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서로 서로 문안 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롬 16:1-16]
 – 2023년 06월 29일
– 2023년 06월 29일 –
바울은 로마서를 맺는 인사말에서 수많은 동역자들과 성도들의 이름을 열거하여,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역의 열매를 확증한다.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를 천거하는 것으로 바울의 마지막 긴 인사가 시작 되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비롯하여 로마에 있는 26명의 성도들과 최소 5개의 가정교회가 언급된다. 바울은 갈등 중에 있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문안할 것을 부탁하고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로부터 그들을 향한 문안을 전달한다.
 
 
 
1.뵈뵈를 추천함(1-2절)
로마서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겐그레아 교회의 여성 지도자 뵈뵈를 언급한다. “뵈뵈”는 그리스식 이름이고 1절에서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디아코노스)”으로 소개한다. ‘디아코노스’는 개역 개정이 “일꾼”으로 번역했지만, ‘여집사’라는 공식 호칭으로도 번역된다. 이는 교회가 그녀를 지도자중의 한 사람으로 세웠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 자매”라는 표현을 통해 그녀가 겐그레아 교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또, 2절은 “보호자(프로스타티스)”로 표현했다. “후견인”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당시 로마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관습 중의 하나로서 사회, 경제적으로 유력한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뒤를 봐주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는 바울이 뵈뵈를 “후견인, 보호자”로 부름으로서 그녀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암시케 한다. 그녀는 겐그레아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다. 본문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뵈뵈가 로마서를 로마 교회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들에게 뵈뵈에 대하여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어떤 도움을 원하든지 도와주기를 요청한다. 뵈뵈는 바울 뿐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을 거리낌 없이 도운 “나의 보호자(프로스타티스_여 보호자, 여 후견인, 여 후원자)”라고 소개한다.
 
뵈뵈(포이베)는 “빛나는”이라는 뜻이다. 그녀의 이름의 의미처럼 바울의 사역과 겐그레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녀의 삶은 빛된 존재였음을 바울이 추천으로 증명한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세상의 빛된 존재”의 삶임을 선포하셨다. 그녀는 참 그리스도인답게 주님의 영광이 빛나게 하는 삶을 산 것이다.
 
*바울이 이와 같은 삶을 사는 뵈뵈를 추천하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을 것이다. 누군가를 추천하는 일이 너무도 어려운 시대, 더구나 여성의 인권과 권리가 도무지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에 여성 지도자로서 추천을 기꺼이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인품과 삶을 살아낸 그녀가 대단하다.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는 나의 삶도 이와 같아야 되지 않겠나…. 누군가 나에 대하여 추천할 때 주저함 없이 추천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야 하겠다.
 
*바울은 뵈뵈를 추천하면서 로마교회에게 “합당한 예절과 무엇이든지 요청하는 것을 도와 줄 것”을 부탁한다. 지도자의 권위가 실추된 오늘날, 이와 같은 요청이 새삼스럽다. 존경할 자가 없다하고 존경받을만하게 처신하라고 하는 말이 쉽게 오가는 때 “서로가 합당한 예절”을 지켜 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다. 교회와 지도자 간에 서로간에 합당한 예절을 지켜나가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2.서로 문안하도록 권함(3-16절)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언급한다. 로마에 있는 여러 교회들 사이에 서로 “문안하라”는 말과 함께 로마 교회 성도들이 문안해야 할 사람들의 긴 목록이 이어진다. 이들은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24명의 이름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2명의 사람들, 5개의 가정교회가 언급되었다. 이들에게 바울이 먼저 일일이 이름을 불러 가며 문안 한다. 편지 글로 문안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바로 앞에서 인사하듯 문안한다.
 
여기에 언급된 이름들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고, 남자 외에 8명의 여자의 이름도 언급된다. 뵈뵈, 브리스가, 마리아, 유니아,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자매, 루포의 어머니 등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3-4절) :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선포된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추방령(주후 49년)에 의해 고린도에 왔다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배우고 함께 장막짓는 일을 하며 동역했다(행 18:2-3; 주후 51-52). 이 두사람은 바울이 에베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떤나 후에도 고린도에 남아 성경 교사 아볼로를 불러 복음을 더 확실하게 가르쳐서 고린도 교회를 성장 시키는 발판을 제공했다(행 18:26; 고전 3:6). 참고로 브리스가가 아내이다. 그녀가 늘 먼저 언급이 되는 것은 남편 아굴라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이들을 예수 안에 있는 동역자라고 묘사하며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목숨 걸고 섬겼기에 감사하고 있다고 밝힌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교회(5절 상) : 이 부부가 섬기는 가정교회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16장에 이르러서야 “에클레시아”(1, 5절)를 사용했다.
 
