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죄를 더 깨닫게 하는 율법 [롬 7:1-13]
 – 2023년 06월 08일
– 2023년 06월 08일 –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비를 혼인의 비유로 설명하면서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밝혀 준다. 이 논증은 분량으로 보면 가장 긴 율법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지만, 육신에 속해 있는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죄에게 이용당하여 사망을 낳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의 상태를 벗은 이들은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 아래 놓여 있다고 7장을 통해 주장한다. 바울은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했었다(3:19-20; 4:15; 5:13, 20). 7장은 바울서신을 통틀어서 바울의 율법의 이해를 가장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본문이다.
 
 
 
1.혼인 비유를 통한 율법의 역할(1-3절)
바울은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로마 교회의 유대파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의 율법에 의문을 품고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통칭한다. 이들에게 율법의 한시적인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혼인 관계를 비유로 사용한다.
 
먼저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1절).’ 이는 남편의 사망이 혼인 관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과(2-3절) 같은 이치이다. 즉, 옛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율법 또한 그 역할을 하였지만, 그 옛 사람(남편)이 죽으면 율법에서도 자유하게 된다. 바울에게 옛 사람과 율법은 모두 이전 세대에 속한 것들이다. 바울은 6장에서 이미 줄곧 옛 사람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6:14에서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에 필요한 율법을 주셨다. 따라서 율법의 기능과 역할을 잘 이해하면 율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그 의도를 잘 깨닫지 못해 잘못된 방식으로 율법을 사용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에 어떤 기능과 역할을 부여 하셨는지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속된 말로 율법을 오해하여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하나님을 반대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한 자들을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자류로운 품에 안기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혼인의 비유를 들어 율법(전 남편, 옛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누군가를 지배하고 죽은 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듯이 율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더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확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결혼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그 길을 여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볼 일이다.
 
 
 
2.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됨(4-6절)
4절은 6~7장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핵심이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새번역)”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도들이 이 세대의 특징들에게서 해방되어 다음 세대의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함축하여 담았다.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선언하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 세대의 몸을 벗고 부활을 통해 다음 세대의 완전한 구원으로 들어가시면서 이 세대에 속한 율법도 벗었다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후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 하나님을 섬김으로 피곤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율법 아래서의 섬김은 정죄와 심판 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덧입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내 힘과 노력이 아니라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 주신다. 그러므로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더욱 충만해지지 않겠는가!
 
*죽으면 법이 바뀌듯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더 이상 율법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제 성령의 법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율법은 더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지배를 받을 뿐 아니라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이는 율법이 필요없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율법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이 정죄하는 기능을 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누리는 풍성한 삶을 바라보게 한다.
 
 
 
3.마침내 드러난 율법의 기능(7-13절)
바울은 율법의 기능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로마 교회의 형편을 의식하며 다시 한 번 “그래서 율법이 죄냐?”고 재차 묻는다. 이 질문에는 이미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죄”라는 바울의 대답이 담겨있다. 바울은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7절 하반절의 예를 통해 밝힌다. 레위기 18:5에 따르면 율법을 준행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신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문제는 “죄”인 것이다. 죄가 율법을 만나자 율법을 이용하여 오히려 온갖 ‘악한 소욕’을 일으켰다(8,11절). 심지어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까지(8절)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진 곳에서 오히려 그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렀음을 강변한다(9-11절).
 
율법은 여전히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12절). 문제는 죄이다. 율법은 죄에게 이용 당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연약하다(8:3)는 것이 문제이다. 율법이 사망을 낳지 않았다. 율법을 이용하여 죄가 사망을 낳았다. 그렇다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인가? 율법은 죄에게 이용당하여 율법을 지닌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율법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분명하게 담당했다. 이를 강조하며 13절 하반절은 “…. 그것은 계명을 방편으로 하여 죄를 극도로 죄답게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3절 하반절_새번역).” 라고 설명한다. 이미 앞선 본문들에서 율법이 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과(5:13, 20; 4:15; 3:19)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율법의 기능으로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는 이미 5:20-21에서 밝힌 것처럼 율법이 드러낸 그 모든 죄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부으시고 이를 통해 죄와 사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시려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섭리임을 놓치면 안 된다.
 
*율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율법은 우리 속에 늘 있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선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바르게 가르쳐 주는 기능도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아무도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다. 오히려 죄가 율법을 활용하여 온갖 탐욕을 일으켰고 율법은 그것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사망으로 데리고 갔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죄악이 그것을 죽이는 것으로 변질 시키고 말았다. 이와같은 율법의 기능과 특징이 주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을 읽고 고상한 신앙을 소유했다는 것 만으로 죄의 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한다.
 
 
 
나는?
-율법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죄를 알게 하는 것이다. 내게 탐심이 있어도 “탐심하지 말라”는 계명을 듣지 못하면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계명을 들으면 자기 잘못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죄를 깨닫게 한 것만으로 율법이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사망을 가져다 주는 원인은 율법이 아니라 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 선고를 받게 된 책임을 율법에 묻지 말고 죄 짓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영적인 문제의 책임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정직하게 반응해야 한다.
 
-죄의 권세는 누구든지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를 노예로 삼는다. 그 죄가 율법을 사용하여 인간을 묶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노예로 삼는 것은 사람이 살 동안에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은 사람들이기에 더 이상 죄의 권세에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대신 치뤄 주셨으니 더는 죄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율법을 사용하여 옭아맸지만, 이제 더는 율법에게 이용당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새 시대를 열어 주셨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옛 시대의 율법은 그 자체로 폐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 시대가 완성 되었다. 죄는 율법을 이용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였지만, 죄에 대해 죽은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미 시효가 만료된 옛 것에 미련을 갖는 다면 다시 죄의 노예이던 삶으로 회귀한다.
 
-율법은 죄 짓게 만들지도, 거룩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한다. 율법은 철저히 중립적이다.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알려주고 거룩한 삶으로 생명에 이르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다만 거룩한 율법이 죄에 이용당하는 경우,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사망의 책임은 율법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죄에 있다. 그 죄를 허락한 나에게 있는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하난미을 제대로 알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율법이 있다고 저절로 거룩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율법을 지켜서 죄를 이기려하면 악순환에 빠질 뿐이다.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받아야 율법이 가진 본래의 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주님, 율법의 선한 기능이 죄를 만나 악용됨을 봅니다. 혹시 나에게 있는 말씀이 죄성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주님, 죄를 선명하게 자각하게 하여 죄를 경계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죄를 배척하도록 도움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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