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로마교회에게는 다시 생각나게 하는 복음을, 땅끝까지 더욱 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롬 15:14-21]
 – 2023년 06월 27일
– 2023년 06월 27일 –
로마서 편지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은 그의 사도적 정체성과 그간의 선교사역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아울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는 사역하지 않는다는 그의 선교 원칙을 소개한다.
 
 
 
1.로마 교회를 향한 신뢰(14절)
바울은 자신이 가진 로마 교회에 대한 마음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이미 1:18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었다.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는 그들이 “선함으로 가득한 것”과 “모든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서로에게 조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 마음에 선함이 가득하고, 온갖 지식이 넘쳐서, 서로 권면할 능력이 있음을 확신합니다.(새번역_14절)”
 
‘선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외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듯하고, 8:1-8에서 밝힌 것과 같이 성령과 동행하면서 누리는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삶이다. ‘지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 분명하고 구속사의 여정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지식, 즉 복음’을 의미한다. 로마 교회에 보내는 이 서신를 통해서도 이 지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조언할 수 있는 능력’은 12:3-8에서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밝혔고, 앞 단락까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붙잡고 있으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지체들을 품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로 굳건히 세워 갈 수 있음을 환기 시키고 있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이렇게 서 나가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례적인 일이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어색하지 않게 듣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지식이 가득 차서 서로 권하면 산다는 소식이 너무도 감사했다. 하지만 그저 교회의 좋은 소식을 듣고 만족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신실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
 
*바울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도전을 던진다. 분위기와 환경이 좋으니 자연히 복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이려니 생각할 수 있는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로마 교회 안에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 있으며, 서로 권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식으로 듣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그이 가치와 태도가 도전된다.
 
*그렇다. 교회에 오히려 더욱 더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으로 살아내고 있는 공동체이겠지만, 그렇기에 삶을 온전케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더욱 더 필요하다. 나도 더온누리 공동체를 향하여 더욱 더 복음을 전하고 흘러 보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아야 하겠다.
 
 
 
2.바울의 이방인 선교와 향후 계획(15-21절)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견을 더욱 선명하게 피력한다. “오히려 담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14-15절).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16절에서는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 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을 제의적 의미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으로도 소개한다. 그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받음직하고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16절). 이방인이라는 제물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새 언약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을 통해 이미 예언 되었었다.
 
17-19절은 바울이 자신의 지난 선교 여정을 되돌아 본다. 자신의 여정을 소개할 때 철저하게 “그리스도 예수”를 앞세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한다(17절)”,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18절)”이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사역의 여정을 이끄신 목적을 “이방인들이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18절)”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울은 복음 전파의 목적을 언급하는 구절에서는 예외 없이 “이방인들이 순종에 이르는 것”을 명시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구원 이후 당연히 이루어 져야 할 “행함의 도리” 즉 “순종”도 강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말과 행동,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일하셨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18-19절). 이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의 지역(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안디옥과 소아시아 지방을 거쳐 마게도니아 지방과 인접한 일루리곤 지역까지에 이르는 사역을 마무리하고 이제 로마를 거쳐 땅끝(스페인)까지의 사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2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쓴다고 그의 선교 원칙을 소개한다. “힘썼다(20절)”는 말의 의미는 “어떤 야망을 가지다, 애쓰다” 혹은 “무언가를 명예롭게 여기다”라는 의미가 있다. 바울 나름대로의 선교 원칙에 담겨 있는 그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로마 교회에 복음이 기록된 편지를 이미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급적 이미 복음으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잘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역에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에는 이미 그 당시에 수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바울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럼에도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기 위해서(20절)”라는 목적절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복음 전파의 긴박성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재림하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언제나 품고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때가 이르기 전에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이방인이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적인 비전이었다.
 
