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헛된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참 하나님! [렘 10:1-16]
 – 2023년 07월 27일
– 2023년 07월 27일 –
예레미야 10장은 긴 도입부로 시작한다. 우상에 대한 비판과 여호와에 대한 찬양이 번갈아 등장한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같은 이가 없으며 여호와만이 찬 신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예레미야는 이를 반복하여 선포하지만, 백성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헛된 것이지만, 여호와는 권능의 하나님으로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다. 우상은 솜씨 좋은 장인의 작품으로 본질상 나무에 불과하나, 여호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다.” 유다 패망의 가장 큰 원인인 우상숭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말씀 하신다. 하나님과 우상을 대조하고 우상의 헛됨과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그 종말을 예고하신다.
 
예레미야가 고발하는 우상숭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변 민족의 영향을 받아 다른 신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다른 신들도 겸하여 섬겼다. 10장은 본격적으로 민족들이 신으로 섬기는 우상을 헛것으로 고발한다. 우상의 실체를 고발하는 말씀은 특히 유배지에서 살아가던 자들에게 중요했다. 고대인들의 사고에 따르면 한 국가나 민족의 멸망은 그들이 숭배하는 신의 패배를 의미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멸망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신 마르둑에 의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의 패배라고 바라보며 좌절했다. 본문은 여호와의 능력에 회의를 품고 신앙적인 위기에 빠진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야곱의 분깃(기업)”이신 여호와는 권능으로 천지를 지으신 분으로, “이방 사람들의 왕”이기도 하시다.
 
 
 
1.우상 비판(1-5절)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고,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신다. 고대인들에게 별의 운행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이들은 하늘의 별이 민족의 역사와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일식, 월식, 혜성등은 혼란과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고, 천체가 신들의 세계이기에 별의 운행을 잘 관찰하면 신들의 의지와 결정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에서 해와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창 1:14-17).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별자리와 그 움직임은 창조주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하여 놓으신 것이니 “징조”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이처럼 우상숭배도 다르지 않다. 우상은 숲에서 베어낸 나무를 도끼로 다듬고 그 위에 금과 은으로 덧씌운 기술자의 작품이다. 새를 쫓기 위해 세워 놓은 허수아비처럼 말도 못하고 걸을 줄도 모른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옮겨주어야 한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우상은 해를 끼치거나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없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3-5절).
 
*우상은 죽어있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우상은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만드시는 분이시다. 우상은 유한하여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거나 썩으면 버림을 받는다. 만든 이를 만족 시키지 못하면 폐기 처분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지혜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2.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6-11절)
여호와는 장인의 작품에 불과한 우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6, 7절)는 고백은 여호와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한다. 처음부터 “권능”으로 자신의 왕권을 주장하신 여호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왕으로 유일한 경외의 대상이시다(7절). 지혜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 비교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반면에 우상은 3-5절에서 밝힌 것처럼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8절)”이다. 이들이 화려하게 걸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사람이 만들어 입혀준 것들이다. 장인과 대장장이는 다시스(스페인)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수입한 금을 사용하여 우상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기술자들은 왕이나 제사장들이 걸치는 푸른 자줏빛과 붉은 자줏빛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9절). 이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한 우상이 줄 수 있는 가르침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나무”라는 사실이다(8절). 우상은 자신의 기원과 본질이 나무임을 알려줄 뿐이다(8절).
 