*에베네도는(5절 하)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교회 다음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그 교회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 부부가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이력에 근거하여 ‘아시아에서 그르시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는 설명을 수긍하게 한다.
 
*마리아(6절),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고 사도들에게 존중을 받은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그의 친척 혹은 유대인 동족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7절), 암블리아(8절), 바울의 동역자 우르바노와 스다구(9절),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10절), 헤로디온, 나깃수(11절),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12절), 루포와 그의 어머니(13절),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14절),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자매, 오름바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15절) 등이다.
 
*총 26명의 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바울의 선교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며 세우는 과정에서 진행 되었고 수많은 인생의 친구들과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걸어간 여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홀로 사역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다. 사역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사역하는 것이다.
 
*”서로 문안하라(16절)”는 소중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교회로 더욱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바울의 바램이 깃든 표현이다.
 
 
 
나는?
-바울은 뵈뵈라는 한 자매를 추천한다. 그녀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서 바울과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자신을 영접하듯 이 자매를 잘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 나라의 공적인 자원들이다. 오직 내 교회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사역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이다. 그녀는 교회 지도자였다. 1세기 당시 여성 인권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대에 말이다.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변혁적이고 혁신적인 공동체인지 여실히 증명된다.
 
-더구나 서로 문안하라고 기록한 로마교회 지도자들의 이름들 가운데 무려 8명이 여성의 이름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렇게 변혁적일까? 이렇게 혁신적일까? 곰곰히 고민이 되는 아침이다. 오히려 더 꽉 막힌 곳이 교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폐쇄적으로 보이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서로 문안 하라고 권면 하는 바울이 실제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문안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지체들을 세심하게 기억하고 배려하며 존중하고 또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늘 기도 속에서 그들이 교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인맥을 형성하고 활용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는 서로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해 주는 영적 인맥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26명의 로마 교인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다섯 개의 가정 교회들을 언급한다. 로마 제국의 수도답게 이 교회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으며 남자와 8명의 여자 이름이 섞여 있다. 노예와 자유민들의 이름도 같이 나오고 상류층의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나온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인종, 다민족, 다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살면서 공동체를 이룬다. 세상은 차별과 배제의 장벽을 만들지만,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하나된 공동체를 추구한다. 장벽을 헐고 하나가 되는 곳이 교회이다.
 
*당시 남녀 차별의 한계를 뛰어 넘은 교회였다. 뵈뵈는 바울의 편지를 가져 간 사람이고 겐그레아 교회의 여성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문안하라”는 표현이 16구절에서 18회나 반복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문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형식적이 되어져 간다. 주일에 성도님들과 눈인사조차도 하지 못하고 지나칠 경우가 허다하다…. 이게 뭔가 싶다… 오죽하면 주일 예배 마치고 본당 문을 한 군데만 열어볼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만큼 인사드리고 인사 나누고 싶은데 시선조차 나누지 못하고 지나치는 성도님들이 더 많다… 그래서 아쉽고 아쉽다.
 
*성도님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교회 건물 안에 있는데 관계가 없으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아쉽고 아쉽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하늘 가족이 아닌가! 먼저 소리내어 인사를 해주면 얼마나 마음이 열릴까….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모녀가 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거의 무시한다. 엄마가 그런 모습인지, 함께 있는 딸도 성인이어도 인사할 줄 모른다….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괜히 했구나… 싶어도 웬걸 그 모녀는 자주도 마주친다… 차라리 안 마주치면 좋은데… 그래도 계속 인사한다. 그래도 무시 당한다…. 다음에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인사를 먼저 하고 만다… 그런데 무시당한다…. 아직까지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혹시 이런 무안한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디…. 우째야 쓰까~~
 
*건강한 교회는 밝은 교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인사를 주고 받는 교회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이고 싶다. 서로를 돌아보는 것은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더온누리교회는 밝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교회여야 한다.
 
 
 
 
*주님, 우리도 문안하며 서로를 위해 챙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빕니다. 제가 더욱 더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지도자의 철학과 안목이 중요함을 실감합니다. 바울처럼 서로의 문안을 잘 챙기는 목사가 되렵니다.
*주님, 여성 지도자들에 대해 저의 선입견부터 깨뜨리겠습니다.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역자임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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