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의의 종이 되었으니 거룩함에 이르라 [롬 6:15-23]
 – 2023년 06월 07일
– 2023년 06월 07일 –
구원은 은혜 아래 사는 것이다(14절). 죄의 영역에서 은혜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불법의 삶에서 거룩한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망으로 끝날 삶이 영생을 누리는 생명의 삶이 된 것이다. 
 
 
 
1.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었으니(16-20절)
사람은 자신을 누구에게 헌신하느냐에 따라 그의 종이 된다. 죄에 순종하는 자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의의 종이 된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처럼 부정과 불법에 몸을 내어 준다면 아직도 주인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죄에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구원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몸을 주장하도록 순종할 것이다.
 
누구든지 무언가를 섬기고 의지한다. 인간의 삶에는 어느것도 섬기지 않는 중립은 없다. 죄의 법 아래 살든지, 은혜 아래 살든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은혜 아래 들어왔다는 것의 의미는 이미 죄의 지배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더 이상 죄의 권세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신앙의 삶에는 중립지대란 없다. 뿐만 아니라 죄의 요구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끝은 사망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깨닫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가져온 자유함은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되는 자유가 아닌,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댓가는 자신이 오롯이 져야 한다.
 
그리고 바울은 분명하게 상기 시켜준다.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새번역_20절).” 그렇다. 죄의 법 아래 있을 때는 의의 법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의의 종이 되었음에도 죄의 종노릇을 자처한다면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의의 종으로 사는 것은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새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몰랐을 때 따르던 세상의 방식, 죄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는 삶이다. 불의와 불법이었던 죄의 종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죄의 종이었을 때 삶은 생각하기도 싫은 민망한 삶이었다. 그 끝은 필연 사망으로 끝날 삶이었다. 하나님께는 진노와 심판의 대상인 삶이었고 이웃에 대하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철저히 대적하는 삶이었다. 아무도 행복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자유함을 얻었고, 화목함을 누리게 되었는데 어찌 그 저주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여전히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순간의 절망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절망감이 죄의 유혹을 경계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공동체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내고 있을까?
 
 
 
2.죄의 삯은 사망, 하나님의 의는 영원한 생명(21-23절)
죄의 종과 의의 종의 열매를 대조하여 설명한다. 죄의 종은 의에 얽매이지 않고 살다가 그 마지막은 사망의 열매를 맺지만, 하나님의 의의 종은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며 살다가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모두 비슷하게 보일 수 있어도 결국은 윌가 심은 대로 사망의 썩을 것을 거두거나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다.
 
구원은 “해방”이다. 불의 종, 죄의 종이 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며, 부끄러운 열매를 맺었던 자가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죄에 충성하면 사망이라는 삯이 기다리지만, 의에 충성하면 영생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새번역_23절).”
 
*나는 여기서 무엇을 심고 있을까? 예수님과 연합하여 날마다 그분께 복종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기꺼이 나의 몸과 마음을 내어 드려야 한다. 
 
 
 
나는?
-중립지대는 결코 없다. 인간은 무언가를 반드시 의지한다. 누구든지 무언가를 의지한다. 죄의 법 아래 살든지, 은혜의 법 아래 살든지 한다. 은혜 아래 들어왔다는 것이 죄의 지배를 벗어났다는 뜻이며, 더 이상 죄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죄의 법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사망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되는 자유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죄에 대하여 안 지을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이를 사용하지 않은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의의 종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생각도 없이 고민도 없이 살면 편할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 위한 의지는 홀로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님께서 도와 주신다. 성령을 통해,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통해 역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이 특권이 얼마나 큰 은혜 인가! 확실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
 
-의의 종으로 산다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낸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의 세상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죄의 종의 삶과 의의 종의 삶은 겹칠 수 없다. 죄의 종의 삶의 열매는 전혀 거룩하지 못하고 바라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죄된 삶이다. 결국 그 끝은 사망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참 자유함을 얻었는데 이런 민망하고 낯부끄러운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겠는가!
 
*구원은 불의 종이 의의 종이 된 혁명적인 사건이다. 죄의 종이 하나님의 종이 되고, 부끄러운 삶의 열매를 맺던 자가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되는 사건이다. 사망에 이를 자가 양생에 이르게 되는 반전의 사건이다. 죄에 충성하면 사망이라는 삯을 받게 되지만, 의에 충성하면 영생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의의 종이 된 이후 구태여 죄의 종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겠는가?
 
 
*구원받은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의로 이루신 구원의 과정에 믿음으로 참여했기에 이제는 의의 삶, 거룩함, 영생을 추구하며 지속적인 믿으의 걸음을 요청받는다.
 
*무엇보다 신자의 삶의 핵심은 “관계성”이다. 구원 받기 이전에는 죄와의 관계안에 있었지만,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
 
*이 관계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 빛의 영역 안에서 옛 주인인 죄와의 관계성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과 불법 안에 살아가다 마지막은 사망에 이르는 죄의 종의 삶을 더 이상 미련을 가지면 안된다.
 
 
 
*주님, 의의 종된 삶을 지키며 거룩한 삶의 열매를 추구하겠습니다.
*주님, 자유함을 누리려다 방종에 이르지 않도록 거룩한 분별을 끊임없이 시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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