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땅끝을 향하는 바울, 나는? 우리는? [롬 15:22-33]
 – 2023년 06월 28일
– 2023년 06월 28일 –
바울이 향후 선교 계획을 밝힌다. 고린도에서 편지를 쓰고 있지만, 예루살렘과 로마와 서바나(스페인)를 향한 그의 소원이 함께 소개된다. 예루살렘에서는 그의 복음을 확증을 받고, 로마 교회가 그의 복음을 듣고 화해에 이르러 그를 후원해 준다면 서바나(스페인)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들고 갈 것이라고 원대한 계획을 들려준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로부터 서바나 선교를 위한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바울의 방법은 자신이 지금까지 전했고 로마교회에 들려 주었으며, 서바나에 가서 전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의 내용을 받는다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생긴 교회 안의 갈등도 해결되리라 여겼다. 한편으로 고린도에서 곧바로 로마로 향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했는데, 곧 그곳에서 자신이 이제껏 전한 복음을 확증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교의 열매인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연보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1.예루살렘, 로마, 서바나 방문 계획(22-29절)
바울이 로마 방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밝히고 있다. 먼저 바울은 지금까지 그가 로마를 방문하기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전한다(22절). 그간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에 이르는 지역의 선교에 최선을 다했고(19절), 이 지역에는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밝히고 “여러 해 전부터”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23절). 하지만 방문하지 못한 것은 이 지역에서의 사역을 완수하는데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여러 해 동안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원한 목적을 24절에서 밝히는데, 먼저 로마 교회 성도들과 사귐을 통해 기쁨을 얻기를 기대한다. 로마 교회에는 이미 브리스가와 아굴라(16:3)와 같은 바울의 동역자들도 존재했다. 그들을 비롯한 성도들과의 만남이  피차 즐거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다. *아… 우리 교회도 이랬으면 좋겠다. 목장모임을 생각하면, 전도회 모임을 마음에 품으면, 각종 부서 사역과 하나님 앞에서의 만남들을 생각하면 이런 셀렘이 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또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를 서바나(스페인)으로 “보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보내다(프로펨토)”는 선교적 문맥 속에서 사용될 때(행 15:3; 고전 16:6, 11; 고후 1:16; 딛 3:13), “선교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다”라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 로마 교회가 자신의 서바나 선교를 위한 후원 교회가 되어 주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24절의 “지나가는 길에”로마 교회를 방문하겠다는 그의 표현에도 조심스러움이 물씬 묻어 난다. 그가 직접 개척하지 않은 교회임에도 후원 요청을 한 로마 교회가 새로운 동역자가 되어 주기를 원하는 간절함도 담겨 있다.
 
실제로 바울이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고 서바나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서 언급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의 선교 계획 속에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로마에서 서바나까지” 라는 북반구 지중해 지역을 총망라한 원대한 꿈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목회 사역에는 이런 꿈이 있을까? 나의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로마에서 서바나까지”를 과연 그리고 있는가? 바울의 원대한 포부 앞에 큰 도전을 받는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그가 놀랍다. 과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겠나!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나님꼐서 나에게도 이런 복음을 전하기 위한 원대한 포부를 마음에 품게 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나의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로마에서 서바나까지”가 내 마음에 박히면 좋겠다. “전주에서 과연 어디까지 일까?”
 
 
25-27절은 예루살렘 방문 계획과 연보 전달 계획을 밝힌다. 이것은 로마서 뿐 아니라 바울의 주요 서신(갈 2:10; 고전 16:1-4; 고후 8-9장)에서 언급되는 부분이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헌금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이들은 기쁨으로 헌금ㅎ했고,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이기 때문에 헌금 했다고 밝힌다(27절). 로마서 11장의 돌감람나무 접붙임 비유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들에게 영적인 빚을 지고 있음을 진단했다. “영적인 빚을 진 이방인들이 물질적인 것으로 유대인들을 섬기는 것을 “피차 사랑의 빚을 지고 갚는 것(롬 13:8)”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연보의 예루살렘행은 이사야 60:4-9에서 시온의 영광이 회복될 때, 이방인들이 그 은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다.
 
동시에 28-29절에서는 연보 전달과 함께 바울이 전한 그의 복음의 열매를 확증 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한다. “열매”는 지금까지 바울이 수행한 이방인 선교의 열매를 말한다. 실제로 16절과 28절에서는 예루살렘행에 이방인 회심자들과 동행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으로 로마 교회에 역시 유익을 줄 것이다(29절). 이는 서바나 선교를 후원하게 될 교회가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
 
 
 
2.예루살렘 방문을 앞둔 바울의 기도 요청(30-33절)
바울은 이 모든 계획을 알리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부탁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사랑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권한다(30절).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로부터 자신이 건짐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기도의 바램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붙잡아 죄수 신분으로 로마로 이송하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행전 21:7-14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더라도 복음을 확증하기 위한 바울의 의지를 보게 한다.
 
