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님의 옷 입고 살겠습니다. [갈 3:19-29]
 – 2021년 09월 07일
– 2021년 09월 07일 –
갈 3:19-29 주님의 옷 입고 살겠습니다.

바울이 “바른 복음”을 전하려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흔들린 “다른 복음”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


1.율법의 용도는?(19절)
먼저 ‘율법의 용도’가 무엇인가?를 질문에 대답한다. “그러면 율법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을 받으신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개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새번역_19절)”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이다. 사람들이 죄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고 그 죄로 인해 심판의 저주가 있음을 확실하게 드러내 주기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즉, 율법을 더욱 강력하게 지키도록 강제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강력하게 죄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확인만 될 뿐이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2.율법과 하나님의 약속의 관계(21-22절)
또 “그렇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도 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개자가 준 율법이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롭게 됨은 분명히 율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죄 아래에 갇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새번역_21-22절).”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명을 살릴 수 없기에,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에 구약성경은 율법을 통해 모든 죄에 대한 인식을 깨닫게 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모든 것이 죄 아래 얽매여 있음을 알게 하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죄의 얽매임에서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언약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였다!.


3.율법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그를 믿는 믿음으로_23-29절)
구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지기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으며, 그 아래 갇혀”있었다. 율법은 예수님의 구원의 필요성과 목적을 바라보게 하는 가정교사 역할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당시 세계관에서 익히 이해하는 개념 한 가지를 사용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새번역_23-24절).”

당시에는 개인교사(초등교사) “역할”을 하는 노예가 있었다. 그는 주인의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아이를 엄하게 훈육하였다. 하지만 아이가 정성하고 나면 가정교사로서의 “역할”을 끝나고 다시 노예로 복귀한다. 이와같이 율법은 인간이 예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새번역_25-26절)”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로 인간은 누구든지 그를 구원자로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더 이상 ‘죄의 저주’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과의 관계처럼, 아브라하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리고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을 공인하는 것이 바로 “세례”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다(새번역_27절).”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의 공동체가 되어 그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사람의 특징을 28-29절에서 분명하게 알려 준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새번역_28-29절).”

진정한 이스라엘,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 상속자 되어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차별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지금 나와 우리가 예수님의 것, 예수님의 안에 있으면, 이는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하난미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누리는 상속자가 된 것이다.

-당시 시대에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그런데 바울은 꿋꿋하게 유대중심의 구원관을 뛰어 넘는다. 차원이 다른 구원관은 차원이 다른 인간관을 창출했다. 인종이나 신분, 성별에 상관없이… 이 또한 가당키나 한 시각인가? 철저하게 우세인종과 열등 인종이 구별되어 종과 노예 체계가 당연한 그 시대에서 구원에 있어 전혀 구별조차 하지 않는 시각이라니… 여자는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분명한 주체를 인정하는 시각이라니… 바른 복음은 이렇게 창조적인 세계관을 싹틔웠다.

-주님 안에서 차별없는 구원… 당시 시대에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진리를 꿋꿋하게 순종하여 실천한 바울의 믿음이 대단하다. 누구도 시대를 역행하는 담대함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인데 진리의 복음이 주는 담대함은 시대를 초월하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주는 담대함은 시대의 한계에 순응 하기보다 시대 너머를 충분히 바라보게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새번역_27절).” 주님과 하나되고 주님의 옷을 입으면 가능하다고 바울은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주님의 옷”을 입는 다는 것이다. 이는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고 죄 아래에 억압받는 존재임을 절감하여 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대속의 은혜)”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 그래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의 옷을 어떻게 계속 입을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늘 상기할 수 있도록 말씀이 깨우치신다. 그렇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은 내가 하루 하루 예수님의 옷을 입고 사는 것과 다름 없다. 요한 사도가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말씀(로고스)이라고 하시 않았던가!

-말씀과 함께 시작하고 함께 동행하며 함께 마무리하는 하루 하루가 곧 주님의 옷을 입고 사는 삶이다.


나는?
*주님, 시대를 뛰어넘는 바른 복음정신을 따라 살겠습니다.
*주님, 복음정신을 따라 살기 위해 예수님의 복음을 더욱 믿고, 주신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십시오. 믿음과 지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살겠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께 속해 있기에 말씀의 약속 따라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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