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더 이상 희망은 없다! [렘 15:1-9]
 – 2023년 08월 05일
– 2023년 08월 05일 –

예레미야의 눈물의 간구(14:17-22)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재앙을 철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더욱더 철저하게 진행하여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러한 그들의 멸망을 누구도 동정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도 더는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재앙의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대적의 칼에 붙이실 것을 말씀하신다.

 

흔히 하나님을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다. (출 34:6)”고 표현한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안에서 계시가 되는 여호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하나님의 자비, 은혜, 노하기를 더디 하여주심, 인자와 진실하심 때문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부터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듭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출 32:14)으로 경험해 왔다.

 

예레미야 시대도 같은 기대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심판의 하나님으로 선포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죄를 고백하고 돌아가기만 하면 언제나 용서해 주시는 분은 아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놓았을 때만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한계를 이미 넘었기에 이제는 늦었다. 심판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어진 것이다.

 

 

 

1.더 이상 희망은 없다(1, 5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한다 할지라도 이 백성을 여호와 앞에서 쫓아낼 것이며,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며 울 자도, 평안을 물을 자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모세와 사무엘은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인 중보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간구를 단호하게 거절할 것임을 밝히신다. 예루살렘은 철저히 버려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앙은 패역하고 반역하여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임을 거듭 천명하신다.

 

 

 

2.하나님은 모으셨으나, 이스라엘이 흩어 버리게 했다(2~4절)

여호와께서 쫓아내신다고 하자(1절) 그럼 어디로 가리이까 묻는다. 여호와께서는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로 가게 될 것을 천명하셨다(2절). 이어서 칼, 짖는 개,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벌하셔서(3절)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 버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재앙과 죄의 원인으로 므낫세를 언급한다(4절). 이는 므낫세 한 사람에게 멸망의 원인을 모두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이후 여호와를 떠나 자기 길을 가며 우상을 숭배했다. 죄에 있어 “우리와 우리 조상”은 차이가 없었다(20절). 므낫세는 “우리 조상의 죄악”을 대표하는 인물일 뿐이다. 왕하 23:36에 의하면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가 돌이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3.결국 예루살렘은 멸망한다(5~9절).

멸망의 심판이 현실이 된다. 예루살렘의 절망적인 현실은 멸망의 상황에 직면한 예루살렘에 동정을 베푸는 자, 그 슬픔을 함께하며 위로해주는 자도 없다(5절). 동맹 관계의 주변 이웃 나라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겨 거듭 용서해 주셨으나 예루살렘은 감사히 여겨 돌아오기는커녕 더 멀리 떠나갔다. 배은망덕은 예루살렘의 본질이 되어 버렸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으나, 이제 그 손과 팔이 배반한 예루살렘을 멸망시킨다.

 

이 파국적인 멸망을 키질 비유를 통해 완전한 멸망임을 밝히고 거듭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7절). 하나님께서는 예전부터 계속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라고 밝혔지만, 유다 백성은 완강하게 제 길로만 갔다.

 

마치 자기 남편과 지식을 빼앗기고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하게 된 과부에 빗대어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진(8절 상)” 유다의 운명을 보여주신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창 22:17; 32:12)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생명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림으로 유다는 생명을 잃게 된다.

 

심판의 단호함과 혹독함은 “놀람과 두려움(8절)”이 갑자기 닥치고, “아들을 일곱이나 낳은 여인이 기절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다(9절).”고 밝힌다. 부러움의 대상이던 여인이 한순간에 대를 이을 자식을 다 잃고 수치와 멸시에 떨어져 남은 인생을 어둠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여호와의 축복으로 풍성함으로 살던 유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치와 멸시에 넘겨진다.

 

철저한 심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한다.

 

 

 

나는?

-심판의 확증은 기도를 거절하신 것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기도를 거절하신다. 모세와 사무엘이 와서 중보해도 들어주실 수 없다고 하신다. 칼이든 기근이든 유배든 그들이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심판을 해도 돌아서지 않을 자들이니 다시 기회를 준다고 돌이킬 리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심판을 돌이켜 달라는 선지자의 간절한 호소를 거절하신다. 위대한 중보자 모세와 사무엘이 기도한다 해도 심판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칼이든 기근이든 유배든 그들이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심판 중에도 심판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기도한다 해도 소용없다. *내가 진실로 주께 돌아오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돌아오실 길은 없다.

 

 

*하나님의 분노가 심각하다. 그러나 정작 유다와 예루살렘은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수에 놀아나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 거짓 선지자들보다 그들의 거짓을 분별해 내지 못하는 백성들의 무분별함, 무지가 더 큰 일이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몰상식하고 불공정한 일들을 너무도 뻔뻔하게 자행하고 교묘하게 악을 도모하여도 이를 가리지 못하는 이들, 아니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이들이 가져올 세상의 미래 두렵다. 무엇보다 이를 방관하며 외면하는 국민 대다수는 오늘의 무지와 외면이 가져올 미래의 고통에 항변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조세프 드 메스트로_이탈리아_1753-1821)”,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사무엘 스마일스_스코틀랜드_자조론_1812-1904)” 무엇보다 플라톤의 말이 뼈저리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_국가론)”

 

*우리 민족에게 기회가 아직 남아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갑자기 므낫세를 언급하신다. 멸망의 심판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4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13대 왕이다. 29년간 통치하며 종교 개혁을 시도하고 분열된 이스라엘의 화해를 도모하였다. 앗수르의 침공도 이겨낸 군주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이런 선왕의 치적을 잊고 악정을 일삼고 유다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다. 히스기야 때 허물었던 산당을 다시 짓고 바알을 위한 단을 쌓는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 55년간 왕위에 있었지만, 철저히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남 유다 역사상 세 명이 바알을 위한 단을 쌓았는데, 여호람의 아내이자 북이스라엘 아합의 딸 아달랴가 스스로 왕이 되었던 때(왕하 11장), 요담에 이어 왕이 된 아하스 때(대하 28:1-4), 그리고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왕하 21장)이다. 므낫세 때는 다른 이들보다 거 공개적으로 바알을 숭배하게 하였다. 여기에 백성들은 그저 이들 왕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무지와 무개념을 보여주었다.

 

*결국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이 아니다. 유다 백성들이 버린 것이다.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 (새번역_6절)

 

 

 

*주님, 네가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제가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주님, 분노하시는 주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교회에도, 정치에도, 사회에도 그저 기회를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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