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옛적 길, 파수꾼, 내버린 은 … 결국 말씀을 거절하여 맞이한 멸망 [렘 6:16-30]
 – 2023년 07월 19일
– 2023년 07월 19일 –

하나님께서 거듭 살길을 찾도록 권면하신다. 하지만 유다는 “우리가 그 길로 가지 않겠노라.” 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워 경고의 나팔을 불게 하셨으나 이 역시 유다는 “우리가 듣지 않겠노라.” 하며 귀를 막았다. 여호와는 예언자를 보내어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이 살길을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은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은 여호와의 메시지가 선포될수록 귀는 더욱 닫혀 갔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의 본보기로 삼아 징계할 것이다.

 

 

 

1.듣기를 거절하는 백성(16-2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역사를 되돌아보며 살길을 찾으라고 권면하신다.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또 너희를 지키려고 파수꾼들을 세워 놓고, 나팔 소리가 나거든 귀담아들으라고 가르쳐 주었으나, 너희는 귀담아듣지 않겠다고 하였다.” (새번역_16-17절)

 

“옛길(옛적 길)”은 출애굽-광야-가나안에 이르는 길을 가리킨다. 이 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따라 간 길이었다. “가장 좋은 길(선한 길)”은 생명과 축복과 평강 같은 선한 것이 주어지는 길이다. 이스라엘은 이 길들을 오래전부터 거절했다. 대신에 바알제의를 섬기는 지금의 길이 선한 길이도 가나안의 물질적 삶에서 ‘평강(쉼터)’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옛적 길”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예언자)을 세워 나팔 소리를 들려 주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듣기를 거절했다(17절). *평강의 선포에 길들여진 귀는(14절) 회개를 외치는 파수꾼의 경고를 듣기 싫은 소음으로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면서 “나라들”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17-18절). 모든 민족이 알도록 이스라엘에 대한 판결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판결은 징벌보다 원인에 더 초점을 맞추어 선포된다. “땅아, 너도 들어라. 내가 지금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린다. 그들이 이처럼 사악한 생각을 하였으니, 이것은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이다. 그들이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며, 나의 율법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새번역_19절)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유다가 자초한 것이다. 유다의 (잘못된) 생각이 자라나서 결실한 (악한) 열매가 재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자기 생각과 계획에 따라 살았기에 재앙이 임하게 된 것이다. *불순종의 씨를 뿌린 이스라엘이 재앙의 열매를 거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그들이 아무리 “시바에서 들여오는 값비싼 유향과 먼 땅에서 가져오는 귀한 향품으로” 분향한들, 하나님께서 좋아할 수 없음을 선포한다. 기름지고 풍성한 번제물과 희생 제물이 하나님을 배부르게 할 수 없다. 귀하고 값진 예물과 풍성한 제사가 그분의 말씀과 율법을 대신할 수 없다(20절). *이스라엘의 제의적 경건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인 것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말씀에 순종 하지 않는 자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저들만의 행사에 불과하다. “그들의 생각”에 따른 제의적인 경건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옛적 길”을 찾아 그 길을 가는 삶, 곧 그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다. 그 옛적 길을 찾아 그 길로 걷기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이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길에다가 장애물을 놓아서 걸려서 넘어지게 하신다(21절). “그들의 생각의 결과”(19절) 라는 점에서 멸망은 이스라엘이 자초한 재앙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두어 걸려 넘어지게 하셨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놓으신 장애물이기에 넘어짐과 멸망에는 예외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들”(집안)과 “이웃과 그의 친구”(공동체)가 함께 넘어져 멸망한다(21절).

 

 

 

2.위기의 시온(22-26절)

시온(예루살렘)을 치려고 “북방에서” 한 민족이 내려오고 “땅의 끝에서부터” 큰 나라가 일어난다(22절). 두려움과 놀람을 불러일으키는 강한 민족이 시온을 향해 원정을 떠난다. 이들은 활과 단창으로 무장했고 무자비하다. 바다가 포효하듯 함성을 지르고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온다(23절). 시온의 백성들은 이 소식만으로도 힘이 빠져 손이 축 처지게 된다.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죽은 목숨과도 같이 여긴다(24절).

