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의 특권 [롬 8:1-17]
 – 2023년 06월 10일
– 2023년 06월 10일 –
8장은 6-7장의 논의에 따라 5장의 내용을 재정리한다. 1-11절은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기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선포한다. 5:12-21의 새 생명을 정리한 것이다. 12-17절은 이러한 생명의 삶이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임을 설명한다.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성령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면 온전한 상속자가 된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면 안된다.
 
한편 7장이 옛 시대의 삶이라면 8장은 새 시대에 속한 삶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은 새 사람은 성령의 도움으로 육에 속한 삶을 벗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삶을 살 수 있다. 7장에서 주로 사용된 단어는 “율법”과 그 동의어들이었지만(23회 사용), 8장에서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열 아홉번 반복되어 사용된다. 큰 흐름에서 율법의 연약함과 성령의 권능을 대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령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켜주신 분이며(2절), 종말의 부활과 영원한 영광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시다(11, 17, 23절).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성령 안에서의 삶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성령에 의해 활기를 띠고 유지되며 성령의 지시를 받아 풍성하게 되는 삶을 누린다. 성령꼐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8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절대적인 안전을 진술한다. 무엇보다 성령을 소유한다는 것은 진실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보증해 주는 특징이다(9절). 그리고 성령의 내적인 증거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의 상속자임을 확인시켜 준다(15-17절). 1-17절은 성령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역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을 해방시키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성화 시키며 인도하며 부활에 동참하도록 하는 사역까지 묘사한다.
 
 
 
1.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1절)
5장에서 율법은 정죄의 기능과 죄를 죄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죄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한다.
 
“에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바울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아난 것과 세례를 통한 연합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설명했다. 바울은 갈 2:15-16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표현을 정확하게 사용했을 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믿음의 법에서(3:21-26)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 그 역사에서 출발한다. “예수 안에서”라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순종의 역사, 성령의 어김없는 적용하심의 은혜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믿음의 법으로 인해 불의한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고 생명을 얻어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섬기는 자로 거듭났기에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면 아직이며 의의 종으로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6:15-23).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로운 새 백성이 된 방법과 원리, 그리고 상태를 8:2-39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2.정죄함이 없는 이유(2절)
정죄함이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 에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믿음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율법, 행위 보응의 원리)에서 우리를 해방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여겼지만, 바울은 믿음의 법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생명의 법이 율법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위해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표현했다.
 
의롭게 됨의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은 하나님의 계획, 예수님의 순종(실천), 그리고 성령의 적용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게하고 믿게 하는 역할과 동시에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갈 능력을 주시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표현하여 구원의 과정을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전에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던 우리를 죄에서 해방되어 의인으로 살게 하신다. 더 이상 정죄의 법 아래 종노릇 하지 않고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예수 안에”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의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나타나 으인(새 사람, 새 백성)을 만들었고 예수님의 피와 믿음과 대속하심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고 의의 열매를 맺어 가는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3.믿음의 법 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자로(3-11절)
율법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이 결코 순종할 수 없었기에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법을 통해 더 이상 율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자로 이끄신다.
 
우리 스스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종노릇하지 않고 거룩한 주의 말씀과 통치에 순종하는 자로 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자로 서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은혜를 구하여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법을 세우시고 사용하신 것이다.
 
율법의 요구는 결국 율법의 완성인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정신)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다(마 22:37-40). 이와 같은 율법의 요구는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실천하셨으며 성령님께서 적용하여 주시는 믿음의 법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욕심을 이루는 일을, 성령을 따른느 자는 성령의 일 곧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 결국 육신을 따르면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고, 영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5-6절).
 
또한 육신의 생각은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할 수도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7-8절).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선포한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내주하면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망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 곧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죽을 몸도 살리신다(9-11절).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이 우리 앞에 있다. 육에 속한 생각을 따라 사는 삶과 영에 속한 생각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 생각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바울은 12장에 가서 복음이 이 마음을 새롭게 창조한다고 설명한다(12:2). 죄와 사망 아래 있던 인간은 우상을 의지하며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따르는 하나님의 원수였다. 이로 인해 사망과 불안 속에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 있던 우리를 예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심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셔서 생명과 평안 가운데 살고, 장차 예수임이 입으신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존재로 부르시고 세워 주셨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와 같은 믿음의 법과 은혜를 누리며 산다.
 
 
 
4.그러므로 우리는(12-17절)
예수님께서 우리가 성령을 따라 생명을 누리도록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으니 이제는 더욱 육의 방식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등지며 살면 안 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더 이상 사망에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살게 하셨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육의 방식이 아니라 장차 영광을 상속받을 하나님의 양자답게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육의 방식이 죄에 종노릇하는 것이라면 생명의 성령의 방식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사랑하는 것,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삶을 살아내려면, 내 안의 욕심과 몸의 행실을 경계하고 구별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묵상이다.
 
*묵상은 날마다 말씀으로 마음의 생각을 소욕과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채우고 이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길과 능력을 얻는 통로이다. 성령께서 우리안에서 말씀을 깨닫고 이에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신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신다는 (16절) 것은 말씀을 통해 말씀을 따라 살아내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을 순종하는 모습인 것을 짐작케 한다. 바울은 이 근거로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끌고(14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을 자유함으로 바꾸며(15절), 기도의 영역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이끄시며(15-16절),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유업의 첫 열매인 것을 알게 하신(17절) 것으로 증거한다.
 
*거룩함, 자유함, 기도, 영광의 소망(부활)은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계시고 그 영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분명한 증거이다.
 
 
 
나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가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 아침이다. 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음을 드러내는 “예수 안에서”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증거인 거룩함, 자유함, 기도, 영광의 소망을 누리는 오늘이기를 소망한다.
 
-스스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의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 주신 말씀 속에서 성령께 주시는 깨달음과 힘을 의지하여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을 율법의 요구,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리라.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생각을 분별하여 성령꼐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걸음이리라.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내가 순종하며 걸어가는 신앙의 길이 하나님의 법 아래 있는 지,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육신의 정욕을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전부인양 가르친 영향에 왜곡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축복인 “하나님의 의”로 인한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는 것을 감사와 찬송의 고백들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를 분별하기 위해 말씀을 아는 것으로 영적 분별력을 얻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하게 아는 믿음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의 가치가 고스란히 점검되어지는 아침이다. 말씀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주님,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을 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 속에서 지켜내겠습니다.
*주님, 생명의 성령의 법을 충실하게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거룩함, 자유함, 기도, 영광의 소망이 내 안에서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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