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6:22-36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양식인 ‘만나(이것이 무엇이냐?)’를 거두는 데는 분명한 지시(가르침_토라)가 있었다. 매일 한 사람 당 한 오멜씩 거두고(16절) 다음 날까지 남기지 말 것(19절), 여섯째 날은 두 오멜씩 거두는 것이다(22절). 하지만 이 말씀(토라_가르침)을 어긴 사람들이 있었다(19-20, 27절). “만나”에 정신이 팔려 “토라(말씀, 가르침)”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광야 한 가운데서 양식을 구할 수 있을 때 욕심껏 구해 놓아야지 라는 마음이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듣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만나에 집중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토라(가르침)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양식이 간절 하여도, “만나”보다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바로 “만나”를 하늘에서 양식으로 비처럼 내려 주시는 하나님과 그의 가르침(토라)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매일 만나를 거두면서 기억할 수 있었다. 만나는 신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백성에게 공평하게 “한 사람당 한 오멜”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7일째를 제외하고 거두어야 했다. 거둔 만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됐다. 반드시 없애야 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의 댓가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주시는 양식”이었다. 순전한 은혜라는 것이다. 어떤 누구의 노력과 행위의 댓가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매일 아침 하늘에서 비처럼 양식을 내려 주셨다.
또 중요한 것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만나”를 여섯 째날 두 오멜씩 거두게 하신 이유는 “안식일”을 백성들이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새번역_29절)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은 쉬는 날로서,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당신들이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으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이 다음날 먹을 수 있도록 아침까지 간수하십시오.(새번역_23절)”
이와 같은 행동양식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이었다. 이를 준행 하면서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것을 한 오멜씩 가득 담아 간수하여,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한 이 먹거리를 너희의 자손 대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새번역_32절)” 매일 한 사람당 한 오멜씩 거두는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공급하여 주셨다는 것을 “대대로” 증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 한 가운데 있다. 애굽은 그들에게 고통의 기억 뿐이었다. 그곳을 탈충한 것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광야 생활을 한달째 온 몸으로 겪고 있다. 표현하기 벅찬 당황스러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당황스러움 보다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온통 둘러 보아도 먹을 것 자체가 없는 황폐함일 것이다. 애굽에서는 삶이 고통스러웠을 망정 풍부한 물과 조금만 뒤적이면 그래도 먹을 것이 나오는 비옥한 지역이었지만, 광야는 아예 없다. 더구나 수많은 가축들도 함께 있다. 짐승들이 먹을 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하늘에서 양식이 내린 것이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뭔가 기억할 만한 기념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침마다 거둔 만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다 먹어야 했다. 그러니 아쉽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먹이신 이 기적과 같은 일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모세에게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32절)”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명령하신 목적은 분명하다! “…. ‘너희는 이것을 한 오멜씩 가득 담아 간수하여,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한 이 먹거리를 너희의 자손 대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새번역_32절)
출애굽한 당대 세대는 늘 아침마다 거두어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신 하늘 먹거리를 기억하겠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손들은 이 이야기가 신화가 되지 않도록 “증거”를 남기라고 하신 것이다. 훗날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 만나 항아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시켜 주는 귀한 시청각 자료가 될 것이다. 애굽에서 구원을 이끄신 하나님이 삶도 책임져 주셨다는 사실을 증거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삶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않도록 기념물을 남긴 것이다.
*오늘날 이 기념물은 무엇일까? 당연히 “말씀”이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인도하심, 책임져 주심을 증거하는 기념물이다. 또, 매 주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가 증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직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임에도 먼저 6일째 만나를 7일째 것까지 거두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물을 달라고 원망할 때나,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할 때도 화를 내지 않으시던 하나님은 안식일 명령을 지키지 않고 7일째 만나를 거두러 나간 백성으로 인해 화를 내셨다!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언제까지 나의 명령과 나의 지시를 지키지 않으려느냐?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백성이 이렛날에는 안식하였다.(새번역_29-31절)”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하나님은 없었다. 노동을 금지시키다니… 특히나 애굽에서 정기적인 쉼이 없이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일째 노동을 쉬고 안식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특별한 하나님이셨다. 여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도 6일째 이틀치를 거두라고 하고, 다른 날들은 남겨두면 썩어 악취가 났지만, 7일째에는 만나가 썩지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런 기막힌 일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교실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씩 배워간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무작정 쉬시는 날이기 때문에 쉬는 날이 아니라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몸으로 고백하는 날임을 깨달아 알아가게 된다. 7일째마다 하나님을 기념하고 그의 백성됨을 누리는 구체적인 것인 바로 “노동의 쉼”이었다. 아! 하나님 얼마나 멋진 하나님이신가! 무척이나 사람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인간미가 너무 좋다!
죄로 인해 경작의 수고와 출산의 고통이 커지고, 점점 죄악된 세상의 힘에 억압되어 “쉼”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고 싶으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거두어 먹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식을 세워 나간다.
