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내가 고치리라 [렘 3:19-4:4]
 – 2023년 07월 12일
– 2023년 07월 12일 –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한다(21-25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뜻밖이다. 2-3장의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설사 돌아올지라도 진심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기록된 회개하는 이스라엘이라도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백성에게 축벅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여전히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부르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적극적으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도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시면서, 어떻게 돌아와야 하는지 알려 주신다.
 
 
 
1.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자녀 이스라엘(19-20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큰 실망감으로 끝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자녀들과 구별해 각별한 사랑을 베푸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좋은 땅을 상속재산으로 주시고 이스라엘이 당신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항상 당신 곁에 머물며 떠나지 않기를 바라셨다(19절). 하지만 이스라엘이 감사하며 순종하리라는 하나님의 기대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음욕에 빠진 여자가 일생의 반려자를 버리고 정부를 찾아가듯이 이스라엘은 자녀의 특권과 가나안을 상속재산으로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20절). 여호와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 곁에 머물기를 거절하고 집을 떠나 나무를 향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2:27). 아버지 하나님의 소박한 꿈이 자녀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으로 산산이 깨졌다.
 
 
 
2.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고치리라(21-25절)
감사를 모르는 이스라엘의 배반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헐벗은 산 위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애원하며 울부짖는다(21절). 기대했던 풍요와 번성이 아니라 수치와 치욕이 이스라엘을 덮쳤다. 산이 헐벗도록 산당을 오르내린 결과로 ‘조상들의 산업(24절)’을 모두 빼앗기고 ‘헐벗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기”(21절) 때문이다. 풍요제의에 빠져 우상을 숭배하고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뻔뻔하게 하나님을 배반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의 애곡과 간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22절)” “배역”이라는 고질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 마음을 정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22절)” 늦었지만 “우리 하나님 여호와”로 고백하며 돌아온다. 참된 돌아옴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단절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소란 떨며 드렸던 제사는 ‘헛된 일’ 이었고(23절),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음을(23절) 고백한다. 부끄러운 그것, 곧 바알은 조상들이 애써 장만해 놓은 재산을 빼앗아 갈 뿐이다. 풍요를 기대하며 바알에게 수많은 소와 양을 때로는 아들들과  딸들을 제물로 바쳤으나 바알은 먹기만 했다(24절). “부끄러운 그것”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치(부끄러움)와 치욕” 당함을 감내해야만 했다(25절). 본질상 “부끄러운 그것”인 우상이 줄 수 있는 것은 “부끄러움(수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은 “한 때”, “일부 사람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끊임없이 저질러온 범죄였다. 가나안 정착 이후부터 계속된 뿌리 깊은 질병이었다.
 
 
 
3.참된 회개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경고(4장 1-4절)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촉구하신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첫째,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1절 상)”고 말씀 하신다.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바알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스라엘의 회개가 확실한 돌아옴이 아닌 형식적인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확실하게 요청하신다. 이스라엘은 풍요의 하나님(바알)이 아니라 출애굽과 광야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돌아옴은 입술의 고백만으로 곤란하다.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실천되야 한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멸망으로 이끈 “가증한 것”을 다 치워버리고 흔들림 없이 여호와만 의지해야 한다(1절 하). 혼합주의적인 요소를 찾아내 모두 제거하고 다시는 방황하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바알과 결별해야 한다.
 
셋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해야 한다(2절 상).”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자신의 삶을 그분의 통치 아래 놓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진실과 정의와 공의”에 따른 맹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돌아옴에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다. “나라들이 나/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그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2절 하)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스라엘이 주의해야 할 보충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먼저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3절 하)고 경고 하신다. “묵은 땅”을 경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잡초와 돌을 제거하고 굳은 흙을 부드럽게 부수어 주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힘겨운 과정이고 회개가 근본적이고 힘겨운 방향 전환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익숙한 길을 포기하고 새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는 회개는 치열함과 철저함이 없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4절 상) 히브리적인 사고에 따르면 마음은 생각과 계획과 결정을 주관하는 의지의 기관이다. 마음의 완악함을 제거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마음의 완악함”을 베어내는 “마음 가죽”을 베어내지 않으면 언약 백성다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 할례의식을 통해 포피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언약 백성이라 할 수 없다. 삶이 언약 백성 다워야 한다. “마음 가죽”을 베어내지 않는다면 “생각과 계획과 결정”이 가나안의 풍요제의에 끌려 갈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은 구체적인 요청은 이스라엘의 회개가 형식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앞서 선포한 대로 여호와의 분노를 피하려는 얄팍한 마음에서 온 것일(4:3,4)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돌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4:1) 하셨고, 삶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동반되도록 요청하시는 것이다(4:3,4). 삶의 변화가 구체적이고 확연해야 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이방 민족들이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4:2).
 
 
 
나는?
-회개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우상 숭배의 자리에서 죄를 회개하는 애곡과 간구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좋은 아버지 혹은 남편이 되고 싶으셨다. 자식에게 고르고 골라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땅을 주고 싶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남편을 버린 신실하지 못한 아내처럼 하나님을 속이고 떠났다. 나무와 돌을 아버지라고 불렀고(2:27)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3:4). 이런 굽은 길로 내달리는 이스라엘을 돌려 세우신다. 여호와를 잊은 백성에게 다시 자신을 상기 시키신다.
 
-심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3:1). 이스라엘은 돌아와야만 살 수 있었다. 우상숭배의 거짓과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구원은 바알이 아닌 오직 여호와께만 있다고 고백해야 소망이 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지 않음으로 당할 수모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자행한 부끄러운 짓 때문이기에 그 수치를 당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회개는 “바알이 살아계신다를 외치고 맹세하던 자들이 “여호와께서 살아계신다”고 외치면서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다짐하고 또 그대로 사는 일이다. 회개는 내 안에 죽어 있던 그리스도를 살아 통치하시는 왕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매우 치열한 과정이어야 한다. 한 두번의 격정적인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변화되려는 의지와 안주하려는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이다. 마치 묵은 땅을 갈아 엎는 인내와 힘듦의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의 회개는 어떨까? 대충 얼버무리고 퉁치듯이 스스로 자부하며 결정하고 있지는 않는가? 삶의 변화를 인내하며 이끌어가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과 도전에 직면하며 치열하게 싸우워가며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회개일까? 형식적인 문구에 의지하여 쉽게 말로 끝내는 회개일까?
 
*내가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회개하면 교회가 살아난다. 나라가 살아난다.
 
*회개는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생명이 뿌리내릴 수 없는 단단한 묵은 땅을 기경하여 의로움과 새 생명의 씨앗이 꽃피게 하는 일이다. 몸의 할례로 거짓 안전에 주저앉기 보다 마음의 할례를 통해 신실하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산다.
 
 
*”진실과 정의와 공의”되는 삶….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우상을 버리는 데 그치지 말고 삶에서 흔들림 없이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진실과 정의와 공의”가 되는 삶을 살라고 도전하신다.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살아갈 때 세상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대가 바라는 선교 전략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과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살아내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나의 삶을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진실과 정의와 공의는 대체 불가능한 선교 전략이 틀림없다.
 
 
*또한 여호와께 돌아옴은 종교의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단호한 결단”과 “완전한 삶의 전환”을 동시에 의미한다. 육신의 할례만으로 안주하지 않고 마음의 할례를 통해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고, 묵은 땅을 갈아엎듯이 삶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치열한 과정을 외면하면 안된다.
 
 
 
*주님,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운 삶을 추구하겠습니다.
*주님, 스스로 마음 가죽을 베어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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