우상은 “헛된 것”이지만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다(10절)” 우상은 장인들에게 의존하는 죽은 나무 토막이지만, 여호와는 살아 계시므로 만물이 그를 의지하여 생존한다. “참(에메트) 하나님”으로 번역된 단어는 “진실한, 진정한 하나님”을 의미한다. 우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3.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12-16절)
우상돠 확실히 다른 하나님의 진면목을 계속 소개한다. “권능으로 땅을 만드시고, 지혜로 땅덩어리를 고정시키시고, 명철로 하늘을 펼치신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호령을 하시면, 하늘에서 물이  출렁이고, 땅 끝에서 먹구름이 올라온다. 주님은 번개를 일으켜 비를 내리시며, 바람 창고에서 바람을 내보내신다.” (새번역_12-13절) 권능(창조)과 지혜의 하나님은 바벨론의 지혜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민족들의 지혜자들(7절)이 참된 지혜와 명철을 소유한 자들이라면 땅과 세계와 하늘에서 여호와의 권능과 지혜와 명철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천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연 현상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생존 공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더 나아가 창조하신 생물이 그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기도 하다(13절). 창조주 하나님께서 땅의 풍요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다 수치를 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고 지식이 모자란다. 은장이는 자기들이 만든 신상 때문에 모두 수치를 당한다. 그들이 금속을 부어서 만든 신상들은 속임수요,  그것들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허황된 것이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아서, 벌을 받을 때에는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다.” (새번역_14-15절) 우상은 사람에 의해 신의 자리에 앉혀진 거짓 존재이다. 그 안에 생명이 없는 나무 토막이기에 숭배자들에게 수치만 안긴다.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구너능과 지혜가 없기에 결국은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여호와께서 우상을 만든 자들을 징벌하실 때 우상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분깃(유산)”이신 여호와는 우상들과 전혀 다르시기에 야곱의 운명 또한 민족들의 운명과 달라진다. “그러나 야곱의 유산이신 주님은,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시다. 그분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요,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인 지파로 삼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이시다.” (새번역_16절) 여호와가 야곱의 몫이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소유이다. 이스라엘은 우상들이 아니라 여호와가 자신들의 몫임을, 또 우상들에게 넘거질 수 없는 여호와의 소유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을 “기업의 지파”로 삼으시고, “야곱의 분깃”이 되신 만군의 여호와를 경배하며 그분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나는?
-이방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경고한다(1,2,5절). 하늘의 징조가 민족과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한 이방의 풍속은 어리석고 헛된 것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피조물에 불과하다. 피조물을 창조주처럼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세상과 구별된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이 세상과 우상의 포로와 노예를 자처하는 것은 너무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상이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하여도 사람이 만들고 꾸민 공예품에 지나지 않는다(3-5, 8-10절). 우상은 모두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것일 뿐 그 안에 생명은 없다. 형태나 숭배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본질은 이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만든 우상을 자신을 만든 하나님과 비교한다. 너무도 어리석게도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우상을 선택한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죽은 나무에 불과한 우상 따위에 자기 인생과 운명까지 걸다니, 이처럼 어리석은 인생들이 또 있을까….
 
-인생은 그래서 참 어리석다(14-16절).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놀라운 존재임에도 생명 없는 것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의지하다가 결국 수치를 당한다. 우상이 사라질 때 우상숭배자들도 함께 끊어진다. 그러나 야곱의 분깃되신 하나님은 이들과 다르다.
 
 
*하나님 같은 분은 어디에도 없다(6-7, 11-13절).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비교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우상은 그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일 뿐이다. 그 물건이 화와 복을 내릴 수 없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썩어 없어질 나무토막을 의지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상보다 못한 초라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사람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신박한 것이 “신(우상)”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기대도록 만든 것 중에 기막힌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풍요와 다산을 중요하게 바랐던 당시 백성들에게 바알를 비롯하 가나안의 우상들은 너무도 신박한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웅장하게 서 있는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 기둥들은 마음과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교하고 아름 답게 만들어 놓았기에 “구경하고 감상 하기에는 더 없이 좋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인간이 만든 그 정교한 우상들을 섬기면 곤란하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그리하면 곤란하다. 인격적으로 사귀며 경배하는 대상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뿐이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일까 아름답게 꾸미고 정교하게 포장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오죽하면 사람의 외모까지 정교하게 바꿀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문제는 본성의 욕구가 지나치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가짜에 진짜가 가리워 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가짜 얼굴, 가짜 논문, 가짜 권력…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심각한 것은 가짜를 너무 정교하게 포장하다 보니 진짜보다 진짜 같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짜를 가짜로 모는 힘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가짜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그 가짜뉴스가 어찌된 것인지, 진실하게 살아내야 하는 교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심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순수한 마음의 성도들이 미혹되어 가짜가 진짜가 되어 온 힘을 쏟는다.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면서 진짜 복음은 등한시 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산다.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하며 살아야 할 교회가 분열과 싸움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부끄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의 논리로 버젓이 자행한다. 기막힐 노릇이다.
 
*자기 교회의 막대한 이익을 꿈꾸며, 대다수 서민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뻔뻔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런 모습이 고통스럽다. 나무로 만든 우상에 빠지는 것 만큼이나 말씀의 가치를 버리고 자기 가치, 자기 논리, 자기 명문에 함몰되어 말씀을 빙자하여 무참한 행동을 자행하는 이 땅의 몇몇 교회들로 인해 통곡할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정치와 야합하여 한통속으로 백성 위에 군림한다. 힘을 가진 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종교의 무언의 용납이 한 몫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데, 어떤 교회와 성도들은 폭력적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데 어떤 교회들은 공정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고 현명하신데, 어떤 교회는 너무도 무식하다. 그러니 이 땅의 권력자는 교회를 비롯한 종교인을 깔본다. 지성인들은 교회를 비웃는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창피함에 조용히 교회 다니는 것을 접는다. 참담하기 그지 없다.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교회를 거부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만들어진 우상이 나이라, 만드시는 하나님
 
*사라질 우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을 선택해야지…. 그래야지….
 
 
 
*주님, 나의 살아계신 주님
*주님, 나를 만드신 주님
*주님, 나의 영원하신 주님… 늘 의지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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