-물을 달라 원망해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불평하여도 너그러이 해결 해주신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역정을 내셨다. 다름아닌 안식일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먹고 마시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지키는 명령이다. 신 광야에서의 안식일 준수 명령이 먹는 문제와 함께 다루시는 것을 훗날 모세를 통해 그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설명해 주셨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마귀와의 시험에서 이기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하나님의 말씀(토라_가르침, 지시)를 준행하는 지를 가르치기 위해 먹을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4절).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준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점점 수준을 높여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님,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기념하도록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겠습니다.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양식인 ‘만나(이것이 무엇이냐?)’를 거두는 데는 분명한 지시(가르침_토라)가 있었다. 매일 한 사람 당 한 오멜씩 거두고(16절) 다음 날까지 남기지 말 것(19절), 여섯째 날은 두 오멜씩 거두는 것이다(22절). 하지만 이 말씀(토라_가르침)을 어긴 사람들이 있었다(19-20, 27절). “만나”에 정신이 팔려 “토라(말씀, 가르침)”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광야 한 가운데서 양식을 구할 수 있을 때 욕심껏 구해 놓아야지 라는 마음이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듣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만나에 집중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토라(가르침)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양식이 간절 하여도, “만나”보다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바로 “만나”를 하늘에서 양식으로 비처럼 내려 주시는 하나님과 그의 가르침(토라)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매일 만나를 거두면서 기억할 수 있었다. 만나는 신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백성에게 공평하게 “한 사람당 한 오멜”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7일째를 제외하고 거두어야 했다. 거둔 만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됐다. 반드시 없애야 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의 댓가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주시는 양식”이었다. 순전한 은혜라는 것이다. 어떤 누구의 노력과 행위의 댓가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매일 아침 하늘에서 비처럼 양식을 내려 주셨다.
또 중요한 것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만나”를 여섯 째날 두 오멜씩 거두게 하신 이유는 “안식일”을 백성들이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새번역_29절)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은 쉬는 날로서,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당신들이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으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이 다음날 먹을 수 있도록 아침까지 간수하십시오.(새번역_23절)”
이와 같은 행동양식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이었다. 이를 준행 하면서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것을 한 오멜씩 가득 담아 간수하여,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한 이 먹거리를 너희의 자손 대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새번역_32절)” 매일 한 사람당 한 오멜씩 거두는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공급하여 주셨다는 것을 “대대로” 증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 한 가운데 있다. 애굽은 그들에게 고통의 기억 뿐이었다. 그곳을 탈충한 것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광야 생활을 한달째 온 몸으로 겪고 있다. 표현하기 벅찬 당황스러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당황스러움 보다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온통 둘러 보아도 먹을 것 자체가 없는 황폐함일 것이다. 애굽에서는 삶이 고통스러웠을 망정 풍부한 물과 조금만 뒤적이면 그래도 먹을 것이 나오는 비옥한 지역이었지만, 광야는 아예 없다. 더구나 수많은 가축들도 함께 있다. 짐승들이 먹을 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하늘에서 양식이 내린 것이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뭔가 기억할 만한 기념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침마다 거둔 만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다 먹어야 했다. 그러니 아쉽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먹이신 이 기적과 같은 일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모세에게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32절)”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명령하신 목적은 분명하다! “…. ‘너희는 이것을 한 오멜씩 가득 담아 간수하여,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한 이 먹거리를 너희의 자손 대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새번역_32절)
출애굽한 당대 세대는 늘 아침마다 거두어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신 하늘 먹거리를 기억하겠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손들은 이 이야기가 신화가 되지 않도록 “증거”를 남기라고 하신 것이다. 훗날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 만나 항아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시켜 주는 귀한 시청각 자료가 될 것이다. 애굽에서 구원을 이끄신 하나님이 삶도 책임져 주셨다는 사실을 증거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삶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않도록 기념물을 남긴 것이다.
*오늘날 이 기념물은 무엇일까? 당연히 “말씀”이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인도하심, 책임져 주심을 증거하는 기념물이다. 또, 매 주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가 증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직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임에도 먼저 6일째 만나를 7일째 것까지 거두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물을 달라고 원망할 때나,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할 때도 화를 내지 않으시던 하나님은 안식일 명령을 지키지 않고 7일째 만나를 거두러 나간 백성으로 인해 화를 내셨다!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언제까지 나의 명령과 나의 지시를 지키지 않으려느냐?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백성이 이렛날에는 안식하였다.(새번역_29-31절)”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하나님은 없었다. 노동을 금지시키다니… 특히나 애굽에서 정기적인 쉼이 없이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일째 노동을 쉬고 안식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특별한 하나님이셨다. 여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도 6일째 이틀치를 거두라고 하고, 다른 날들은 남겨두면 썩어 악취가 났지만, 7일째에는 만나가 썩지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런 기막힌 일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교실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씩 배워간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무작정 쉬시는 날이기 때문에 쉬는 날이 아니라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몸으로 고백하는 날임을 깨달아 알아가게 된다. 7일째마다 하나님을 기념하고 그의 백성됨을 누리는 구체적인 것인 바로 “노동의 쉼”이었다. 아! 하나님 얼마나 멋진 하나님이신가! 무척이나 사람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인간미가 너무 좋다!
죄로 인해 경작의 수고와 출산의 고통이 커지고, 점점 죄악된 세상의 힘에 억압되어 “쉼”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고 싶으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거두어 먹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식을 세워 나간다.
-물을 달라 원망해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불평하여도 너그러이 해결 해주신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역정을 내셨다. 다름아닌 안식일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먹고 마시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지키는 명령이다. 신 광야에서의 안식일 준수 명령이 먹는 문제와 함께 다루시는 것을 훗날 모세를 통해 그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설명해 주셨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마귀와의 시험에서 이기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하나님의 말씀(토라_가르침, 지시)를 준행하는 지를 가르치기 위해 먹을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4절).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준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점점 수준을 높여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님,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기념하도록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