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선한 일에 열심인 아름다운 교회(성도들) [딛 3:8-15]
 – 2023년 07월 05일
– 2023년 07월 05일 –
바울이 디도에게 말한 “여러 것(2:1-3:7)”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것이다. 디도는 이것을 그레데 성도들이게 “굳세게 전해야” 한다. 종교적인 지식은 넘쳐 났으나 일상의 삶에 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풍조가 교회 안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삶 속에서 지식이 아니라 행함의 모습으로 분별 되기에 일상의 삶이 복음을 따라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면 매우 곤란해 진다.
 
진리는 순종 그 자체이고 선한행실은 힘써서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디도에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일상에서 선한 일은 곧 구원 얻은 자의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1.선한 일에 힘써야 할 성도와 교회(8절)
“이 말은 참됩니다. 나는 그대가, 이러한 것을 힘있게 주장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에 전념하게 하기 바랍니다. 선한 일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합니다”(3:8 새번역).
 
목사가 성도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한 일을 하라”는 교훈이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 명령을 수차례 반복하며 강조한다(1:8, 2:10, 14, 3:1, 8, 14). 3장 밖에 되지 않는 디도서에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한 것이다. *문득 선행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나는 얼마나 강조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건강한 교회는 8절 말씀에 기초한 가르침이 끊임없이 실행되는 교회이다. 본문이 시사하는 교회의 가르침의 목적은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선명한 선포, *교회가 처한 현실과 상황에 따른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훈, *그 교훈이 하나님의 “선한 백성”의 삶이라는 윤리적인 열매로 맺히도록 돕는 것과 *이렇게 가르친 교훈이 삶 속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늘 평가하는 가르침이어야 한다.
 
*우리 더온누리교회가 이와 같은 가르침의 목적(방향성)을 붙잡고 끊임없이 생동하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교회로 바로 서야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목회는 세상을 향해 선한 일에 힘쓰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설교와 교육의 목적이 성도들에게 선행을 격동케 하여 세상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교, 진정한 기도가 아니겠나!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지 못하는 교회, 혹은 존재감 조차 느끼지 못하는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스운 상상이지만, 우리 교회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 우리 동네의 반응은 어떨까? 섭섭해 하고 아쉬워 할까? 과연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신도시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애잔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개척예배는 들어봤어도, 소임을 다하고 문을 닫으며 감사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교회가 들어온다고 하면 주변 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대동소이 하다. 비슷한 업종이 들어오는 것 보다 환영받지 못한다. 지금 교회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이다. 그렇다고 좌절만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럴 때일 수록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세상이 알아봐주든 그렇지 않든 성실하고 묵묵히 감당하고 있으면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
 
*우리 더온누리교회도 묵묵히 지역 사회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묵묵히, 성실하게 감당해 보련다. 이제 시작이니 더 올바른 방향을 잡고 뚜벅 뚜벅 걸어 보련다.
 
 
 
2.거짓 교사들과 이단에 대한 자세(9-11절)
구약과 족보에 집착하는 토론과 율법으로 정결함과 부정함을 나누는 의미 없는 논쟁들이 거짓 교사들이 가진 모든 것이었다. 그들은 정작 복음을 몰랐다. 바울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그들과 다투는 시간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다.
 
또 이미 돌아 가능성이 없는 이단에 빠진 부패한 그들 때문에 굳센 말로 돌이켜야 할 성도들에게 쏟아야 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과 논쟁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성도들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말씀을 가르쳐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진 이단과 거짓교사들에 대한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두번 권한 후에 멀리하라” 그런데 이 권면은 바울이 디도에게 한 것이다. 즉, 디도는 그레데 교회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사명이었다. 그들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도들에게 진리를 먼저 확고하게 가르치는 것이 먼저이지 거짓교사들과의 논쟁이나 이단에 빠져 이미 확고하게 돌아선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서는 안된다는 목회자로서의 자세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숲을 보고 목회하라는 것이다.
 
*참 어려운 문제다. 이단에 빠져 고통스러워 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면 이런 말씀은 너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바울이나 디도의 부르심은 이방인 선교였다. 그들의 부르심에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자기 아들을 내어 주기까지 하면서 구원하려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믿고 열어 주시는 상황과 붙여 주시는 동역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돌아섬의 은혜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어떤 영혼도 포기하시지 않는다.
 
 
 
3.사역계획과 당부(12-15절)
아데마와 두기고를 보내면 디도는 그레데 사역을 마무리하고 니고볼리에서 만자자고 요청한다. 또 새로운 복음을 기다리는 지역으로 함께 움직일 것을 기대하는 부탁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복음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서는 바울의 열정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복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떠나 가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열정과 이 여정을 순종하며 함께 나아가는 디도의 모습이 놀랍다. 그 스승의 그 제자이다.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사역하며 안정되고 편안해 지는 것을 내려놓고 또 다시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의 자리로 기꺼이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바울과 디도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된다. 나도 목회의 여정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어색한 것을 결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다.
 
디도서를 전달하는 세나와 아볼로 그들이 가야할 곳으로 급히 보내주고, 가는 여정이 궁핍하지 않도록 여정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동참하고 돕는 그레데 성도들에게 이렇게 사역자들을 도움으로서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이 선한 일의 중요성을 잘 가르치고 열매 맺는 성도가 되게 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디도서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선한 일을 행하는 선한 백성”의 가르침이 마음을 울린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회안에서 빛나기 보다는 일상에서 빛나고 드러나야 하는데, 결국 그것은 “선한 행실”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악함과 다른 선한 삶을 묵묵히 순종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문제는 이제껏 이런 선한 삶의 가치보다 종교적인 삶을 강조하며, 교회의 가르침이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지식에 치우쳐서 일상의 삶 속에서 복음의 가치로 어떻게 살아낼 것이가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도들의 개인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문제 외에, 사회적인 문제에서도 소극적인 그리스도인을 양산해 왔다. 그 결과 사회는 더 어두워지고 그 안에서 빛이 사라지고 있다. 복음의 진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교회는 마땅히 가르쳐야 한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두고,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이 결국 우리가 터잡고 살아가는 사회가 병들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꼴이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성경의 이야기는 창조 이후,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이야기이고, 나라들이 얽힌 정치 이야기이다. 그 복잡한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악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로 악을 이기고 선을 이루는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성경이야기를 그저 개인적인 삶의 유복함을 위해서만 적용한다.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야 하는지를 아주 사소한 결정에서도 세상과 다름없이 결정한다. 하나님 백성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말씀은 교회 안에서 성경의 지식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복음으로 구원받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구제적이고 실제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더온누리교회의 말씀 가르침이 이와같은 분명한 목적을 늘 이루어 내기를 소망해 본다.
 
 
 
 
*주님, 일상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백성으로 살아내도록 제가 먼저 살겠습니다.
*주님, 내가 편안하고 익숙한 결정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어색하고 불편하여도 순종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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