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심판하시나 구원하시는” 위대한 약속 [렘 16:14-21]
 – 2023년 08월 08일
– 2023년 08월 08일 –
예레미야의 선포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에 집중하지만, 멸망이 선포의 목적은 아니다. 예레미야는 심판 이후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라 민족들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나아올 밝은 미래도 내다본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만약 그들이 자신의 악행을 회개한다면, 열방까지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1.출애굽을 압도하는 새로운 출애굽(14~15절)
출애굽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새로운 출애굽이 선포된다.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한 자들을 이방 땅으로 내던지신 여호와께서 이들을 다시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15절) 반드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끌어내신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주고” 맹세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두 번째 출애굽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구원역사의 출발점인 출애굽이 두 번째 출애굽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온 세상에 쫓겨난 자들을 여호와께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올라오시는 출바벨론의 구원역사가 여호와 신앙의 근간이 된다.
 
이렇게 놀라운 두 번째 출애굽이 첫 번째 출애굽을 능가하는 이유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것보다 “북방 땅과 모든 나라”에서 인도해 내시는 구원역사의 공간적 범위가 비교할 수 없이 확장된 점이다. 첫 번째 출애굽은 하나님께 허락 아래 애굽으로 들어가서 민족을 이루어 나온 것이라면, 두 번째 출애굽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 때문에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이방 나라들로 쫓겨난 것을 전제해야 한다. 출애굽이 하나님의 약속 이행이라면, 출바벨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속한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목적은 진멸이 아니다. 회개의 가능성마저 철저히 상실해 가는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려고, 매를 들어서라도 기어이 유다 백성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땅에 끌려가서야 우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다시 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전 세대에게 가장 위대한 사건이 출애굽이었다면, 다가오는 세대에게는 출바벨론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구원 사건이 되게 하실 것이다. 출바벨론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으로 끝이 난다. 결국 구원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곧 심판이다. 우리에게 출애굽, 출바벨론과 같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구원 사건이 나의 삶을 새롭게 형성해가도록 맡기는 것이다.
 
 
 
2.누구도 피하지 못할 심판(16~18절)
어부와 포수의 비유를 통해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집행될지를 극적으로 기술한다(16절). 여호와께서 먼저 어부가 낚시로 고기를 잡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 올리신다. 혹시 그들 가운데 일부가 어부의 낚시를 벗어날지라도 안심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다시 많은 포수를 보내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틈”을 샅샅이 뒤져 숨은 자들을 찾아내 사냥하게 하신다. 여호와의 눈을 피해 몸을 감출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비유가 두 개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전 597년의 1차 바벨론 침공과 주전 587년의 2차 바벨론 침공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고, 그만큼 혹독하고 참혹하게 멸망 당할 것을 의미하는 비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히신다. “내가 그들의 모든 행실을 똑똑히 지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내 앞에서 숨을 수가 없고, 그들의 죄악도 내 눈앞에서 감추어질 수가 없다.” (새번역_17절) 여호와께서 두 눈으로 이들의 모든 길과 죄악을 직접 보셨기에 그분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이 없다.
 
여호와께서 직접 보신 이들의 죄악은 우상숭배였다(11절). 그들은 우상들로 여호와의 기업을 가득 채워 그분의 땅을 더럽혔다. “그들이 시체 같은 우상으로 내 땅을 더럽히고, 내가 그들에게 물려준 땅을 역겨운 우상들로 가득 채워 놓았으니, 나는 이렇게 우선 그들의 죄악과 허물을 갑절로 보복하겠다.” (새번역_18절) 시체 같은 우상이라는 표현은 우상의 본질을 신랄하게 폭로하는 것이다. 우상은 시체처럼 생명이 없는 죽은 존재이다. 시체에 불과한 우상을 섬기는 자는 시체가 될 뿐이다.
 
*어부를 보내 잡아 올리시고, 뒤이어 포수(사냥꾼)를 보내 남은 자들은 잡아내신다.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과 죄”를 갑절로 갚으신다(보복하신다).
 
*구원하기 전에 먼저 “심판”하실 것이다. 부정하고 가능한 우상으로 여호와의 땅을 더럽힌 악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어부가 고기를 낚듯이 포수가 사냥감을 끝까지 추격하여 잡듯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다.
 