두 번째는 이방인들로부터 모금한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가 받도록 중보해 달라는 것이다(31절). 예루살렘 교회의 과격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의 거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방인은 죄인과 동의어이다. 죄인들과 어떤 교제도 허용하지 않았던 율법의 관습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기에 바울이 이방인들과 함께 들고 가는 연보는 구제헌금과 이사야의 종말적인 예언의 성취와 더불어 보편적인 교회의 일치라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예루살렘 교회가 연보를 수용한다면 이는 이방인 교회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도 요청은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로 가서 함께 기쁨을 나누며 쉼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32절). 이는 단순한 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동역자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다.
 
*기도는 가장 적극적인 선교 동역의 도구이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가 선교에 진심이고 진실하게 선교하기를 중보해주어야 하고, 땅 끝에 나가있는 우리가 알고 있고 돕고 있으면 동역하고 있는 선교사와 선교지의 형제들을 위해 주님의 마음과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위해 기도로 간구하며 동역해야 한다.
 
*선교하는 교회는 기도와 물질의 동역이 함께 하는 교회다.
 
 
 
나는?
-과거 자신의 사역을 소개했던(17-21절) 바울이 미래와 현재의 사역을 서술하며 기도를 부탁한다.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하는 삶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기도의 중심 내용이 미래 사역이었고 이를 함께 동역하여 주기를 설득하기 위해 현재의 사역을 설명한다. 이런 기도 요청과 미래 계획을 피력하는 이유는 이제껏 최선을 다해 달려온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의 사역이 마무리 되어 사역의 전환기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미래 사역의 방향을 주님께서 명령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에 충실한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제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갔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들이 모은 연보를 전달하고 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아 서바나로 가려는 근거가 무엇일까? 이사야 66:18-20 이다.
 
*”18 “내가 그들의 일과 생각을 알기에, 언어가 다른 모든 민족을 모을 때가 올 것이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19 그리고 내가 그들 가운데 징표를 두어서, 살아 남은 자들을 ①스페인, 뿔, 활을 잘 쏘는 룻, 두발, 야완 민족들과 나의 명성을 들은 적도 없고, 나의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게 보낼 것이며, 그들이 나의 영광을 모든 민족에게 알릴 것이다. / ①히, ‘다시스’ 20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서 가져 오는 것과 같이, 그들이 또한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희의 모든 동포를 나 주에게 바치는 선물로 말과 수레와 가마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서,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새번역_사 66:18-20)
 
*우리르 교회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으로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 뿐 아니라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는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 삶을 일관되게 달려 왔음을 보여 준다. 나는 어떨까?
 
-서바나 후원을 기대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전달하며, 기도를 요청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의 열정과 꿈이 읽혀진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결코 물러섬이 없이 원대한 꿈을 꾸며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도전이다. 나도 그래야지….
 
-바울이 로마에 가려는 목적은 “성공”이 아니었다. 우리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서울에서 공부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성공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다면 누구라도 서울을 가고 싶어 한다. 서울을 가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참담할 노릇이다. 바울의 시대에 로마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역시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로마를 좋아했을 것이다. 특히나 성공하고 싶고 권력을 취하고 싶은 사람일 수록 더욱 그리하였으리라.
 
-하지만 바울은 로마를 흠모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를 흠모했다. 로마 제국의 팍스 로마나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를 통해 갈 수 있는 서바나 지역을 흠모했다. 바울이 로마를 가고자 했던 이유는 성공이 아니라 선교였다.
 
-심지어 목적지, 결승점이 로마가 아니라 로마를 거처 지나 서바나였다. 당시 세계의 땅끝이었다. 세계 최고의 도시, 제국의 중심, 권력과 물질과 명예와 영광의 도시 로마가 아니다. 세계의 끝자락 변방 서바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 복음의 불모지 개척이 원칙이었던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 로마를 향해 가는 계획조차도 땅끝 서바나를 가기 위한 목적임을 설명하며 중보를 요청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복음 전파 중심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보내든지 가든지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땅끝까지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땅끝까지 가는 이들의 동역자가 되든지 우리는 땅끝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명예와 영광을 바라는 로마행이 아니라 섬김과 낮아짐의 서바나행을 꿈꿨다. 단지 로마는 서바나로 가는 길목이었고, 로마교회에 서바나를 섬기기 위한 헌신의 기회를 주고자 함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세상처럼 서울일까? 바울처럼 땅끝일까? 서울도 갈 수 있고, 땅끝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향하든지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어야 한다. 땅끝을 향하는 바울에게 “예수의 복음”이 중심이었듯, 어디를 향하든지 복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땅끝을 향하는 바울”을 잊으면 안된다. 왜 다들 성공만 하려 할까? 왜 다들 성공보다 더 멋진 실패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외면할까?
 
 
 
 
*주님, 바울의 큰 꿈처럼 나도 복음 때문에 큰 꿈을 꾸겠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빚진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땅끝을 향하는 바울의 모습을 잊지 않겠습니다. 성공 지향에 함몰된 기독교의 반전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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