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미 전해진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롬 10:14-21]
 – 2023년 06월 17일
– 2023년 06월 17일 –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종말적 소명에 대해, 그 복음에 대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상반된 반응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유대인에게도 그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을 다하시는 분이시다. 본문을 포함한 10:5-21의 내용은  구약 성경을 다수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로마서를 통틀어 가장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단락이다. 구약의 중요한 구절을 불러와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과 복음에 대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상반된 반응 속에  이 구절들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복음 전하는 자와 듣는 자의 중요성(14-17절), 이스라엘의 실패(19-21절)에 대해 다룬다. 이스라엘이 듣지 못한 것(18절)과 이해하지 못한 것(19-21절)을 설명한다.
 
 
 
1.복음 전하는 자와 듣는 자의 중요성(14-17절)
구원 과정에서 하나님 주권과 관련된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는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 부분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면 사람의 죄에 대해서도 그분이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죄는 오롯이 사람의 책임인가? 만일 사람의 책임이라면 이 경우 하나님의 주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스라엘은 현재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은혜, 곧 언약 관계에 대한 신실함과 언약 백성을 향한 사랑이 담긴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의 약속의 성취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믿음에 근거한 의를 거절하고 옛 언약 안에서 율법에서 난 의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은 유대인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논리가 성립하려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가 담긴 복음을 들었는가의 유무에 있다. 그들이 듣지 못했으면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의 현 상태도 그들의 잘못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바울은 복음의 증거 과정을 설명해 준다. 바울은 믿음을 복음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설명한다(14절). 그러나 그 말씀을 듣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사 52:7)’이다(15절). 특히 15절에서 좋은 소식(유앙겔리조), 복음을 전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을 “평화와 구원의 선포”,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다스림의 개념을 언급하고 있음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죄와 사망의 통치 아래에 놓여 있던 인간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면서 평화가 임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평화와 구원의 약속이 성취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소식’이 분명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통해 실현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증명한다.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보내셨다는 점도 강조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시작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종말의 약속들이 성취되었다.
 
*16절은 하나님의 종말적인 약속들에 대한 성취로서의 복음에 대한 반응에 대해 “모두가 그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복음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할 때 그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가 아들을 희생하시기 까지 죄인들에 대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준비해 주신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13절).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예수님의 복음을 들려주시고 들을 수 있게 전파하는 자를 보내 주신다. 이는 내가 구원을 얻은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준비 속에 이뤄진 일임을 늘 감사해야 한다.
 
 
 
2.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 설명(18-21절)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불순종했는지를 묻는다. 바울은 이를 강력하게 부정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편 19:4을 인용한다. 시편 19편은 하늘과 궁창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하신 일을 선포하고 낮과 밤이 그에 관한 지식을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바울은 “소리와 말씀”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소식과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님은 무책임하게 이스라엘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약속을 어기고 변심한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도 불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은 종일토록 손을 벌렸지만 그들이 외면하였다. 대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인정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받아들이심으로서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하기로 하셨다.
 
이로 보건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관심과 기다림의 대상인 것을 밝히 드러낸다.
 
*20-21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메세지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은 찾지 아니한 자들을 만나 주시고 구하지 아니한 자드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신다(20절).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에게는 종일 손을 벌려 기다리신다(21절).
 
 
 
나는?
-이스라엘의 문제는 진리의 말씀을 오래전부터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불순종했음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보여준다. 복음이 이미 전파 되었지만 순종하지 않았음이 초점이다.
 
-말씀이 전파 되었으나 불순종했고(14-16절), 지식이 전파 되었으나 역시 불순종했다(17-21절)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지속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것처럼 그들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있었음에도 듣지 않았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들었음에도 믿지 않았다. 못들은 것이 아니라 안들은 것이다. 귀로는 들었을지 모르나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다시금 깨닫지만,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인적인 순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일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이와같은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미 복음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들려주시지 않고 순종의 믿음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시는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로마 황제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믿음이다.
 
-어찌 듣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 복음은 온 땅에 퍼졌고 땅 끝까지 이르렀는데 어찌 핑계할 수 있을까?
 
*모세를 통해서도 복음을 전해 주셨다. 유대인들은 알고도 순종하지 않았고 급기야 ‘내 백성이 아닌 자’, ‘미련한 자’ 등과 같은 이방인들을 통해서 시기 나게 하고 노엽게 하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구원하려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데 주님은 만나주시고 구하지 않는데 나타나주셨다. 유대인들은 복종하지 않고 거역했으나 그 모욕을 다 당하면서도 온종일 손을 내밀며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이와 같이 한 없는 사랑이셨다.
 
 
 
*주님, 유대인들의 핑계를 따르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들려 주실 때, 혹은 알려 주실 때 유대인들의 전철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온전하게 보고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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