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날 밤에…(다윗 언약) [삼하 7:1-17]
 – 2022년 09월 29일
– 2022년 09월 29일 –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결단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베푸셔서 도리어 다윗의 집을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본문은 이와같은 다윗 언약을 다룬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위한 집을 구상하게 된 것은 단순하다.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새번역_2절) 다윗은 자신은 두로 왕 히람이 지어준 최고급 왕궁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궤가 임시로 만들어진 휘장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보통 쓰인 것이 아니었다(왜 이런 마음이 생겼을까?).

다윗의 이런 마음을 읽은 나단 선지자도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새번역_3절) 라고 두둔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급하셨는지, 나단 선지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 날 밤에 나타나셔서 그가 다윗에게 말한 것을 교정하여 주신다. 그리고는 다윗 언약을(5-16절) 언급하셨다.

특히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새번역_6절) 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왕궁과 같은 백향목 집을 지어주지 않아서 서운해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도리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11절),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12절)”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 씨가 하나님의 집을 짓게 될 것도 밝히신다(13절). 이 언약은 먼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될 성전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말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다.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짓기를 사모한 성전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성전’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는 순간부터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점점 희미해 지고 도리어 형식과 율법, 이를 감당하는 제사장의 권력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묘한 현상이지만 성전이 건축되고 제사장직이 강조되면서부터 그 부패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경종을 울리는 선지자들의 외침도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거룩함은 세상 어떤 곳에서도 보편적으로 일어나야 했지만, 성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전의 특별한 거룩성을 강조했다. 교회 역사에서 개혁자들은 특정 울타리 안의 장소에서만 경건이 유지되고 이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수도원 운동 등이 사그라들게 된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특별한 장소에서 구별되는 거룩보다 일상이 되어야 하고 보편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성령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된 구원 받은 자신들은 보지 못하고 특정 장소, 건물에만 집착하여 그곳을 거룩하게 여긴다면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안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주님이 특정 공간에만 계신다고 믿게 하려는 자들의 바램에 동조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어디에든 거하실 수 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알량한 건물에 갇히게 해서는 안 된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가 거할 만한 집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자신이 거하는 궁에 대한 평가와 비교되는 마음에서부터 였다. 다윗은 의외로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른다. 오해를 한다.

*그는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지속되기를 기대하나,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자유스러우심을 거스르는 생각임을 깨닫지 못한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야 하나님께서도 기쁘게 들어가실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귀하기는 하지만 유치하다. 이렇듯 자기 생각과 계획, 장소에 하나님을 묶어 두려는 의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다윗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는 좋은 마음을 왜 하나님께서 거절하셨는지를 놓치면 안 된다. 그것은 다윗이 기대하고 원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주권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각을 일깨워 주신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새번역_5절하-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함께)” 늘 계셨다. 그렇게 거하시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에 대한 욕심을 백성들에게 요청하신 적이 없다. 다윗의 눈에 보기에 천막이 초라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초라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에 정작 하나님의 의중은 묻지도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해도 됩니다” 라고 말한 나단 선지자의 모습에서도 나의 모습이 연상된다. 나도 이러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다윗과 나단의 대화를 듣고 계셨던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대화를 다 듣고 계심이 확실하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운 다윗의 자기 열심과 이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다윗이기에 정작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동의한 나단의 대화를 정확히 들으셨고, 그들 마음의 중심의 의도까지 아시기에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또, 다윗에게 하신 언약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특권을 누리는 것임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켜 주심으로 온 인류에게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내는 모습이 미덥고 어려우며 힘이 들어도 다윗을 통해 약속해 주신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를 바라보며 믿음의 용기를 내게 하신다.



*주님, 다윗에게 하신 연약이 저에게도 하신 약속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납니다.
*주님, 자기열심이라도 질책보다 선한 격려로 응답해주셔서 감동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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