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베레스 웃사 vs 오벧에돔, 나름대로 vs 말씀대로 [삼하 6:1-11]
 – 2022년 09월 27일
– 2022년 09월 27일 –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점점 강하여 지는 나라를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과 더욱 늘 함께 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알레유다”에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심하여 실행한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옮기지만 소가 날뛰는 바람에 흔들리는 궤를 웃사가 붙잡았고, 하나님께서는 웃사를 치심으로 죽는다. 흥겹게 시작한 일이 침울함으로 중단되었다. 이 일은 자기 열심과 열정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무엇이 문제 였을까?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루살렘을 온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지 임과 동시에 여호와 신앙의 중심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는 엘리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한 후 빼앗겼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돌려보내져서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안치되어 있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승리 이후 다시 삼만명의 무리를 뽑아 이 일을 실행하였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 삼만명을 모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궤를 옮기는 축제의 현장에 블레셋이 다시 올라와서 일을 망치지 않도록 선제적인 조치까지 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윗의 입장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행사 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가 뛰는 바람에 웃사가 궤를 손으로 잡았고이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이는 하나님께서 궤를 롬길 때는 반드시 제사장의 어깨에 메고 옮기라는 명령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궤를 다른 우상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었던 새 수레에 싣고 움직였다. 이것부터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단순한 불순종의 범주가 아닌 생명과도 직결된 일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말씀대로” 지키기 위한 애씀과 수고가 나에게 여전할까?



하나님의 궤는 삼상 6:1-7:2에서 기록된 대로 버려진 기랏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 동안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고 연이어 블레셋을 격파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책임을 지려 했던 계획이 웃사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는 아무리 선한 의도이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확신하여도 그 시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해 보려는 시도라면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웃사와 비교되는 오벧에돔의 집을 다윗이 보게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내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신다. 웃사는 비극적으로 죽었지만 오벧에돔과 그 가족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았다. 놀라운 점은 궤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가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복을 받았다.

*즉 오벧에돔의 집은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해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기에 복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선한 의도일지라도 하나님이 정한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시도하는 모든 일을 거부하신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웃사가 저지른 일은 오히려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가혹하게 하나님께서 처벌하신 듯 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웃사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정한 궤를 이동하는 방법을 무시하고 임의로 자기들이 편리한 방법, 혹은 주변에서 우상을 이동할 때 사용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이동한 것부터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엄중하게 경고하셨던 절대 만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행동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이스라엘은 여전히 사사시대의 잔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연스럽게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다윗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의도가 어떤 것인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하나님의 ㅇ미재를 사모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집에 두려는 갈망도 분명히 있었다. 무엇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전쟁에서 승리하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했고 “나름대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궤를 옮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름대로”가 문제였다. 아무리 최선과 최고의 나름대로 준비하였어도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옮겼어야 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다면 궤를 옮기는 방법도 “나름대로”가 아니라 “말씀대로”였어야 했다.

*다윗은 목적은 선하였지만, 과정은 인간적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추구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비극적인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온 이스라엘이 무지했던지… 아미나답과 그 두 아들도, 다윗도, 그리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들도 어느 누구도 궤를 옮기는 모습을 보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인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궤의 네 고리에 채를 꿰어 어깨에 메고 옮겨야”하는 법칙을 몰랐다.

*아무리 깨끗한 새 수레여도(3절),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 아니면 기뻐하시지 않는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구구절절 안타까워 하며 읊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다윗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새번역_삼상 15:22)



나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되돌아 보게 한다. “내 생각대로, 내 나름대로” 행동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내야 한다. 내 뜻대로 사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인생이란 어떤 모습일까? 오벧에돔의 집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윗은 너무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을 중단하고 웃사가 죽은 곳의 근처에 오벧에돔의 집에 임시로 두게 하였다.

-석 달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모셨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복을 내려 주셨다(11절). 왜 그러셨을까? 일단 오벧에돔은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다(대상 26:1-5). 하지만 단지 혈통으로만 왜 복을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석 달을 궤와 함께 있으면서 이스라엘 안에 소문이 날 정도로 복을 받았고(12절), 이 소식을 다윗이 듣고 “제대로 궤를 옮겨서 반드시 예루살렘에 두어야 겠다”는 것과 같은 마음을 먹을 정도로 확연하게 복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더 나아가 다윗은 오벧에돔을 훗날 솔로몬이 완공할 성전에서 봉사할 직무와 담당자들을 세우면서 “성전의 문지기”로 그를 세운다(대상 15:24-25). 이 정도로 다윗의 뇌리에는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가 머문 석 달 동안의 복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믿음은 나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한다. 스스로 저주로 걸어가는 신앙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대로의 신앙은 세상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한다.

*어느 편을 결정할 것인가? “나름대로 vs 말씀대로”…. 당연히 “말씀대로”이다!



*주님, 주님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 보다,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에서 벗어난 열심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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