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렘 8:4-17]
 – 2023년 07월 23일
– 2023년 07월 23일 –
7장의 성전 설교 이후 8-10장은 다시 예레미야의 격정과 시로 돌아간다. 4~6장의 세계로 다시 데려간다. 예레미야의 핵심 메시지는 *이스라엘은 언약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언약의 율법을 어겼다. 심지어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청도 거절했다. *그 결과 엄청난 무게의 언약적 심판에 직면한다. 이 심판은 북쪽에서 오는 적의 침략이다. *이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으며, 어떤 종교의식이나 성소도 다가올 진노에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9:12-16) 이와 같은 메시지는 “우상숭배의 파괴성”과 “죄의 극심한 완고함”에 대하여 날카롭게 통찰시킨다. 거짓 신은 항상 실패하고 그럴 때마다 우상 숭배자들은 광분한다. 사회적, 경제적 붕괴는 부패한 종교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패와 타락상은 종교의 부패와 타락에 비례한다.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파괴했고, 이로 인한 그들의 죄의 완고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1.백성들의 완악함과 어리석음(4~7절)
일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다의 행태에 하나님께서 당황해하실 정도이다. 정상적인 삶에는 자기를 바로잡는 리듬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선다. 여행을 떠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4절). 하지만 “이 예루살렘 백성”은 완벽할 정도로 한 방향으로만 한결같이 움직였다. 계속 하나님을 “떠나 물러가기만” 했다(5절). 오죽하면 이렇게 표현하셨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7절) 이런 상태에서도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4~7절의 핵심 단어는 “슈브”라는 단어이다. 4~6절에서 무려 여섯 번이 반복된다. 4절에서 “떠나갔으면, 돌아오지(미완료_슈브)”, 5절에서 “떠나(완료_쇼베바), 물러감(명사_메슈바), 돌아오기(부정사_라슈브))”, 6절에서 “행하도다(완료형_샤브)”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다”, “옆길로 빠지다”의 부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다”, “회개하다”의 긍정적인 의미도 갖는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에게서 물러갔다.”. 백성들의 이와 같은 상태는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5절)”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통해 아무리 경고하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들의 귀는 “평강하다 평강하다(11절)”라는 구원 예언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2.지도자들의 문제 핵심(8-13절)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상태에 대해 백성들이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7절 하반절에 “…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라고 한탄한다. “규례”로 번역된 단어는 “미스파팀”으로 “옳고 바른 것, 어떤 상황의 요구 조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율법”을 의미하는데, 출 21~23장의 판례법을 지칭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율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도자들은 항의했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8절 상)”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두 가지 말로 응수한다. 8절 하반절과 9절이다.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서기관들의 거짓의 붓이 [그것을] 거짓되게 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요시야 통치 시기에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서기관들이 거짓되게 다루었다는 의미다. 기록된 율법을 임의로 바꾸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백성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해석을 통해 기록된 “더 중요한 내용”의 올바른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곧 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율법의 경고를 회피했다. 11절을 읽어보자.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즉, 자신들이 그저 성전에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 회복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여호와의 말(토라)”을 소유했다는 것에 헛되게 안주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함 없는 성전과 토라에 대한 신뢰는 거짓이다. 자신이 소유한 토라와 율법대로 살아내는 것, 성전에서 사용했던 말씀에 부합되게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치열함을 느슨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거짓의 붓으로 거짓되게” 한 것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율법 해석이다. 서기관들의 해석은 거짓 선지자들이 제시한 평화와 현실 안주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에 무감각해져 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죄의 문제에 대하여 드러내는 해석보다 감추기 위한 해석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지도자들의 행위를 9절을 통해 “여호와의 말”을 버렸다고 규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입으로는 성경 말씀을 언급하지만, 그것에 불순종하며 살고 또 그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비뚤어진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 그의 백성 된 이들의 당연한 자세이다. 말씀에 따라 순종과 불순종을 취사선택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14~17절은 유다 백성들의 완고함과 지도자들의 현실 안주, 특히 서기관들의 대중 영합의 해석 방식에 대하여 “격노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신앙의 여정도 다르지 않다. 바쁘고 힘든 세상살이에 자주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함께 길을 가시던 하나님의 손을 놓쳐버리고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너무 오래전부터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에 곁길로 벗어났다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타성에 사로잡힌 교회 생활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신앙생활로 착각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율법, 지혜자와 서기관, 제사장과 예언자가 있었음에도 멸망의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본문은 “여호와의 율법과 그 율법을 책임진 자들” 때문에 징벌의 심판을 받았다.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여 생명과 축복을 약속한 여호와의 율법이 죽음과 저주를 초래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거나 가르쳐지지 않는다면, 또, 순종하지 않는다면, 목사와 신학자들이 많은 것이 오히려 해만 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상을 숭배하듯 떠받들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꾸러뜨리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말씀 안에서, 말씀 앞에서”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분명히 사회, 경제, 국가 간에 소용돌이가 거칠게 휘몰아치는 불안한 시대이다. 이런 때일수록 “말씀 안에서 말씀 앞에서” 더욱 올바르게 순종하며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살아날 수 있다.
 
 
 
나는?
-유구무언이다. 답답하다.
 
-짐승보다 못한 유다의 백성들이 지금 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간절히 호소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때와 똑같다. 심지어 짐승들(새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따라 순종하는데, 짐승만도 못하다. 그러면서 교회당을 출입하고 있으니, 손에 성경이 들려져 있으니 괜찮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을 향한 것이다. 우리는 평안할 것이다고 착각한다. 이 말씀이 유다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깨닫지 못한다.
 
-책망이나 회초리는 언젠가 그친다. 그래도 책망과 회초리를 접할 때가 기회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혜와 율법을 알고 있다고 자랑했다. 율법책을 갖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말씀에 정작 순종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지혜로울리 없다. “작은 자부터 큰 자, 선지자에서 제사장까지” 모두 욕심을 내고 거짓을 행했다. 가증한 일을 행하고도 여전한 하나님의 평강이 있다고 자신했다. 이 가증스러움을 어찌할까….부끄러움의 몫은 누구여야 하나…. 심판의 때가 임박했다.
 
-그 때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양을 묻지 않으신다. 올바른 지식을 소유했는지도 묻지 않으신다. 다만 그렇게 아는대로 순종하고 살았는지, 그 행실을 물으실 것이다. 나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랐는지 점검하실 것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말씀 앞에서 순종한 시간과 하나님과의 동행의 깊이를 측량하실 것이다.
 
 
 
*주님, 말씀 앞에서 말씀 안에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부패와 타락의 역사의 소용돌이가 더 가속화 됩니다. 그 곳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 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