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롬 14:13-23]
 – 2023년 06월 25일
– 2023년 06월 25일 –
14장은 로마 교회 내부에서 음식 문제와 절기(날) 문제로 빚어진 갈등을 다룬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음식법이나 안식법과 같은 율법 규례의 효력을 고집하였고 이것들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과 사회적인 마찰을 빚었다.
 
14장 2절에서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채소만 먹는 연약한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 사이의 갈등을 확인해 준다.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된 이들일 수 있는 채소만 먹는 이들은 어떤 특정한 날을 중요하게 여겼고(5절) 채소를 고집하고 고기와 포도주는 먹지 않았다(21절).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채식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고기를 거부한 이들이 꼭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대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고기와 포도주를 거부한 것은 클라우디오 황제 칙령 해제 이후 로마로 돌아와 접한 사회적인 환경 때문이었다. 추방 되기전 유대인들은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면서 제의적으로 정결한 고기와 포도주를 구하는 유통 경로를 확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5년여의 공백기 후에 추방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전의 유통 경로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우상에게 바쳐진 후 유통되는 모든 고기와 포도주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제의적으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가리고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유대인들을 구분해 주는 외적 표지였다. 그렇기에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유대인 가운데에서도 이런 표지들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들”(1절) 이라고 부른다. 본문에서 연약함이란 “복음 자체보다, 관습을 고집하는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14장에서 주로 권면하는 대상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연약한 자를 업신여겼다. 교회의 일치를 깨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들이 일으킨 갈등,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1.연약한 형제를 배려하라(13-15절)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13절) 사랑의 원리로 대하라고(15절) 주문한다. 로마 교회 환경은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정결법 준수를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관습을 지키는 것이 무익하다고 주장하며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믿음이 강한 형제는 약한 형제를 정죄하여 그들의 믿음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신앙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크게 벗어난 가르침이 아니라면 각자 분량만큼, 지식만큼, 하나님께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형제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여 자기를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헛되게 하는 일이다.
 
 
 
2.세상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라(16-18절)
바울은 로마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가지는 외적인 파장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16절의 선한 것은 선한 행동이나 선한 삶을 의미한다. 로마교회의 내부의 분열과 마찰로 인해서 그간 그들이 살아온 선한 행동과 삶이 비방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 선한 것이 복음을 비롯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무언가라고 한다면 “복음, 곧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한 것들이 “모독”을 다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도 된다.
 
음식과 날 준수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일은 선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여 공동체가 분열되고 지체가 상처를 입게 된다면 비방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기쁨이다. 그런 것을 훼손하면서까지 구원과 상관 없는 일에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태도 역시 가짜 평강이지만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의로움은 아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기쁨이 없다.
 
 
 
3.교회의 화평과 덕을 세우라(19-23절)
갈등을 넘어서 화평과 덕을 세우라고 권면한다(19절).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다른 번역들은 “평화에 속한 일들, 평화를 만들어 가는 일들”을 추구하라고 명령한다. “에이레네”는 개인의 내면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는 상호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또 서로에게 덕을 세우는 일을 도모하라고 요청한다. “덕을 세우다”라고 번역된 “오이코도메”의 원 의미는 “집을 세운다”라는 의미다. 공동체를 세워 가는 일을 집 짓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로를 비판하면서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없고 공동체가 세워질 수 없으므로,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집을 세워 나가는 것 처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서로 양보하며 공동체를 지어 나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비본질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나는?
*신앙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믿음에 근거한 확신이 필요하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정되거나, 성경이 부정되거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시도 되는 등, 핵심적인 믿음의 문제를 사랑의 이름으로 타협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이 아닌 것들에 관하여는 사랑이 기본이며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믿음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핑계할 수 없다. 믿음은 우리 자신의 양심을 지도하며, 사랑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한다. 믿음은 자유를 주며, 사랑은 그 자유를 제어한다.
 
*17세기 마르코 안토니오 도미니스 대주교가 한 이후로 유명한 문구가 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자비를(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in omnes charitas)
 
*다름을 틀림으로 왜곡 인식하면 안된다. 다름은 판단과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포용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원리를 따라 믿음의 법으로 행하여야 한다.
 
 
*주일 예배를 인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또 구했다. 갈등의 상황은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이기에 자칫 자기 주관대로 들으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각자가 들으셨으리라 믿고 싶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각자의 수준이 다를 뿐이지만, 모두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을 다하기 때문에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내 자신도 역시 성도들마다 각기 다른 상황을 더 주님의 마음으로 살펴보고 내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여 사랑하며 받아들여야 하겠다. 율법의 법규로 삶을 변화 시킬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하다. 이를 믿고 실천해야지…
 
 
 
*주님,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 구원의 진리가 아닌 비본질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펴보고 감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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