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너의 자식을 훈계(징계)하여라 그러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고, 너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새번역_17절)”

*아비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맛보면, 자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훈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미가 먼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이상(비전, 환상)을 보면 자녀들도 이를 보게 하려고 온 맘을 쏟는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말씀, 이상, 비전을 보지 못하면”, 결코 사모하거나, 갈급해 하지 않는다. 결국 망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내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상(말씀, 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날로 형식적인 신앙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환상, 이상, 비전, 말씀을 내가 바라보지 못한다. 그 놀랍고 거룩 하며 감격스러운 영적 에너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를 자녀들에게 소개하지 못한다.

*내가 눈이 멀면, 자녀들도 방자하게 된다.


나는?
**주님, 저의 먼 눈을 떠주시고,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묵시(말씀, 이상, 비전)를 보게 하소서.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야 주님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볼 것입니다(새번역_시 1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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