특히 그의 선교적 비전을 이사야 52:15을 통해 재확인해 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⑨”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⑨사 52:15(칠십인역)” 바울의 이방인을 향한 사도로 부르심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부분은 롬 10:15에서 인용된 사 52:7(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사 49:6(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과 더불어 소명 구절로 알려져 있다. 바울의 이방인을 향한 선교 사명의 정체성은 이사야 49-52장의 말씀에 근거해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돕는 제사장으로 이해한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사는 새 백성이 되도록 돕는 자라는 뜻이다. 그것을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표현했다. 롬 12:1에서 하나님의 새 백성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곧 예배라고 했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그런 마음과 자세의 예배자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있었다.
 
*바울은 열심히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의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힘 있게 나아갔다.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많은 포적과 기사로 감당하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선교한 지역은 가지 않았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고수했다. 이처럼 로마교회가 자신을 도와 땅끝(스페인)을 향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를 소망하며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나는?
-바울은 로마 교회를 축복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컸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복음으로 든든히 서 나가기를 소망했다. 로마 교회는 들려오는 소식들 만으로 이미 선함과 지식과 서로 권면할 수 있는 능력이 가득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복음을 다시 서신으로 보낸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 이를 통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방면에서 잘 하고 있는 듯 보이는 교회라도 복음은 언제라도 들려져야 하고 복음의 삶을 지속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라고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다시 말씀으로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상황이나 외면의 모습이 곧 내면의 건강함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복음의 말씀, 복음의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복음 전파 역사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 “그리스도 우선”의 필력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것들이었다. 자신을 이방으로 사도로 불러 주신 것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되,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는 전하지 않았던 선교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 우선성을 철저하게 실천해씨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사용함을 받았으나 바울의 자랑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복음 전팔르 통해 사람들이 돌아온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이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랑이 온전히 자랑거리가 되었는가? 되고 있는가? 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자랑할 수 있는 영혼 구원의 실제적인 변화와 성숙의 열매들이 끊이지 않는 사역이기를 소망해 본다.
 
*바울의 개척정신은 “남들이 가지 않는 곳, 남들이 하지 않고 있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미 들어간 지역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복음 전도는 이미 들은 이들에게보다 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 부르신 은사가 다르겠지만,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은 “이미 들은 이들(이스라엘)에게” 집중하였고, 바울은 이제 “들어야 할 이들(이방인)에게” 집중했다. 하나님의 은사의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는(롬 11:29)것이 맞다!
 
*더온누리교회를 섬기면서 많이 두려운 부분이다.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에 심취되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공간의 부족함을 들어 전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매우 당혹스럽다. 공간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공동체는 복음을 이미 들은 이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지체로 주로 들어온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을 들어야 할 이들이 아직도 교회 밖에 더 많다!”
 
*교회는 복음을 들려 주어야 할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을 이미 들은 이들이 아무리 공동체에 가득하더라도 복음을 따라 살아내는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콜링되어 구성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병들 때가 온다. 건강한 공동체는 “복음을 들어야 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이다. 또한 이미 들은 복음대로 함께 살아내자고 격려하는 공동체이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가득한 사람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복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복음을 온전히 누리는 자리가 있다면, 복음을 거칠게 전하는 야성도 살아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어느곳에서라도 누구에게든지 복음은 전해져야 한다. 아~~~ 심장이 뛴다!
 
*로마교회에게는 다시 생각나게 하는 복음을, 땅끝까지 더욱 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오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시는 감동이다. 하나님꼐서 보내셔서 모인 공동체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는” 복음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들어야 할 이들에게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주님, 심장이 뜁니다~ 복음의 심장이 뜁니다!
*주님, 이미 들은 복음의 사람들이 아직 듣지 못한 복임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거나 망각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바라 보아야 할 곳은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곳에서 복음의 은혜가 필요한 곳임을 압니다.
*주님, 이미 복음으로 잘 세워 로마교회가 복음이 필요한 땅끝을 위해 섬기는 것이 당연하듯, 우리도 복음이 전해지는 어느 곳이든 섬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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