*구원은 죄에 대한 묵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 죽음이 없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의 값진 피 값으로 받은 은총에 대한 참다운 반응은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3.민족들이 보고 깨닫는다(19~21절)
예레미야의 시선이 하나님 백성의 절망적인 현재에서 민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긍정적인 미래로 옮겨진다. 어떤 계기로 민족들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되는지는 달리 언급이 없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19절 상)라고 고백하며 민족들이 땅끝에서 여호와를 찾아오는 놀라운 광경을 본다. 그들의 입술로 고백하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들을 듣는다. “…. 세상 만민이 모든 땅끝에서, 주님을 찾아와 아뢸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것은, 거짓되고 헛되며, 전혀 쓸모가 없는 것뿐입니다. 사람이 어찌 자기들이 섬길 신들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찌 신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새번역_19절 하-20절)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거짓되고 헛되고 쓸모없는 것”을 물려 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들 조상 대대로 섬겨온 우상들이 거짓 환상이나 심어주는 쓸모없는 헛것인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신으로 만들어 섬겨온 것임을 깨닫는다. 사람이 만들어낸 신은 신일 수 없다. 여호와만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힘과 요새, 피난처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그들에게 알리겠다. 이번에는 나의 권세와 능력을 그들에게 알려서, 나의 이름이 ‘주’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하겠다.” (새번역_21절) “이번에는”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약속의 성취를 강조하신다. 그것도 “내가 그들에게 알리겠다”라고 하시면서 직접 이 일을 행하시겠다고도 확언하신다. 마치 유다의 심판을 철저하게 행하신 것처럼 “반드시” 행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신다.
 
개역개정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는 번역은 단지 지식적인 인식의 수준을 넘어서 관계성을 맺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즉, “여호와를 인정하고 섬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귀환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권능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는(10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지만, 사람이 만든 것을 신으로 섬기던 민족들은 여호와의 능력을 보고 그 이름을 알게 된다.
 
*온 열방이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참 능력의 하나님에 대해 배우기 위해 유다로 모여들 것이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정작 강대국의 우상을 섬겨야 그들처럼 될 것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하나님을 열등한 신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스스로 그 자부심을 내팽개치고 있다.
 
 
 
나는?
*나는 이미 출애굽이나 출바벨론과 비교할 수 없는 주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구원을 얻은 역사 속에 거하고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서 나의 죄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대속의 길을 걸어가신 것 때문에 구원받았음을 믿고 있다. 이 믿음이 나의 삶을 온전히 채워서 “예수님처럼 더욱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싶다. 이 길의 믿음의 동역자들과 동지로 모아주신 더온누리공동체를 예수님처럼 섬기며 예수님을 따라가 보리라!
 
*어부로 낚지 못한 것은 포수를 보내 끝까지 잡으시겠다는 분명한 선언을 읽으면서,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죄도 숨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겠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은 빠짐이 없고 멈춤이 없다.
 
*재앙을 당하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왜 자신들이 이 같은 심판을 당해야 하는지를 항변하는 유다 백성들이(10~12절) 기가 차다. “악한 마음으로” 다른 신을 쫓느라고 그들의 마음은 악해질 대로 악해져 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하나님 심판의 정당함을 증명한다. 통탄할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안하무인의 백성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악한 행동을 마치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정당한 것처럼 포장하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악을 행하는 무리들이다. 그들의 악한 행동이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의 근거 될 것이다.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리리라고 선언하신다(21절).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모두 이루시면 하나님만이 힘이요, 요새이며 환난 날의 피난처임을 열방이 인정할 것이다. 열방은 여호와를 두고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섬긴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여호와의 손(권세)과 능력을 알려서 여호와를 알게 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증거하고 증명하며 드러내 보이도록 부르셨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내야 할 선교적 존재들이다.
 
 
 
*주님, 죄에 대하여 단호하고 분명한 심판은 새로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임을 깨닫습니다. 구원을 바라보며 심판의 때를 인내하겠습니다.
*주님, 세상이 주님을 알고 인정할 그때를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 주님은 이 구원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줄 믿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