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복음이 주는 소망 [롬 8:18-30]
 – 2023년 06월 11일
– 2023년 06월 11일 –
7장이 옛 시대에 속한 삶을 설명한 것이라면, 8장은 새 시대에 속한 삶을 설명한다. 특히 17절은 이렇게 밝힌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밝힌다. 본문은 새 시대, 새 백성의 고난과 영광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밝혀준다.
 
8장 1-17까지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공동체, 즉 교회와 함께 사는 것임을 밝혔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을 번갈아 가며 등자하고 “같이, 함께”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하나도니 공동체가 인간 공동체와 같이 가는 모습, 같이 증언하고, 공동으로 상속받고, 함께 고난받고, 함께 영광 받고, 함께 신음하며, 협력하고, 결국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 그 모습이 바울이 그리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광으로 가는 길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 길임을 밝힌 것이다.
 
18-25절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밝힌다. 그렇지만 그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밝힌다. “현재적인 고난과 미래적인 영광”을 대비한다. 18절에서 “영광”으로 시작하여 30절에서 “영화(영광)”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통해 본문이 미래적 구원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5:2-4에서 이미 밝힌 내용이다.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므로 하나의 자녀들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는 날을 고대하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내야 한다. 지금 피조물도 탄식하면서 그 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복음이 주는 소망은 무엇인가?
 
1.고난중에 영광을 바라보게 한다(18-27절)
고난과 영광은 본문의 전체에 걸쳐 다루는 주제이다. 19-22절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받는 고난과 영광을,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고난과 영광이(23-27절) 이어진다. 이를 통해 살필 수 있는 것은 고난과 영광은 분리될 수 없다.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17절). 고난과 영광은 현재와 미래의 두 시대의 특징이다. 이 시대와 앞으로 올 시대가 고난과 영광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고난과 영광은 비교될 수 없다. 바울은 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고후 4:17에서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장엄함은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의 불쾌함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이 고난은 피조물과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모두 현재 고난을 당하며 탄식하고 있다. 그런데 둘 다 함께 자유롭게 될 것이다. 자연이 인간과 함께 저주를 받은 것처럼(창 3:17) 영광도 함께 받을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19절) 한 것이다.
 
고난의 때를 지나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성령께서 도우신다. 피조물과 인간이 모두 탄식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고난을 딛고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도록 기도의 영역에서 역사하신다. 26절을 읽어보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는 기도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아스데네이아_약함, 질병, 겁, 소심, 마음 약함)을 도우신다.
 
또 기도의 영역에서 우리의 무지도 도우신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의 수준이지만, 성령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신다.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는” 것이다. 이 간구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혹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깊은 한숨으로” 해 주신다. 좀 더 분명한 번역은 “말로 나타나지 않는 탄식”이다. 성령께서는 세상과 교회의 고통(탄식)에 동참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의 탄식에 함께 동참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령은 무의미한 탄식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27절은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고 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신다.
 
바울을 통해 우리의 기도가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 줄 모르는 우리와 우리를 위한 말 없는 탄식과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여 주시는 성령님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성령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응답하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중에서 성령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 하신다.
 
 
 
2.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절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본문중의 하나이다.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을 매우 좋아했다. 먼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22절의 “우리가 아느니라”와 동일하다. 개역개정은 번역이 문장의 제일 뒤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먼저 등장한다. 복음으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탄식하는 피조물에 대해 알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28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선언한다. 첫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번역은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직역하면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의 선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문장이 된다. 삶의 모든 배후를 책임 지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신다. 둘째, 자신의 백성들의 선을 위하여 일하신다(29-30절). 셋째,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우리의 선을 위해 일하신다. 영어 번역본 번역은 ‘하나님이 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일하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선을 위해 일하신다’로 이해한다. 이것은 17절과 23절의 모든 탄식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선을 위해 일하신다.
 
바울은 결국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선에 이른다는 피상적인 낙관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선”이 우리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 대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묘사된 그의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 이와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어서 구원의 여정에서 흔들림 없이 이끌어 가신 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선을 위해 일하시고 계신다. 성경은 곳곳에서 이와같은 사실을 증거한다. 구체적으로 요셉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요셉은 형제들이 잔인하게 자신을 애굽에 팔아 넘긴 것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러나 더욱 궁극적인 하나님의 선을 위한 일하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선을 이루시기 위해 행하셨다.
 
바울은 29-30절에서 28절의 의미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그는 선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그분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어 다가오는 영광에 이르기까지 각각,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으로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이토록 하나님의 치열한 이끄심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복음이 주는 소망을 지키기 위해 고난 중에서 우리가 기도를 잊어버림직한 상황에서도 성령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심으로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신다.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은 하나님의 이와같은 치열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사랑의 증거이다. 복음이 주는 소망인 고난중에서도 연약한 우리를 위해 성령의 포기하지 않는 기도 가운데서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여 영광의 날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 가보자.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확신합니다.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끝없는 사랑에 화답하며 더욱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담대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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