 

*유다 백성은 적들을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꺾인다. 겁에 질려 용기를 잃고 만다. 언제 그들에게 시온의 주변이 함락될지 모르니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숨어 있어야 한다. 들녘으로도 거리에도 나가지 말고 길도 떠나지 말아야 한다(25절). 그런데 파괴하는 자들은 “갑자기” 덮쳐올 것이다. 그렇기에 시온은 이미 죽은 목숨이기에 죽음을 애도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 굵은 베 옷을 허리에 두르고, 잿더미 속에서 뒹굴어라.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처럼 통곡하고, 슬피 울부짖어라 … “(새번역_26절) 이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여 처참할 것임을 시사한다.

 

 

 

3.내버린 은(27-30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의 영적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기신다. “예레미야야, 내 백성을 시험해 보아라. 금속을 시험하듯 시험해서 도대체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 보아라.” (새번역_27절) 개역 개정이 망대로 번역한 단어는 금속의 순도를 측정하는 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즉, 시금자(a tester of matals)이다. 시금자는 광석에서 뽑아낸 금속의 순도를 조사하는 사람이다. 또, 요새로 번역된 단어는 전승 과정 중 삽입된 난외주라고 해석하지만, 고대 히브리어에 모음을 첨가하는 과정에서 “검사자”라는 의미의 단어가 요새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되었든 예레미야는 시금자, 검사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바른길을 가는지,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율법을 따라 사는지를 살펴 조사해야 한다.

 

본문의 문맥은 2~6장에 수집된 고발의 말씀들은 예레미야가 시금자의 임무로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금자로서의 보고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들은 모두 반항하는 자들이다. 모함이나 하고 돌아다니며 마음이 완악하기가 놋쇠나 무쇠와 같다. 모두 속속들이 썩은 자들이다.”(새번역_28절)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모두 고집 센 반역자, 헐뜯고 돌아다니는 자, 멸망을 가져오는 자, 부패한 자였다. 특히 “그들은 모두(그들은 다)”라는 표현은 유다 백성 전체가 타락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사역은 실패한 제련 과정이 되어버렸다. 풀무에 광석을 넣고 화학 물질을 첨가한 후에 불을 지피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은이 남는데 풀무풀을 더욱 세게 지피며 뜨겁게 해보았지만 금속과 불순물이 나누어지지 않았다(29절). 이스라엘을 다시 깨끗하게 하려는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했다. 실패했다. 예언자는 강도를 높여가며 이스라엘의 부패를 고발했으나 어떤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랑의 매를 들어 치셨으나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더욱 완고하게 저항하였다. 풀무풀에 들어갔지만, 은을 뽑아내는 데 실패한 광석들은 쓸모없는 돌들로 버려지는 것처럼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죄악에서 떠나기를 거절하는 이스라엘은 버려진다(30절).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버린(19절) 이스라엘을 버려, “내버린 은”이 되게 하신다.

 

 

 

나는?

-나의 옛적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이스라엘은 출애굽-광야-가나안에 이르는 하나님만 따랐던 길이었다. 나는 과연 하나님만 전심으로 따랐던 길이라도 있었던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정체를 “내버린 은”으로 규정하신다. 이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모함하며, 마음이 완악하기가 놋과 철 같아서 속속들이 썩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아무리 강력한 풀무불에 넣어서 제련하여도 이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았다. 그래서 쓸모없는 돌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아예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또 너희를 지키려고 파수꾼들을 세워 놓고, 나팔 소리가 나거든 귀담아들으라고 가르쳐 주었으나, 너희는 귀담아듣지 않겠다고 하였다.” (새번역_17절)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 백성은 반항하고 모함하며, 마음이 완악하기가 놋과 철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했을까? 19절이 분명하게 밝혀준다. “땅아, 너도 들어라. 내가 지금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린다. 그들이 이처럼 사악한 생각을 하였으니, 이것은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이다. 그들이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며, 나의 율법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새번역_19절)

 

-“사악한 생각(그들의 생각)”의 결과이다. 그들의 생각의 결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결국 생각과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제련 수고가 본문에서는 결실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제련도 헛수고일 정도로 이스라엘의 죄는 심각했다. 결국 “내버려진 은”이 될 수밖에 없다.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은 필멸의 길이다. 말씀을 따르는 길에 평안이 있다.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들의 제물을 거절하고 장애물을 두겠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임할 것이다”, “내버린 은처럼 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시금자의 역할은 세상 속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섭리 되고 있음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분명히 증거되어야 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신다. 우리 공동체가 말씀을 일상에서 제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워가기를 기대한다.

 

 

 

*주님, 옛적 길, 선한 길 오직 주님의 뒤만 따라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내 생각이 말씀과 충돌할 때 기꺼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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