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버림받은 하나님의 집, 기회가 열리는 열방 [렘 12:7-17]
 – 2023년 07월 31일
– 2023년 07월 31일 –
예레미야는 자기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탄원했다. 예언자의 탄원에 여호와는 심판을 선언할 뿐 아니라 자기 집과 소유를 버리겠다고 선언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성전과 땅을 이방에 넘겨줄 것이다. 아나돗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보낸 예레미야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또한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마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그분께 사납게 대들면서 그분이 자신의 소유(이스라엘)를 포기하고 원수에게 넘겨주게 만든다.
 
 
 
1.소유를 포기하시는 여호와(7-13절)
언약의 파기를 고발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레미야 개인에 대한 위해가 아니다. 그를 예언자로 보내신 여호와에 대한 노골적인 반역이었다. 여호와의 소유인 이스라엘이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하나님께 소리를 지르고 덤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소유권을 완강히 거절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나는 내 집을 버렸다. 내 소유로 택한 내 백성을 포기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백성을 바로 그들의 원수에게 넘겨주었다.” (새번역_7절) 그의 집, 그의 소유, 그의 사랑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다. 하나님의 실망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남의 것도 아닌 내 것이 반역한 것이다.
 
소유권을 버리신 여호와는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을 보호하시지 않는다.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살아남을 수 없다. “내 소유로 택한 내 백성은 사나운 매들에게 둘러싸인 새와 같다. 모든 들짐승아, 어서 모여라. 몰려와서, 이 새를 뜯어먹어라.” (새번역_9절)뿐만 아니다. 여호와께서 들짐승을 불러 소유를 삼키게 하셨다. 많은 목자가 “그분의 포도원”을 파괴하고 “그분의 몫”을 짓밟아 폐허로 만들었다(10절).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방 왕들에게 유린당해 황무지가 되었다. 폐허로 변한 경작지는 하나님을 향해 통곡만 할 뿐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온 땅이 폐허가 되었음에도 이 일을 마음에 두는 자가 아무도 없다. 적들에게 짓밟혀 황폐해진 경작지는 하나님을 우러러 탄식하지만, 포도원과 밭을 경작했던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여호와의 포도원이 어떻게 이렇게 황무지가 되었는지 관심조차 보이질 않는다. “여호와의 분노”에 관하여 묻는 이가 한 명도 없다.
 
여호와께서 보내신 적들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휩쓸고 지나가기에 누구도 칼에 피해 안전하게 숨지 못한다. 경작지가 황폐해져서 밀을 심어도 자라지 못하고 가시나무만 무성할 뿐이다(13절). 여호와께서 진노하셨기에 땅은 저주받아 수확이 없고 사람들은 수치를 면치 못한다.
 
 
 
2.민족들의 심판과 구원(14-17절)
여호와의 시선이 주변 나라들에 옮겨진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소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민족들도 심판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의 심판이 민족들에게 면죄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언약을 부정하여 징계받지만,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댔기에 자기 땅에서 뽑힘을 당한다(14절). “나의 모든 악한 이웃”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민족들도 여호와의 통치 아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9-12절에서 “여호와의 칼”로 사용되었던 민족들이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징벌받는다. 민족들은 여호와 심판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의로운 도구는 아니었다. 그들의 야욕(욕심)을 잠시 이용하신 것뿐이다. 자기 욕심을 따라 유다 땅을 침략해 들어와 여호와의 포도원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유다 백성을 탄압하고 파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를 침해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징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멸망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이들에게도 심판 이후 구원이 주어진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쫓아낸 다음에는, 다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제 땅, 제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겠다.” (새번역_15절) 여호와의 긍휼은 대상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으신다. 그런데 단지 제 땅, 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족들의 귀향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약속의 일부일 뿐이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로부터 바알 숭배를 받아들여 멸망의 길로 갔지만, 민족들에게는 거꾸로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 종교를 배워 여호와의 백성이 될 기회가 제공된 것이다. “비록 그들이 내 백성에게,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하도록 가르쳤지만,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확실하게 배우고, 내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 그들도 내 백성 가운데 들게 될 것이다.” (새번역_16절)
 
내 백성의 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계시해 주신 계명과 가르침을 배우면 민족들도 여호와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회를 민족들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내가 그 민족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 멸망시키겠다.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_17절)
 
*이 기회를 잡아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면 그의 보호와 축복 아래 살게 되고, 주어진 기회를 거절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혀 멸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이 전통과 혈통이 아니라 고백과 순종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신다.
 
 
 
나는?
*하나님은 자신의 기업이며 집인 이스라엘을 “버리고, 내던지고, 원수의 손에 붙이셨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이제 미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상을 사랑하였을 뿐 아니라 먹잇감을 향해 포효하는 사자처럼 하나님께 반역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이 떠난 땅은 더 이상 안전과 평화의 땅이 아니라 힘과 탐욕만이 지배하는 야만의 땅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이 떠난 약속의 땅은 이제 황무지가 될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기쁨의 땅이 슬픔의 땅으로, 풍성하던 땅이 수치의 땅이 되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황무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땅은 하나님의 분노를 알고 슬퍼하는데 이스라엘은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믿을 것들, 의지할 것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우상에 마음을 두고 생명의 하나님이 떠나가시는 것조차 안중에 없었다. 심판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의 기업(땅)을 짓밟은 대적들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젠가는 그 땅에서 쫓아내시며 이스라엘을 짓밟은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지만 원수라도 여호와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바알 대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다시 백성 삼으실 것이다.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또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 믿음도 없다.
 
*여호와께서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보배로운 소유 유다를 버려야 하는 아픔을 우화로 표현하셨다. 약속의 땅은 여호와의 분노로 황폐해져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이방 나라들은 여호와의 도에 대한 순종의 여부가 구원의 여부가 될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
 
 
*보배로운 소유를 버리셔야 했던 심판, 이것은 하나님께 너무도 큰 슬픔과 아픔이었다. 무지한 백성을 징계해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분노보다 슬픔이 더 커 보인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아끼던 그들이 반항하며 돌아서고 심지어 해칠 듯 대들기까지 했다. 얼마나 상실감이 들고 슬프셨을까? 혹시 나에게는 이런 고집스럽게 하나님께 반항하는 부분은 없을까? 이것만은 절대 안돼 라고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본문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가정과 일터,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유다는 선지자의 반복된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아 심판을 자초한다. 혹시 나도 반복된 경고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지 않을까?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이 들려지는 말들은 무엇일까?
 
*유다를 치시기 위해 끌어들인 열방들이 역으로 자기 땅에서 제거되어 스스로 심판당하게 될 것을 선언하신다. 하지만 이 민족들에게도 희망을 제시하신다. 그 나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구원을 얻은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들을 위한 것이다.
 
 
 
*주님, 주님의 슬픔과 참담함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는 이를 답습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어찌할까요?
*주님, 심판을 선언 하시지만, 구원의 길도 알려 주시는 사랑을 봅니다. 그 사랑이 저에게도 흘러와 구원의 백성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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