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갈라디아서! 다른 복음은 없다! [갈 1:1-10]
 – 2021년 09월 01일
– 2021년 09월 01일 –
갈 1:1-10 갈라디아서! 다른 복음은 없다!

갈라디아서 배경이해
갈라디아서 묵상이 시작되었다. 먼저 갈라디아서에 대한 기본 이해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기록한 서신이다. 사도행전 13장 14절부터 14장 24절에서 언급하는 1차 전도여행에서 세워졌고 16장 1-5절에서 다루는 2차 전도여행중 방문한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기록연대는 최근에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들어 주후 48-49년경으로 추정 하기도 한다. 갈리디아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공의회(주후 49년)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결의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바울이 공의회에서 결정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하면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주후 45-48년 사이 진행한 1차 전도여행을 통해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들을 세웠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곳은 비디시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등이다. 하나같이 바울이 고난과 배척을 받으며 세운 교회들이다. 이렇게 은혜의 각인이 선명한 곳을 예루살렘 공의회의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으며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결의를 거부한 거짓교사들을 경계하고자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의 심각한 문제는 “거짓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과정에서의 방문을 마친 직후에 교회안에 침투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교의 전통을 통해 구원이 완전하게 된다(행 15:1,5; 갈 6:12)는 확신을 가진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에게 선택 받은 인물일 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임명받은 그의 가르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라는 논리로 유혹하였다. 또, 바울이 전한 복음도 공격하였다. 바울이 12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직접 전해 들은 것이 아니다. 바울은 12제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바울은 12제자와 다른 복음을 가르친다고 모함하였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 유대교화 되어가는 모습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바울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쳤다!

바울을 기억하는 일부 교인들이 거짓 교사인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치는 상황을 바울에게 알리고 그에게 조언을 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공식적으로 사람을 보내 바울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바울에게 정확한 조언을 듣기까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었을 상황이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갈라디아 교회들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서신을 써서 보내어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니 바울은 지체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것(1-2장)으로 시작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의 변증(3-4장), 자기변호(5-6장)으로 구성된다. 결국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 받는다는 본질적인 교리를 잘 지켜 내도록” 돕고자 한다.
이토록 바울을 흠내려는 거짓교사들과 그들의 말에 동화되어 가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그의 외침은 무엇인가?


1.언제까지나 순수하지는 않다(?!)
교회는 세상의 도전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더욱 결속을 다지고 강건하게 서게 한다. 반면에 내부에서 분열되는 교회는 언제든지 세상의 먹이가 되고 만다. 교회가 흔들리는 것은 괜히 그리 되는 것 아니다.

바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전하여 세운 교회가 흔들린다. “교회를 교란하는 자들(7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5:12절에서는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바로 거짓 선생들이다. 교회를 교란하고 어지럽게 흔드는 자들에 의해 교회가 점차 물들어 간다. 언제까지나 순전하고 순수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깝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나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짓된 가르침에 속절없이 빠져 들어간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 안타깝다!


2.치사한 거짓 교사들의 공격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울의 자격을 시비 걸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도 않았고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까지 갈 만큼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굴러온 돌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더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으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은 정상적인 논리로 접근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라면 당연히 거쳤을 과정을 이행하지 않았기에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논리는 오늘날 특정한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자기 교단의 목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답한 교회 헌법을 가지고 있는 어떤 교단과 흡사하다.

*자기들이 인정하는 코스를 이수해야하고, 인정하는 결과물이 있어야 자신들이 그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망측한 사고다.

*아쉽게도 오늘날 무수한 집단과 무수한 지성들이 이런 모습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거짓 교사들이 문제 삼는 사도성을 인정하는 기준이 자신들의 기준이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망측함이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나에게도 이런 망측함이 나타나지 않기를 생각해 본다.


3.다른 복음은 없다!(6-9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다른 복음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고 강력하게 전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님만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복음”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할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고 교묘하게 가르친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여러분을 [그리스도의]b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b 또는 ‘은혜로’)_(새번역_6절)” 라고 말하면서 다른 복음에 빠져 들어가는 이들을 “이상하게 여긴다(다우마조)”고 했다. 매우 놀라고 너무나 안타깝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이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놀라고 안타까워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새번역_8절)” 이라고 말한다. 9절은 더욱 직접적으로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선언한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탁월하게 해야 나를 온전히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온전히 살리신다.


나는?
– 바울은 분명하게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빠진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친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새번역_10절)”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려고 살아 왔다. 사람들의 환심을 얻지 못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종”의 본분이다.

-거짓 교사들은 사람의 마음은 기쁘게 해 줄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게 해드릴 수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얻었음에도 이제껏 지키며 살아 온 할례와 율법의 준수를 얼마나 충실하게 지키느냐가 구원의 정수를 완성한다고 가르쳤으니… 도대체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뭐가 되는 건가!

-예수님 만으로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완전한 구원을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음에도, 인간의 생각, 기준, 익숙함을 빌미로, 그 지독한 자기 공로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바울의 성도와 교회를 향한 열정이 도전 된다. ‘다른 복음’ 앞에 흔들리고 있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심정과 행동에 공감된다. 격한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바른 신앙으로 이끌려고 사력을 다한다.

*바울의 때에만 ‘다른 복음’이 있었겠나? 여전히 우리의 시대에도 ‘다른 복음, 거짓 교사’는 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순전한 모습보다 자본주의에 함몰되고, 교권에 취한 모습도 여전하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상관 없는 자기 영광을 부채질하는 형편없는 이들도 득세한다.

*이런 시대에 나는 바울의 마음으로 더욱 묵묵히 이 시대를 살아야 겠다 다짐해 본다. 오롯이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담백하게 전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 이런 삶을 먼저 살아가며 본을 보여주신 믿음의 선배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런 길을 적극 협력하고 마음을 모아주는 성도님들이 너무 감사하다. 부족하기만 지도자를 미쁘게 보아주며 생기발랄하게 따라오는 청년들이 고맙다!

*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주님, 온전함 복음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주님 바울의 뒤를 따라, 지금 여기서 바울처럼 예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사진:이고니온 사도바울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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