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찐 복음(진짜 복음) [갈 2:1-10]
 – 2021년 09월 03일
– 2021년 09월 03일 –

갈 2:1-10 찐 복음(진짜 복음)

예수님의 복음의 진리는 자유함을 주었다. 할례와 율법준수와 같은 행위의 굴레에서 오는 억압에서 자유롭게 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함께 있을 때에는 거짓 교사들의 이런 자유함을 뺏는 것에 흔들리지 않았는데, 자신이 떠나고 난 후 흔들리는 상황에 대해 매우 침통해 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성도들을 탓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유혹은 사도들에게도 여전히 벅찬 문제 였기 때문이다(11절-13절).

복음은 모든 민족과 열방, 땅 끝까지 열려진 것 이어야 한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의 ‘다른 복음’은 다시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바울은 열려진 세상, 열린 복음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받아 충실하게 그 사명을 감당했다. 그 열매 중의 한 명인 “디도(이방인, 무할례자)”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과 만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구원의 열매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주님을 믿는 이로 개종한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한 유대주의 교리와 의식(형식)은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지엽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구원은 유대인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다. 그들에게 할례나 율법 준수와 같은 행동을 부수적으로 행할 이유가 없다.


1.자신(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한 확신 변증(2-9절)
1절에서 밝히는 ’14년’은 두어가지 의견이 있지만, 그가 회심한 후 14년이 흘렀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했으니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였고 행 11:27-30의 방문일 가능성이 크다. 주된 목적은 이방 가운데서 전한 복음이 어떤 것인지 사도들에게 알렸고, 그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에게서 회심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해서 였다.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새번역_2절)” 사도들에게 이렇게 알린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일,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이다. 그래서 증인으로 디도와 동행한 것이다.

당시 함께 동행한 디도가 할례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사도들의 권고에도 바울은 억지로 받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심 이후 14년동안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부름 받아 안디옥에서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이 굳이 할례 받지 않아도 율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구원이 이른 충분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할례와 율법 준수가 첨가 되지 않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충분한 구원을 말이다. 얼마나 강한 확신에 찬 모습인지 모른다. 내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바울처럼 확신에 차서 전해야지…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베드로(게바), 요한도 이 사실에 동의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d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b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b 유대 사람을 가리킴 d 베드로)(새번역_9절)”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유대인들(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 받은 것 처럼,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사도들”도 깨달았다고 덧붙인다(7-8절). 자신의 사도된 직분은 주 예수님께로 받은 것과 함께 주님의 제자들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밝히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다른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문제와 연결하여 “자신이 전한 복음”의 확실성을 변증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께 받은 사명인,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외치는 길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며, 자신이 전한 “주 예수님의 복음”의 확실성을 오롯이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한 복음이 “찐(진짜) 복음”이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에 강한 확신과 담대함의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 보다, 자신이 전한 “주 예수님의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서 이다. 나의 부르심도 이런 확신이 있을까? 나의 신분과 상황을 설명하여도 이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더욱 담대한 확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까?

*더 나아가 거짓 교사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다시 유대주의로의 회귀가 틀림없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북음을 통해 완성한 “자유함”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구원을 얻어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 밖에 없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자신이 안디옥에서 전한 복음, 율법을 따름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는 자유함의 복음에 대해 지지를 받은 바울은 확신에 차서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이방인들에게 참 자유함의 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직후(행 13:1,3) 성령의 강권하심을 따라 자유의 행진을 시작했다.

찐 복음에는 자유함이 있다.
찐 복음에는 확신이 견고하다.
찐 복음에는 예수님이 중심이다. 율법과 할례의 행위가 곁들지 않는다.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찐 복음안에서 누리고 있던 자유함을 다른 복음이 주는 얽매임과 스스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자유한가? 의식과 율법, 전통에 얽매여 있는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만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게 한다.


2.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10절)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새번역_10절)”

바울을 만난 야고보, 베드로, 요한은 바울의 사도권과 그가 전한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덧붙여 부탁한다. 오랜 가뭄으로 핍절해진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 주라는 부탁이다.

바울은 이 부탁을 받고 이 일은 “자신이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임을 고백하고 최선을 다해 섬긴다. 실제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도(행 20장) 전도여행으로 세워진 교회들에게서 모금된 헌금을 전달하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  

다른 복음을 그저 교리적인 설명과 학문적인 정리로만 멈추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어려움에 대해 마음으로 섬기고 협력하여 살리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나는?
*주님, 내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도 이렇게 확신 있게 전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도 “찐 복음”안에서 의식, 제도,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함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복음을 말 뿐만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는 일”에 근면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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