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우리에게 왜 복음이 필요할까? [롬 1:18-32]
 – 2023년 05월 28일
– 2023년 05월 28일 –
바울이 선언한 복음(1:16-17)에 대한 의미를 1:18-3:20까지 분석해 나간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계를 통해 그의 불멸함과 능력과 신성을 보여 주셨다.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기대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반역하는 이들에게 대한 진노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악함에 대하여 행하시는 의로운 심판이 공정한 것임을 묘사한다.
 
 
 
1.하나님의 진노(18절)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인간이 맞게 행동하였는가에 대하여 그 책임을 반드시 물으신다는 것을 바라보게 한다.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듯, 18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진리를 막는 사람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 하늘로부터 나타났다’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먼저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이 진리에 대하여 불경건과 불의로 응대한다. 이는 하나님과 상관 없고 언약 관계에 대한 신실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누구든지 불경건과 불의함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진노”로 응답하신다.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믿는 자에게 은혜로 구원을 주셨음에도 고의적으로 그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맹렬하게 임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서 하나님 닮은 성품이 드러나지 않고 도리어 불경건함과 불의가 나타날 때 진노하심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2.하나님의 진리_분명히 보여주심(19-20절)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하나님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피조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셨다.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에 대해 강조하심으로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하셨다.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이성과 양심에 자신을 보여 주셨다. 만드신 만물에도 분명하게 보여 알게 하셨다. 아무도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 주셨다. 모든 창조 세계가 자신들 안에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 지식을 바삐 전하며 찬양한다(시편 19편). 그런데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러운 창조물인 인간은 외면한다. 거절한다.
 
 
 
3.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_알고도 거부함(21-23절)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도 거부한다. 마음과 행동 모두 거부한다. 의도적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다. 인간의 타락은 심각하다. 21절은 “하나님을 알면서도(새번역)”영광을 돌리거나 감사치 않는다고 지적한다(21절). 더 나아가 불멸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것으로바꾸었다(23절).
 
*전 인격과 영혼까지 타락하여 지성적으로는 허망하고, 정서적으로 어두우며, 의지적으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고, 영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였다. 오늘날 타락한 사회 속에 산다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4.하나님의 응답_내버려 두심(24-32절)
21-23절의 사람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설명한다. 바울의 선언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거나 외면하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내버려 두는 것(24, 26, 28절)”이다. 총 3회에 걸쳐 “내버려 둠”을 언급한다. 먼저 “마음의 정욕(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24절) 내버려 두신다. 마음의 정욕은 “우상숭배임을 25절에서 설명한다. 또, “부끄러운 욕심(26절)”에 내버려 두셨다. 이것은 성의 왜곡을 가리킨다. 순리를 외면하고 역리를 선택한 것에 댓가는 이미 그들의 몸으로 받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 상실한 마음(28절)”에 내버려 두셨다고 말한다. 상실한 마음으로 인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데(29절),  29-31절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버려 두심”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정욕대로 사는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이들을 하나님이 그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 그 타락한 마음이 그대로 내버려 두니 성적인 부패가 일어난다. 성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그 마땅한 댓가를 받는다. 또 개인의 도덕과 사회 윤리가 부패하여 합당치 못한 일을 하며,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 분위기가 조장이 된다. “내버려 둠”은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들에게 “사형 언도”가 내렸졌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공정한 법도를 알면서도, 자기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새번역_32절)” 라고 두둔하기 까지 한도고 한탄한다.
 
*아직 집행 되지 않았지만 이미 사형에 처해진 이 세상 사람들의 허망한 번쩍거림을 나는 혹시 부러워 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17절)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불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길을 막았고, 그 결과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졌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경건치 않음과 불의라는 방식으로 선택한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내버려 둠”, 즉 “유기”로 나타났다. 이 유기의 결과 인간은 더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가치 체계 안에서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한다. 더는 하나님 눈치를 안보고 살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도 그들을 상실한 마음 그대로 살도록 내팽개치셨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영적인 무감각과 자기 정당화의 늪에 빠져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른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가기 스스로의 삶을 도모한 인간은 이를 참 자유라고 여겼을 수 있지만, 결국 하나님을 대체하는 우상을 만들어 자기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외면하고 거부하는 자들을 내버려 두자 브레이크가 파멸된 푹주 기관차처럼 파멸의 벼랑 끝으로 치닫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자기파멸”적인 우상숭배만 남았다.
 
 
*우리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가? 날마다 하나님이 보이시는 것을 밝히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하다.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삶의 모든 곳에 깃든 하나님의 은혜의 자기 계시를 더욱 더 바라보고 붙잡을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리하여야 “죄에 내버려둠”을 당하지 않는다. 복음이 선명할 수록, 죄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죄가 선명하게 드러나야 복음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것을 갈급하게 된다.
 
 
 
*주님, 복음을 내 마음에 온전히 새기는 묵상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선명하게 드러난 죄를 말끔하게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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