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살인에 대한 단호한 규례 [민 35:22-34]
 – 2023년 05월 25일
– 2023년 05월 25일 –
도피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고의적인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을 위한 도피성은 없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사람의 경우 이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어야 하는지, 도피성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도피성을 떠날 수는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고대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는 법의 체계를 세밀하게 제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피의 복수”를 인정하는 것은 고대 사회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불의한 죽음, 의도치 않은 살인으로 인해 피를 흘렸을 때 그 사람을 도피성으로 보내 그 생명을 보호하셨다. 살인한 이를 사회에서 격리하심으로 땅의 정결을 가지려는 이중의 목표가 있다.
 
 
 
1.부지 중에 지은 살인의 예와 절차(22-25절)
“부지 중에”라는 말은 “의도하지 않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의도하지 않은 살인의 예를 “악의가 없이, 우연히(순식간에)”로 분명한 제한을 두신다.  이에 해당하는 것을 “아무런 의도 없이 무심코 사람을 밀쳐서 죽게 한 경우, 기회를 엿보는 일 없이 물건을 던져 사람을 죽게 한 경우,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사람을 죽게 한 경우 등을 든다.
 
우연한 사고의 예는 신명기 19:5에서 어떤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서 이웃을 치게 한 경우를 든다. 하지만 비록 고의는 없을 지라도 일단 살인이 일어나면 살인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사이에서 판결을 해야 한다.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 피의자는 즉시 도피성으로 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피의 복수자는 사적으로 복수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재판을 통해 판결을 내리게 된다. 판결을 내릴 때 까지 형 집행은 미뤄지고 의도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도피성으로 들어가 피의 복수자로부터 목숨을 지키게 된다. 중요한 것은 도피성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의미와 함께 그가 도피성을 떠니지 못하게 됨으로서 일종의 격리와 형벌의 시간으로 보내게 된다. 감옥의 역할도 있다.  하지만 살인의 고의성이 밝혀지면 사형에 처해진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성경은 사형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비고의적이든, 고의적이든 살인은 매우 심각한 죄이며 어떤 경우라도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인한 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피성 제도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도피성에서 목숨을 보호받을 수 있으나 그가 도피성을 떠나는 순간 모든 보호 장치는 제거된다.
 
 
 
2.도피성 생활 규례(26-29절)
도피성의 생활은 철저히 지켜야 할 규례들이 있었다. 대제사장이 죽고 나면 자유롭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그 외에는 어떤 경우라도 도피성 지경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밖으로 나갔다가 피의 복수자를 만나 죽임을 당해도 그 죽음에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죽은 이후에 살인자가 자신이 소유한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28절)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제사장이 살인자에게 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왜 일까?
 
대제사장의 죽음은 이스라엘 제사 제도에 있어 옛 시대가 끝남을 의미한다. 새로운 대제사장이 오면 새 시대가 도래하는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의미로 인해 이전 세대에 일어난 살인으로 인한 형벌의 책임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해소 되는 것이다.
 
또한 살인에 대한 형벌의 중한 책임은 비고의적이라 할지라도 매우 중한 죄이다. 도피성에 머물러야 하는 규정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보호하는 면도 있지만, 도피성 내 제한된 삶을 통해 살인 이전에 자신이 영위하던 모든 것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도피성은 그릂 세상과 격리하여 그의 죄악이 세상에 퍼지지 않도록 살인에 대한 형벌을 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도피성은 살인한 자에게 구원의 장소이자 감옥의 의미를 함께 가졌다.
 
 
 
3.고의적인 살인에 대한 규례(30-34절)
대원칙은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음의 형벌을 내려야 한다. 이때 한 사람의 증언 만으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의적인 살인은 그의 신분이나 상황에 상관 없이 오직 죽이는 길 밖에 없다. 생명을 위한 속전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비고의적인 살인에도 적용된다. 부지중에 살인했을 지라도 생명을 위한 속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대제사장의 죽음만이 그를 자유로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결국 의도하지 않은 살인이라도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만 속한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 진 것이다. 신분에 상관 없이 사람의 생명은 동일하게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
 
또한 도피성에 머무는 것은 피 흘림으로 인한 땅의 부정함을 막는 방편이다.
 
 
 
나는?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인자의 피 값을 대신한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주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셨다(히 9:11-12).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살인에 대한 형벌은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에 대한 무거운 마음으로 대제자상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했다. 도피성은 분명히 피난처이지만, 동시에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감옥이다. 실수였을지라도 생명을 해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살인은 속전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돈으로 법을 피해가려는 시도를 방지하는 것이다. 살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생명의 땅,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은혜는 무한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한량없는 은혜이다. 죄와 벗하는 악한 범죄함과 은혜는 함께 하지 않는다.
 
*세상이 교회를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무작정, 무제한의 사랑과 용서만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명령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자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거하는 주님의 품안은 영원토록 거하도록 불러주신 곳이다. 이 땅의 도피성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세상의 죄악의 유혹으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을 지키 주시는 은혜이다.
 
*살인과 관련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요한 사도의 더욱 급진적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 까지 살인이라고 했다(요일 3:15).
 
 
 
*주님, 도피성은 부지중에 지은 죄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은혜로 포장한 치루어야 할 대가를 외면하는 악함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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