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바른 해석과 가르침에의 순종이 바른 신앙을 세운다 [롬 10:5-13]
 – 2023년 06월 16일
– 2023년 06월 16일 –
약속과 선택에 의해 참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가 믿음의 법이 아닌 행위의 법을 따라 의를 얻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지식으로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것이 결국 자기 의를 드러내고 말았다고도 밝혔다. 본문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구약성경 해석(지식)에 대해 바른 해석을 제시한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의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을 향해 구원의 본질을 설명해 준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율법이 의와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의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해석하고 설명해 준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12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13절).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선교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선교는 누구도 예외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선교란 이 사실을 세상에 전하는 행위이고, 목회란 그 진실을 실천하는 일이며, 교회란 이를 진리로 믿는 이들의 모임이고, 신학이란 그 사실을 학문화 하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이 더 선명하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 공동체는 이와같은 말씀을 확고하게 순종하며 실천하고 있을까? 
 
 
바울은 모세가 율법을 통해 약속한 것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성취 되었음을 레위기 18:5과 신명기 30:12-14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없이 예수를 망므으로 믿고 신앙공동체 앞에서 공적으로 시인하면 의로움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해 준다.
 
 
 
1.바른 해석이 바른 신앙을(5-8절)
당시 유대인들은 레 18:, 신 30:12-14의 말씀을 근거로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을 통해 합 2:4과 함께 율법이 아닌 믿음의 법 곧 그리스도를 통해 의로움 곧 생명을 얻는 다고 바른 해석을 설명한다. 레 18:5, 신 30:12-14은 율법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표면적으로 읽으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율법은 규범, 기준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은 규범을 힘의 근원으로 오해하여 해석한 것이다.
 
바울은 10:4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의 목적과 마침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9:31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이 의로움을 줄 수 있는 줄 알고 율법 자체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진단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모습은 율법이 정작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 기능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을 드러낸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오해했다. 바울은 그들의 성경해석을 반대하기 위해 그릇된 해석의 예를 레 18:5을 인용하여 제시했다. 그들은 율법이 자신들을 살려주며 의롭게 한다고 판단했지만 레위기 본문을 장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율법보다 앞선 것은 “믿음”,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그것이 있어야 율법을 지킬 수 있고 그래야 의롭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뒷전에 두고 자신들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 의를 쟁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것도 그릇된 지식의 인도를 받으면 파국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바른 해석과 이에 따른 적용은 신앙의 내용과 결과를 좌우한다. 지나친 율법에 대한 신봉이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를 망각하게 하였고 율법 자체에 대한 수호에 집착하여 율법의 기능과 정신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의 성경에 대한 해석도 이와 같은 오류에 얼마든지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그런 뜻을 깨닫기 위한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의 은혜가 중요하다.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 바른 신앙을 낳는다. 바른 신앙이 건강한 신앙을 세운다.
 
*유대인들이 바른 해석을 하지 못해 메시아오 오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처럼, 오늘날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 아니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단사상과 거짓 복음에 물들게 되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말씀앞에서 언제나 “이것이 그러한가 하는” 바른 해석과 겸손한 믿음을 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2.바른 신앙의 기초(9-10절)
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입과 마음에 있다(신 30:14)”고 했다. 그 말씀으로 인해 입과 마음으로 시인하고 믿게 되오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새 이스라엘은 마음과 입으로 믿고 시인하여 구원과 의에 이른 백성이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메시아(그리스도)요 하나님으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새번역)”
 
*중요한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스스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법을 통해 불의한 우리에게 마음의 할례(믿음의 법을 믿게 하는)를 받게 하여 믿는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주신 것이다. 내가 스스로 고백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백하도록 마음에 말씀을 주셨고, 입과 마음으로 시인하게 하신 것이다.
 
*마음과 입으로 시안한다는 것은 값싼 영접기도와 같은 고백이 아니다. 믿음은 가치관이 변하는 것인데, 곧 우리의 삶의 주권이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이양되는 것을 가리킨다. 나의 실존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달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의 삶의 방식과 방향과 내용을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 마음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3.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바른 신앙으로(11-13절)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헬라인)이나 차별없이 나타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을 얻게 하시되 풍성히 주셔서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요하게 하신다. 선민의식에 젖어 있어 율법을 지키는 일보다 율법을 소유하는 일을 더 추구하여 이에서 안정감을 얻으려 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일상에서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은혜의 기회를 열어 주셨음에도 그들이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자 새 이스라엘로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지적하는 바울이다. 이를 위해 구약성경들을(사 28:16; 49:23b; 욜 2:26-27, 32) 언급하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이 유대인나 헬라인이 차별없이 누구든지 열려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11절에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언급한 말씀은 사 26:16하, 사 49:23하 말씀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 인용된 말씀이 가리키는 것이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거치는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구원의 대상은 유대인 뿐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열려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참 이스라엘이 약속과 선택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말했는데 여기서 동일한 믿음의 법에 대한 적용도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여기서 말하는 ‘주’ 곧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바울은 강조한다.
 
*그러므로 요엘 2:26-27의 말씀을 바탕에 두고 한 분이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 곧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언한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구원을 강조하며 인용된 요엘서의 하나님 여호와를 주 곧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적용한다. 중요한 믿음의 내용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아) 곧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의 원리를 통해서 누가와 요한은 결국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는 바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자리에 “율법”을 넣어서 결국 잘못된 믿음의 길로 가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결국은 믿음의 법이 아닌 행위의 법(의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을 따라 의에 이르지도 못하고 잘못된 믿음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며 자기 의를 세우다 망하게 된 것이다.
 
 
 
나는?
-누그든지 믿음의 법을 통해 구원의 길은 열려 있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을 통해서다. 이 원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의를 따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긍휼함심을 덧입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잊으면 안된다.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들과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말씀과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본문을 통해 또 깨닫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중심이심을, 모든 사람의 주되심을 결코 왜곡해서는 안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성경을 오해하여 바른 해석을 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참혹하다.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받은 나에게 매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잘못된 해석이 가져온 자기 고집(의)의 결과였다. 나는 어떠한가?
 
*율법보다 앞선 것이 “믿음”임을 구약성경이 증거하고 있지만, 그 진의를 바라보지 못한 것이 결국 새 이스라엘에 들어가지 목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믿음이 있어야 율법을 지킬 수 있음을, 그래야 의롭게 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자기 열심과 의로 율법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는 오만과 교만으로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자기 율법을 만들어 맹신하여 멸망에 이른 그들이 나의 절실한 거울이 되어야 하겠다.
 
*선한 의도로 성경을 해석했을 지라도 그것이 바른 해석이 아닌 그릇된 해석과 지식으로 남았을 때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매 예배 시간 마다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정교하고 바르게, 그리고 치밀하고 치열하게 해석하여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될 것을 깨닫는다.
 
 
 
*주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도록 간절함과 절실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주님, 적어도 저와 함께 하는 더온누리공동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과 입에 “올바르게” 해석하여 놓아두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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