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주권, 약속과 선택 긍휼을 힘입어 [롬 9:1-18]
 – 2023년 06월 13일
– 2023년 06월 13일 –
바울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기셨는가 하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이스라엘의 지위를 인정하지만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이 약속의 자녀들을 결정하셨다는 것을 깨우친다.
 
유대인들에 대한 언급은 이미 2:17-29과 3:1-8에서 다루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언약의 성취와 구원을 이루었음에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특히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약속을 스스로 폐하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언약적 의로우심(1:17; 3:25-26)과 신실하심(3:3)에 대하여 확고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바울은 9장부터 11장까지 유대인들의 현재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을 재조명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 지지 않는다는(6절) 말씀을 유대인들의 상황 속에서 증명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여 설명하면서 역사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바울은 9-11장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바울은 먼저 1-5절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자신의 근심을 말한다. 자기 안에 큰 슬픔과 고통이 있는 점을 언급하고(1-2절), 그 근심의 내용이 바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4-5절). 그들을 위해서 라면 자기가 저주를 달게 받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3절). 이어 바울은 6-12절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으로 되는 참 이스라엘에 대해 설명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된 모습이 곧 하나님의 약속의 폐기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6a절).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6b절), 약속과 선택으로 참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이다(7-12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약속으로 난 자이고(7-9절), 에서와 야곱 중 야곱이 선택으로 상속자 된 것을 예로 든다(10-13절). 14-18절은 이런 주장에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을 다룬다. 마음대로 결정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지 않느냐 라고 묻고(14절),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들며 하나님이 불의하지 않다고 답한다(15-18절). *에스라/이진섭 교수님의 요약
 
 
 
1.이스라엘인 유대인(1-5절)
바울은 유대인 동족들로 인한 마음의 근심과 고통을 토로한다. “내가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한다”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여기에 자신의 양심의 증언을 내세운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한다고(1-2절) 했다.  심지어 유대인 동족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도 감수 하겠다고 했다(3절). 이만큼 바울의 유대인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받았던 구속사적인 혜택들을 열거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먼저 부른다.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는 ‘유대인’이 외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양자”, “영광”, “언약들”, “율법”, “예배와 약속들” 이라는 술어들은 이 언약의 중요한 내용들이다. 특히 가장 먼저 언급한 “양자됨”은 열방 가운데서 “맏아들”로서 하나님 자녀의 지위와 특권을 소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종말의 더 궁극적인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는 민족이다.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과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소유한 민족이었다. 이 관계는 율법 속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을 상징하였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언약의 하나님을 “예배”를 통해 경외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언약의 “약속들”로 응답하셨다. 더구나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이 유대인들의 조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도 그들의 혈통에서 나셨다.
 
*바울은 과거 유대인들 하나님으로부터 누렸던 이러한 지위와 특권을 기억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영광으로 유지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절감한다. 한때 이런 존재들었던 유대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답답함이 오죽할까?
 
 
 
2.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 지지 않았다(6-13절)
9-11장을 통틀어 가장 핵심구절은 6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새번역)
 
이스라엘에게 언약들과 율법을 주신 것과(4절) 3:2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고 언급한 부분을 통칭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했다. 바울은 단호하게 “그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 되지 못하고)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고 외친 것이다. 롬 3-4장의 설명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유대인 모두가 아닌 예수 한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되고 열방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구속사적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새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진 지금 유대인들이 그 성취의 수혜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의 통로”는 커녕, 새 언약의 백성도 아니라는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이 일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육신적인 이스라엘이 모두 이스라엘이 아니다”는 것을 는증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창 21:12을 인용한다. 청 2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말씀 하신다. 이삭으로부터 난 자가 아브라함의 씨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다(7절 상)”는 그의 논리의 출발점이 된다. 이를 토대로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에팡겔리아)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씨)다(8절)”는 명제를 이끌어 낸다. 이미 4장에서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 약속(에팡겔리아)의 자녀라는 주장을 펼쳤었다.
 
9-13절은 아브라함 가족의 출생사를 “약속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택하심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음을 설명한다. 사라는 바랄 수 없는 중에 이삭을 약속으로 받았고(9절), 리브가도 임신 중에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창 25:23)’는 약속과 선택의 말씀을 받았다(12절). 바울은 이를 재해석란 말라기의 말씀을(말 1:2-3) 인용하여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13절)”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야곱과 에서의 선행이나 악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약속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었음을 일깨운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은 “행함이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11절)”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자녀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진리는 이미 이스라엘의 시초에서부터 증거되고 있었음을 일깨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폐하여 지지 않았다.
 
 
 
3.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14-18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자녀를 부르시는 것이 불공정한 것인가?(14절)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하여 출 33:19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새번역 15절_출 33:19)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기준은 인간의 원함이나 노력에(달음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신에 결정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결정은 누구를 완악하게 하실 것인지도 해당된다. 바로를 악하게하여 이름이 알려지게 한것도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17절).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하여 바울은 18절을 통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새번역)라고 갈무리한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지금, 대부분의 유대인이 새 언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은 약속의 자녀들로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족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이탈되고 있음을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힘이 된다.
 
 
 
나는?
-동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바울의 마음이 애잔하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고 있지 않는 완악함 때문에 슬퍼한다. 근심이 되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우리 민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며 기도했을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을까?
 
-유대인의 구원의 희미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언약)이 폐기 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혈통이면 모두 저절로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야곱(이스라엘)의 후손이 선택을 받았듯이 혈통과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의롭게 된 것이다. 
 
-야곱이 언약의 후손이 된 것에 이삭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리브가의 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정하셨기 때문에 야곱이 언약의 후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예는 지금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부분 메시아를 거절하였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약속의 말씀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혈통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기 떄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주권)은 의롭거나 불의하거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다. 황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을 즉시 처형하지 않고 용서하신 것은 주님의 의지셨다. 완악한 바로를 그대로 두어 그의 악행을 통해 이스라엘과 열방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도 주님의 의지이시다.
 
 
*긍휼의 대상이냐 심판의 대상이냐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불공평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갖은 축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사명을 외면하고 스스로 부여한 특권 놀음에 빠졌다. 바울이 보기에 자기 조상 이스라엘이 걸었던 멸망의 길을 밟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시각과 판단에 따라 평가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열심을 내어 신실하게 성취하신다. 그 과정에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과정을 결론 삼아서는 안된다. 특정 시대를 규정하는 사상과 체계에 종속되어도 안 된다. 이런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은 반드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 가신다.
 
 
 
 
*주님, 약속의 말씀이 폐하여 지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말씀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약속도 반드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주권, 약속과 선택 긍휼을 따라 오늘 제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더욱 감사하며 겸손하게 이 은혜를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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