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은혜 아래 [롬 6:1-14]
 – 2023년 06월 06일
– 2023년 06월 06일 –
5:12-21의 “은혜와 죄”의 주제를 이어간다. 특히 5:20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표현에 대해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진행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을 강조한다.
 
 
1.죄와 은혜(1-4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자칫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하여 은혜를 더하려고 죄와 가까이해도 된다는 식의 허무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2절 상)”고 대답한다.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에 얽매여 살 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 안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그의 죽음 안으로 세례 받은 것이기에 세례를 통해 그의 죽음 안으로 함께 장사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신자의 죄를 대신 한 것이고 그의 부활은 신자의 죄 문제가 해결 되었음을 확증하는(롬 4:25) 것이기에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의롭게 여김을 받음”이라는 구원의 상호 작용의 결과를 만들었고 이는 신자가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로 옮겨가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새 생명 안)으로 들어간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후에는 그 생명 안에서 걷는 삶이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4절 하).” 이와같은 삶은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성취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한 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와 욕심을 십자가에 장사 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영적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니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좇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정체성을 드러내며 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2.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5-11절)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이 죄에 대해서는 죽었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옛 자아(타락한 본성)가 죽었으므로, 이제 더는 죄의 법이 내게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는 것은 그 사실 만으로도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을 촉구한다.
 
바울은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극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예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죄인인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난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으로 살아나갈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지금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동참했으나 아직 몸의 부활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 날까지 예수님의 생명을 덧입어 새 생명을 누리다가, 몸의 부활에 참여하는 날 새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갖은 유혹과 핍박에도 이에 지지 않고 이미 새 생명을 얻은 삶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몸의 부활은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새 생명 가운데 살고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이미 예수님의 새 생명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다시 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 죄의 종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그러므로(12-14절)
성도는 마땅히 새 생명의 신분에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삶 속에서 죄가 사욕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데로 우리의 몸을 끌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죄가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내 몸의 모든 지체를 의의 무기로 내어 놓아 의로움이 나를 다스리게 해야 한다. 죄에서 해방된 몸을 한 순간이라도 다시 죄가 주장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로 내어 드려야 한다.
 
*내 몸이 죄에 쉽게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더 빨리 반응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우리의 몸의 주인은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죄를 위한 불의의 병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의의 병기로 사용되도록 구비해야 한다. 또한 율법이 우리를 마음대로 정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죽음과 죄의 지배 아래 굴복하지 말고 은혜와 생명이 왕 노릇하게 해야 한다.
 
 
 
나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면 더 많은 죄를 지어야 한다는 궤변에 마음이 홀리면 안 된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에 대해 죽었다는 뜻이며 죄의 권세를 용납하며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은혜는 죄를 방관하지 않게 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동참 되었다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몸의 부활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셨다. 그러므로 죄의 통치 아래 다시 들어가 죄의 종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믿음으로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듯, 아직 몸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은 지금 또한 믿음으로 부활를 바라보며 예수님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까지 갖은 유혹과 핍박이 있겠지만, 죄의 세력에게 지지 않고 예수 안에서 이미 참여한 새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새 생명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 구제적으로 죄가 원하는데로 자기의 몸이 끌려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새 생명 안에 있는 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신 의의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기에 죄의 병기가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의 몸을 하나님의 의가 밝히 드러나는 데 사용되도록 기꺼이 내어 드리는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울은 구원 받은 그리스동니의 상태에 대해 “은혜 아래” 있다고(14절) 강조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새번역)” 은혜 아래 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인 죄에 대하여 자유하다는 것, 하나님과 불화했던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가 되었다는 것,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을 세워가는 정의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라 살 수 있는 자격이 생겼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죄의 법 아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여전하다.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사면령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죄의 무게에 짖눌려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
 
 
 
*주님, 죄의 병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병기인 것을 늘 잊지 않고 의의 병기 답게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이렇게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제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임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 아래에서 은혜를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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